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나의 한국현대사’ 중에서
어렸을 때 나는 ‘전두환 대통령’이 고유명사인 줄 알았다. ‘대통령’이라는 말의 의미를 몰랐던 그때, TV 뉴스에서 반복적으로 들렸고 꽤 오랫동안 들었던 그 단어의 조합이 한 단어라고 생각했었다.
초등학교 때, 운동장에서 한 친구가 김일성이 죽었고 곧 전쟁이 난다는 말을 했다. 하늘은 맑고 화창한데 수업이 끝난 학교 운동장이 적막하고 무섭게 느껴졌다. 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엄마는 우리가 어렸을 때 가장 두려웠던 것은 전쟁이었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5남매였던 우리는 엄마가 등에 업고 양손에 붙들어도 충분치 않으니 엄마는 그게 걱정이었을 것이다.
고등학생일 때 읽고 있던 책을 아빠에게 뺏긴 적이 있다.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이었다. 그저 유명한 책이라기에 읽었을 뿐인데 아빠의 반응은 당황스러웠다. 그 책을 읽는 나의 모습에 아빠는 두려움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IMF로 아빠가 다니시던 회사가 부도가 났다. 늘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늦게 퇴근하셨던 아빠가 낮에 집에 계시니 낯설고 어색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에 대학교 술렁거리며 축제 분위기가 났던 것과 버스 안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향해 무지막지한 욕을 내뱉으며 흥분하며 말씀하시던 할아버지들의 모습도 떠오른다.
같은 사건을 두고 신문사별로 다른 시각의 기사를 쓴 것을 읽으며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하는 생각으로 머리가 잠깐 복잡했던 기억도 난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내가 태어나기 전의 시대에 대해서는 나의 부모님의 삶을 상상해 보고, 내가 살고 있던 그 시대에 일어났던 역사의 사건들을 읽으면서 그때 나는 몇 살이었고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더듬어 보았다. 그리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생각해 본다.
1959년, 작가가 태어난 해를 시작으로 작가 자신의 유년시절과 성장배경을 언급하며 이 책은 시작된다. 도시의 소시민 가정에서 자라 민주화세력의 일원으로 활동했던 작가의 이력을 감안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굳이 책의 제목을 ‘한국현대사’가 아닌 ‘나의 한국현대사’라고 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작가는 글 말미에서 미래에 대해 생각하길 당부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순간에 좋은 것을 쌓으며 미래를 맞이하길 부탁한다. 작가의 정치성향을 떠나 이 시대의 지식인으로서의 그의 한국현대사는 흥미진진하며 알차고 날카롭지만 그의 조언은 따뜻하고도 간곡하게 들린다.
“미래는 내일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 각자의 내면에 이미 들어있다. 지금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안에 존재하는 것이 시간의 물결을 타고 나와 미래가 된다. 역사는 역사 밖에 존재하는 어떤 법칙이나 힘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사람의 욕망과 의지가 만든다. 더 좋은 미래를 원한다면 매 순간 우리 각자의 내면에 좋은 것을 쌓아야 한다. 우리 안에 만들어야 할 좋은 것의 목록에는 역사에 대한 공명도 들어 있다.” (유시민 나의 한국현대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