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정한 태쁘 Dec 18. 2024

12년 차 공무원에게 승진이란

삶이라는 긴 여정에서

승진 철이 다가오면 조직의 공기가 묘하게 달라진다. 한숨과 환희가 교차하는 풍경 속에서 승진 명단에 내 이름이 없다는 사실은 이제 익숙하다. 나는 12년 차 공무원이다. 이번에도 승진은 나를 비켜갔다.


사실 처음이 아니다. 저번 승진에서도 같은 경험을 했고 나처럼 멈춰 선 동기들도 있다. 그러니 이 상황을 특별히 나만의 일이라고 여길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마음이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다. 노력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음을 느낀다.

나보다 발령이 늦은 동기들이 승진하던 그날,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툭 끊어진 느낌이었다. 애써 평정을 유지하려 했지만 내면에서 솟구치는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다. 그 감정은 마치 내가 인정받지 못한 현실에 대한 깊은 절망이었고 동시에 그토록 노력해 온 시간들이 헛되이 느껴졌다.


그 후 나는 그 누구에게도 내 기분을 털어놓지 않았다. 그 대신 얼굴에 웃음을 지으며 일상 속에 숨어버리기로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내면에 숨어 있던 질투와 분노는 더욱 커져만 갔다. 동기들이 승진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들의 밝은 얼굴이 나를 더욱 작게 만들었다. 그들의 성공이 나를 더 작아지게 하고 나는 점점 더 쓸모없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 감정은 때때로 나를 미친 듯이 괴롭혔다.

나는 그 감정을 그대로 두지 않기로 결심했다. 질투와 분노는 결국 나를 위한 힘이 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는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이 과정을 통해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지에 대한 선택이었다. 그 모든 감정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나아가기로 했다. 이제는 그 질투와 분노가 나를 정의하지 않도록 차분히, 그리고 나만의 속도로 길을 걸어가기로 했다.


사실 이 글을 쓰는 것도 망설여졌다. 승진을 한 후에 돌아보며 "그때는 그랬지"라고 쓰고 싶었다. 못난 내 안의 나를 마주할 용기가 없어 회피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었으리라.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금의 이 솔직한 감정은 희미해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승진이 내게서 멀어진 바로 이 순간, 지금의 나를 기록하기로 한다.

출처 네이버 포토뉴스(ngonews.kr)

승진은 단순한 직급 상승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조직 내에서 내 역할이 확장되고 내 노력이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기회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적절한 타이밍, 환경, 업무의 종류 등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요소들이 맞물려야 이루어지는 퍼즐 같은 것이다. 그 퍼즐의 조각들을 맞추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니 승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내가 조정할 수 없는 변수들을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나는 승진이라는 결과를 넘어 내 삶의 본질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남을 것인가?" 이 질문은 단지 승진에 관한 것이 아니다. 내가 지금 살아가는 방식, 내가 대면하는 모든 일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나는 공무원으로 약 12년을 보냈다.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내 피에는 국민의 봉사자라는 사명감이 흐른다. 나는 이 길을 선택했고 이 길에서 무엇인가 의미 있는 일을 해보겠다고 다짐했다.

그 다짐은 단지 승진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었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내가 이 과정 속에서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는 지다.


퇴직까지 약 25년이 남았으니, 이제 겨우 1/3을 지나온 셈이다. 길게 보면 이번 승진은 단지 그 여정 속의 한 작은 장면일 뿐이다. 하지만 지금 1/3 지점을 지난 나로서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삶은 우리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노력과 계획에 따라 결과가 따라오리라 기대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다. 내가 목표로 삼았던 방향과는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하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기회가 찾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 결과는 나를 정의하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내가 선택한 길을 걸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결과와 관계없이 나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승진이든 다른 목표든 그 결과가 우리의 통제 밖에 있다면 우리는 더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 과정 속에서 내가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 길 위에서 내가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은 무엇인가.


지난 주말, 오랜만에 옛 기록을 뒤적였다. 첫 발령을 받았을 때의 일기장에는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공직자가 되겠다"는 다짐이 적혀 있었다. 그 초심은 지금도 변함없이 내 안에 살아있다. 승진은 그 여정의 이정표일 뿐, 목적지는 아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모두가 각자의 과제를 안고 살아갈 것이다. 그것이 승진일 수도 있고, 새로운 도전이거나 혹은 삶의 일상 속에 묻힌 아주 작은 책임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그것이 나를 좌절하게 만들 이유는 없다. 지금의 실패나 지연이 결국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길일 수 있다.

승진은 나를 비켜갔지만 그것이 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이라는 하루를 쌓으며 내일을 향해 나아 가면 된다. 승진이 단지 내 노력의 결과로만 이루어지지 않듯 나의 가치는 단지 승진 여부로 평가될 수 없다. 오늘의 나를 채우는 하루하루가 결국 더 나은 나를 만들어 갈 것이다.


결국, 삶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복잡하면서도 단순하다. 모든 것을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는 없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는 자신만의 길을 걸어간다. 그리고 그 길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든 나는 그곳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내일도 나는 이 자리에서 내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며 한 걸음씩 나아갈 것이다. 승진이라는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내가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느냐 하는 것임을 이제는 안다.


"인생에서 가장 큰 영광은 결코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매번 일어선다는 데 있다."

-공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