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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경철 Apr 19. 2024

여행은 어차피 집으로 향하는 길

빌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산책 중에서

TV에서 연예인 4명이 알프스산을 등반하는 장면을 보았다. 묵직해 보이는 배낭가방을 지고 힘겹게 등반하는 모습은 여행의 고됨과 함께 미지의 목적지를 향해 가는 설렘도 담겨있다. 그 장면이 인상 깊었던지 평소에는 눈에 띄지 않던 여행 책이 눈에 들어왔다. 빌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산책’이다. 북유럽을 시작으로 이스탄불까지 총 22곳의 여행기가 실려있다.      


작가의 여행방식은 간단하다. ‘거리 쏘다니다가 시간 남으면 박물관 가기’. 

도착한 도시에 짐을 풀고 거리로 나간다. 특별한 목적 없이 거리를 쏘다니다 마음이 드는 음식점에서 밥을 먹고 밤늦게까지 맥주를 찾아다닌다. 취해서 걷다가 지치면 호텔로 들어와 잠이 든다. 각 도시마다 사람들에게 받는 인상이나 이해할 수 없는 그 나라 사람들만의 행동, 먹을 수 없는 음식들(작가의 입장에서), 호텔의 상태(책을 읽기에 적합한 조명이 있는가, 호텔가격은 합리적인가 등등)에 대한 작가의 말은 중얼거림 내지 투덜거림으로 들린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의 말 중 나와 생각이 다르거나 편향된 듯한 내용도 큰 저항감 없이 받아들여진다. 누구든 중얼거리거나 투덜거릴 수는 있으니까.     


이 책의 장점은 먼저 아주 재미있다는 데 있다. 여행에서 예기치 않게 생긴 작가의 에피소드는 ‘피식피식’ 바람 빠진 소리를 내게 하다가 ‘푸핫’하며 침을 튀기게 만든다. 그와 더불어 작가가 정처 없이 거리를 쏘다니며 본 내용과 우연히 만난 현지 사람들, 여행객들의 이야기는 생동감 넘치며 신선하고 흥미진진하다. 마치 별나고 재밌는 여행가이드와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가는 방법도 잘 곳도 정해지지 않은 낯선 곳으로 무작정 떠나서 온갖 고생을 다하는 작가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생각해 보았다. 용기와 기백이 넘친다고 하기에는 너무 무모한 것 같고 모험정신이 투철하다고 하기에는 열심히 없다. 그냥 큰 뜻이나 생각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여행이라고 하면 적절할 것 같은데 베스트셀러 작가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말끝이 흐려진다. 어쨌든 제목도 ‘발칙한 유럽산책’이니까 어슬렁거리며 두리번거리며 유럽을 산책하는 기분을 느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이 딱이다.         


이스탄불을 마지막으로 작가는 가족이 보고 싶고, 내 집의 친숙함이 그립고 매일 먹고 자는 일을 걱정하는 것도 지겨웠고, 기차와 버스도, 낯선 사람들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도, 끊임없이 당황하고 길을 잃는 것도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라는 사람과의 재미없는 지겨웠기에 집에 돌아가기로 한다.      

집 떠나면 고생인데 왜 우리는 사서 고생하러 여행을 가는 것일까. 집을 떠나는 것, 익숙하고 안정된 그곳을 떠나는 것을 통해 우리는 나를 둘러싼 작은 세계를 벗어난다.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호기심과 새로움을 느끼는 동시에 불편함과 지친 마음으로 우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작가의 말처럼 ‘여행이란 어차피 집으로 향하는 길이다.’ 조금은 새로워지고 조금은 달라진 내 모습을 가지고 집으로, 내가 살아가는 그곳으로, 다시 발을 땅에 딛고 살기 위해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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