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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경철 Nov 03. 2023

캐서린 맨스필드의 ‘항해’

누군가 나에게 책을 왜 읽느냐?라고 물어본다는 나는 ‘재미있으니까요.’라고 대답할 것 같다. 물론 영화나 드라마도 재미있다. 그렇지만 책, 특히 소설책이 주는 재미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영화는 시각, 청각적으로는 거의 완전한 형태로 주어진다. 내가 끼어들어갈 공간이 없지만 글은 묘사와 설명, 대화를 통해서 다가오기 때문에 나에게 공간을 마련해 준다. 나는 글을 읽으면서 영상으로 분명히 제시된 모습이 아닌 나의 시선으로 마음으로 머릿속으로 등장인물들을 그려가고 알아간다. 그것은 영화처럼 분명하고 선명하지 않지만 나는 그곳을, 그 사람을 만난 것과 같은 친밀감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 친밀감은 책의 ‘재미’를 더해주고 그 ‘재미’를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캐서린 맨스필드의 단편 ‘항해’를 읽으면서 나는 1920년대 뉴질랜드에서 ‘팩턴호’를 타기 위해 이른 새벽 아버지와 할머니를 종종걸음으로 따라가는 소녀와 동행했다. 소녀의 시선을 통해 엄마를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쓸쓸하고 외로운 기분을 느껴보기도 하고, 신앙심 깊은 할머니의 모습에서 편안함과 안도감을 느꼈다. '팩턴호'에서 어떤 음식을 파는지, 선실의 이불은 얼마나 뻣뻣한지 알게 된다. 그 소녀가 되어 팩턴호를 타고 하룻밤을 보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인 이민가족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 '파친코'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인 이민진에 의해 영어로 출간이 되었고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민진 작가는 한 방송국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저는 항상 저의 숨겨진 목적은 모든 사람을 한국인으로 만드는 거라고 말하거든요. 만약 당신이 한국인이 아니고 처음이거나 두 번째로 한국 작가의 책을 읽었는데 ‘아, 그들도 나와 똑같구나’라고 느낀다면 제가 당신을 변화시킨 거예요 마찬가지로 제가 처음으로 프랑스나 브라질, 이스라엘 작가의 책을 읽었을 때 ‘아 그들도 나랑 똑같구나, 내 삼촌이나 사촌과 같구나’라는 생각이 든다면 저는 이스라엘인이 되고 독일인이 되고 프랑스인이 되고 브라질인이 되고, 나아지리아인이 되는 거죠. 그렇게 이야기를 쓰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묘사, 예민하고 날카로운 작가의 시선은 책을 읽는 내내 나를 그 순간, 그 장소로 데려다 놓았다. 이민진 작가의 말대로 나는 뉴질랜드인이 된 것이다. 그런 경험은 나에게 특별한 '재미'이다. 그리고 내가 다음 소설을 기대하는 이유가 된다. 

         


캐서린 맨스필드의 ‘항해’ 중에서


단단한 갈색 사각형 비누는 거품이 잘 나지 않았고 병의 물은 파란색 젤리 같았다. 그 뻣뻣한 이불은 젖히기가 얼마나 힘들던지. 아예 찢고 들어가고 싶었다.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면 재미있어서 킬킬거렸을 텐데… 마침내 이불 속에 들어가서 씩씩거리고 누워 있는데 위쪽에서 오랫동안 부드럽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를 찾으려고 얇은 종이 사이를 살살, 아주 살살 부스럭거리며 헤집는 소리 같았다. 할머니가 기도를 하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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