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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담 Mar 20. 2024

1.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

동생의 장례식

군대를 전역하고 낯선 도시인 서울에서 학교 생활을 시작했다.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설었다. 완전히 새롭게 시작한다는 기분이 들었고 또 다른 인생이 시작된다는 생각에 설레였다. 하지만 이 설레임은 얼마가지 못했다. 학기가 시작되고 몇일 안되서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나는 평소처럼 전화를 받았고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동생의 이름을 대면서 형제 관계가 맞느냐고 물었다. 나는 불긴한 느낌을 받으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 남자는 지금 동생이 위독하니 빨리 와줄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고향에서 먼 거리인 서울에 있었기 때문에 금방 가지못한다고 말했고 무슨 일이 일어난거냐고 물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그 남자는 동생이 사망했다는 말을 했다. 눈물이 거짓말같이 쏟아져내렸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고 계속해서 그 자리에서 울기만 했다. 눈이 팅팅 부을 때까지 눈물을 흘리고 나서야 진정이 됐다. 그리고 얼른 동생을 보러가려고 옷을 챙겨 서울역으로 향했다. 서울역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도 계속 숨죽여 울었다. 동생이 죽었다는 생각을 되뇌일때마다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서울역에 도착해서 표를 끊고 기차에 올라탔다. 


객실 안은 조용했고 다들 피곤한 얼굴로 앉아있었다. 창 밖으로 보이는 서울의 풍경은 어두컴컴했고 건물들에서 새어나오는 빛들만 밝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좌석을 찾아 앉았고 동생을 생각했다. 동생의 죽음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는 또 울기 시작했다. 우는 소리를 감추기 위해서 가지고 온 패딩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지금 내가 겪는 현실이 거짓이길 간절히 바랬다. 그렇게 울고나니 또 눈이 팅팅 부어있었다. 


나는 울었다는 사실을 감추고 싶어 나는 고개를 숙였다. 패딩은 생각보다 많이 젖어있었고 내가 그렇게 많이 울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됐다. 패딩에 흘린 눈물 자국을 보다가 울고 진정하고를 반복했다. 그러다 건너편 자리에서 툭툭 치는 게 느껴졌다. 순간 우는 소리가 피해를 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고개를 들어 사과를 하려고 했는데 눈 앞에 휴지를 한 움큼 쥔 손이 보였다. 나는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휴지를 건네받고 눈물을 닦아냈다. 그렇게 또 한참을 울다보니 목적지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곧장 버스를 타고 동생의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기차에서 계속해서 울어서인지 이상하게 버스에서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지금 내게 일어나는 일이 전부 현실이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장례식장에 도착했고 병원 입구에 있는 친구들을 만났다. 그리고 엄마가 응급실에 누워있다는 말을 듣고 응급실로 향했다. 엄마의 얼굴을 보니 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엄마는 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어떻게 하냐고 하시면서 우셨다. 난 아무것도 해드릴 수 없었다. 그렇게 엄마와 한참을 울었고 조금 진정이 되자 엄마는 동생에게 가보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의 안내를 따라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장례식장에 가까워질수록 멀리서 온 친척분들이 보였고 나는 부정하려고 했던 동생의 죽음을 확신할 수 밖에 없었다. 눈물을  걷잡을 수 없이 흘렀다. 그리고 복도 끝에 동생의 영정사진이 보였고 나는 목놓아 울었다. 제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내 평생의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동생이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너무 많이 울어선지 몸을 제대로 가누기 힘들었다. 휘청거리는 나를 빈소 앞까지 가족들이 부축해줬다. 그대로 나는 빈소 옆에 있는 방에 들어가 상복으로 갈아입고 진정이 되지 않은 상태로 빈소에 나와 앉았다. 모든게 거짓말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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