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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만소 Apr 05. 2023

[12] 덜컥, 차를 샀다.

덜컥

 덜컥, 차를 사 버렸습니다. 돈을 벌러 머나먼 타향에 온 거 아니었냐고요? 그렇기 때문에 덜컥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은 때떄로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멍청해지곤 합니다. 저는 하루에도 서른 번, 제가 멍청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정답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이해가 가지 않으실수도 있습니다만, 우리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자동차는 원래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일본 시골 구석에서 차가 없으면 아무래도 아무 곳도 가지 못하니까요. 지난 한 해동안 약 16000km를 밟았더라고요. 회사까지 1.4km인데도요. 그만큼 저는 드라이브를 좋아합니다.

 제 차는 11년식 알토 라판이었습니다. 400만원짜리 차에, 차검이랑 취득세, 기타 이것저것하니 600만원에 가져올 수 있었죠. 11년 된 중고차치고는 꽤 비쌌어요. 이 차를 타고 일본을 누빌 생각하니 신이 났죠. 그러나 제 차는 이것저것 문제가 많은 차였어요. 오래된 차 냄새, 히터와 에어컨을 틀 때 나는 약간 소름끼치는 구린내, 시트에 묻어 지워지지 않는 커핏자국, 덜컹거리는 게 심해 멀리서도 들릴 수 있는 엔진 소리. 차는 잘 나갔지만 그런 자잘구레한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사고가 한 번도 난 적이 없고 600km 떨어진 교토도 잘 데려다주고 시속 120km/h로 달려도 군소리 없이 저를 이끌어주었는데 말이죠. 최근에 선배들 차를 얻어 탈 경우가 많았는데, 나보다 어린 게 꽤 좋은 차를 타고 다니더라고요. CR-시리즈라든가 비싼 SUV를요. 차 안에 달린 기능들과 제 아날로그 기능들을 볼 때면 알 수 없는 부러움이 몸을 감싸 죄었어요. 


 부드러운 엔진음과 떨리지 않는 하부가 부러웠어요. 제가 차를 바꿔야지, 라고 마음 먹게 된 가장 처음이자 단순하고 명확한 이유가 그것입니다. 떨리지 않는 하부. 그렇게 저는 당당히 선배들에게 말했습니다.


" 아, 포르쉐 사고 싶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어요. 정말 영끌하면, 살 수 있거든요. 포르쉐 파나메라. 물론 중고로요! 그런데 정말 정말 영끌해야 했어요. 돈을 남김없이 싸그리 긁어 모아야 하더라고요. 그렇게 며칠 밤과 며칠 낮을 엑셀을 두드려보며 계산을 하다가, 중고차 시장에 갔습니다. 삼선 슬리퍼를 끌며 츄리닝을 입고요. 딜러분은 알토 라판을 살 때 그 분에게 갔어요. 500만엔짜리 16년식 4만 키로 카이엔을 보여주더라고요. 이거다 싶었어요. 


 왜 포르쉐인가 하면, 저는 무엇이든 살 때 제가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가장 비싼 것을 생각해요. 어차피 계단식으로 올라가게 되잖아요? 처음부터 끝판왕을 사 버리면 그 밑에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그 위에 것은 없거나 불가능하니까요.


 제 주식 계좌에 있는 돈을 당장 쓰기 싫어 대출을 받기로 했습니다. 300만엔을 빌리려는데, 440만엔으로 갚으래요. 이게 무슨 고금리 대출입니까. 고민을 조금 해보겠다고 말하고 집으로 왔어요. 여자친구도 반대해요. 그렇게 또 몇날 며칠을 고민하길 시작했습니다. 


 이곳 저곳 물어보기도 하고 유튜브도 보면서요. 유지비가 심각하더라고요. 그리고 포르쉐를 타고 있는 형님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리고 그 형님이 한 말이 제 가슴을 너무 후벼파더라고요. 바로 인정하고 포르쉐를 포기했습니다. 그 형님은 제게 그랬어요.


"너가 무슨 고민을 하는 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고민을 안 할 상황을 만들고 타야 하는 게 아닐까."


 맞아요. 유지비가 고민이 안 될 때 포르쉐같은 차를 살 수 있는 것이었어요. 그러면 제가 고민 없이 탈 수 있는 차가 무엇일까 고민해보았죠. 대출금도 그렇게 높지 않고, 사더라도 생활에 1%도 차이가 없는 차요. 


 BMW 3시리즈가 이쁘더라고요. 다크한 블루가 특히요. BMW는 양아치 차라는 인식이 강해서, 평소에 좀 꺼렸는데 여기는 일본이니까 다르지 않겠어요? 그래서 BMW 3시리즈를 곧장 알아보았습니다. 가지고 있는 현금으로도 충분히 사겠더라고요. 그렇게 몇 개의 3 시리즈를 보고 어느 매장에 가서 상담을 받을까 고민하던 중, 제게 한 곳의 판매글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BMW 5시리즈. 18년식. 상태A. 14000km. 검정


 가격은 구매하려던 것보다 딱 100만엔 비싼 정도의 금액이었어요. 100만엔. 100만엔만 대출을 받으면 살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100만엔 정도면 회사에서 금리 1.1%의 말도 안 되는 이자로 빌려줄 수 있대요. 이거다 싶었습니다.


 그렇게 매장에 가서, 실물로 차를 보고 바로 딜러분과 악수를 했습니다. 




바로 이 차예요. 너,무 좋아요. 친구들은 카푸어라고 저를 놀리긴 하는데 충분히 감당 가능했더라고요! 가끔 그래도, 이 차를 사지 않았으면 일 년에 몇 백은 더 모으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는데 차에 앉아 시동을 걸면 걸렸는지도 모르게 조용히 울리는 엔진 소리에 감동을 받고 역시 사길 잘했다라는 생각 밖에 안 들어요.



차를 타면 나오는 이 디스플레이도, 색 조정이 가능한 엠버넌트도요. 꽤 많은 사람들이 제 차를 탔는데 하나같이 역시 정답이라고 합니다. 키무상이랑 너무 어울린다고. 


차 하나가 사람을 바꿔주지도 않고 제 스스로가 변한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저는 매일 주행하며 행복감을 느끼고 있어요. 고급유를 넣을 때 살짝 손이 떨리긴 하지만요. 


그래도 1년동안 저를 아낌없이 태워준 우리 라판과 마지막 작별인사를 꽤 길게 했어요. 저는 워낙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라, 이별에 상당히 힘들어 하거든요. 고맙다고, 잘 지내라고 인사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차와도 길게 얘기를 했어요. 잘 부탁한다고 나를 어디든 데려다 달라고. 행복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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