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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경철 Nov 21. 2024

진순이

진순이는 시댁에 있는 개 이름이다. 진순이는 진돗개가 아니다. 시아버지가 새끼 강아지를 한 마리 데리고 온 날 아이들은 강아지의 이름 짓기에 한창이었는데 시아버지가 마당에서 ‘진순아 밥 먹어라’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고 그렇게 진순이가 되었다. 진순이는 짧은 갈색 털 바탕에 등과 얼굴에 검은 반점이 있다. 몸통은 성인의 팔꿈치에서 손목정도의 길이이고 몸통 길이에 비해 발은 짧다.


 우리가 탄 차가 시댁 마당에 들어서면 마당 한쪽 편에 묶여있는 진순이는 짧은 꼬리를 빠른 속도로 흔들면서 폴짝폴짝 뛰다가 목줄에 당겨 땅으로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아이들은 사 온 간식을 진순이에게 준다. 앞집 뒷집 개에게도 나누어 준다. 간식을 다 먹고 나면 산책시간이다. 목줄을 풀어놓으면 달려 나간다. 반쯤 접혀있던 귀가 뒤로 젖혀진다. 긴 목줄이 끌리면서 진로를 방해해서 그런지 약간 비스듬한 자세로 뛴다. 진순이는 빈집이든 사람이 사는 집이든 큰 개가 묶여있든 상관없이 모든 집을 다 들어갔다 나온다. 진순이가 돌아다니며 마을에 묶여있는 개들의 신경을 건드린다. 시댁의 시골마을은 차 한 대가 들어설만한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양 옆으로 집들이 늘어서있다. 내 어깨정도 높이의 시멘트 벽돌 담장이 이어져 있고 문은 닫혀 있는 곳이 거의 없다. 몇 년 전 대학생들이 와서 담장에 그려놓은 토끼나 고양이 그림의 색이 바래져 있다. 두 집 걸러 한집은 빈집이다. 빈집 마당에는 먼지 쌓인 수건이나 바구니 같은 것이 나뒹군다. 마당에 제멋대로 자란 풀은 들어오지 마시오라고 하는 것 같다. 버려지고 방치된 무언가는 쓸쓸하면서도 찬 기운이 느껴진다.


 우리가 산책하는 낮 시간에는 사람 마주치는 일이 드물다. 마을 전체가 조용하다. 집이 모여 있는 곳을 빠져나오면 군데군데 밭이 보인다. 작물들이 줄을 맞춰 깔끔하게 심겨 있고 잎은 푸르고 싱그럽다. 이 마을은 마늘이나 양파, 깨 등이 주 작물이라고 하기에 식물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나는 그중 하나이겠거니 짐작한다. 인기척도 없는 이 마을에 누가 이 밭들을 이렇게 정성스럽게 가꾸었을까. 일흔을 바라보는 시어머니가 마을에서 청년회에 소속되어 있다고 한다. 일흔의 청년들이 일군 밭은 청년의 젊음처럼 생명력이 넘친다.  


작년 가을 진순이가 새끼를 낳았다는 말을 들었다. 한 달에 한두 번 시댁을 방문하다가 그즈음 한 달째 못 가고 있었는데 새끼를 낳았다는 시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시어른들은 임신한지도 몰랐고 출산도 몰랐다고 한다. 어느 날 개집 안을 들여다보니 새끼 한 마리가 있었다고 했다. 나는 늘 진순이를 사람으로 치면 ‘ADHD'진단을 받았을 거라고 말했다. 머리 한번 쓰다듬기가 어려울 정도로 가만히 있지 못하고 부산스러워서이다. 천방지축 같은 진순이가 새끼를 낳았다니 안쓰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시아버지가 또 엉뚱한 이름을 지을까 봐 얼른 새끼 이름을 ‘순돌이’로 지었다. 금세 순돌이는 진순이보다 덩치가 커졌다. 털 색깔은 진순이를 닮았다. 진순이보다 행동이 느리고 먹성이 좋았다.


마을에서 닭을 키우는 사람이 닭장 지키라고 진순이를 달라고 했다고 한다. 시댁을 갔을 때 진순이가 없어서 물어보니 시어머니가 얘들 듣지 못하게 조용히 나에게 말해주었다. 아이들에게는 잠깐 빌려줬다고 했다. 진순이가 새끼를 낳아 두 마리가 되었으니 한 마리는 남 줘도 되겠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아이들은 진순이를 보고 싶다고 했고 시어머니는 진순이가 있는 곳을 알려주셨다. 집에서 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닭장 앞에 묶여있는 진순이는 우리를 보자마자 꼬리와 몸이 반응했다. 돌아서는데 진순이의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내 옆에는 둘째가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며칠 후 시어머니가 진순이를 도로 데려왔다고 하셨다. 우리가 다녀간 뒤 닭을 두 마리나 물어 죽이고 주는 밥도 안 먹는다고, 그 집 손주들이 너무 예뻐하니 도로 가져가라고. 그렇게 진순이는 집으로 돌아왔다.

성깔을 부리고 단식투쟁을 하고 다시 돌아온 진순이를 보니 우습기도 하고 마음이 찡해진다. 나는 진순이 앞에 쭈그리고 앉아 진순이를 쳐다본다. 나이가 들어 보인다. 진순아 고생 많았어. 진순아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 맛있는 거 많이 사가지고 오고 자주 놀러 와서 산책도 시켜줄게. 웬일로 진순이가 얌전히 앉아서 나를 올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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