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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홀라 May 12. 2022

앤드테라스 파주,
햇살을 코스터 삼아 커피 한 잔

짙은 녹색과 하얀 햇빛, 빵 굽는 향기의 조합

  

따끈따끈하고 포슬포슬한 봄 날씨가 짙어져 간다. 겨울이 그렸던 삭막한 풍경이 조금씩 녹색으로 덧씌워지고 있다. 새싹들이 가로수 마른 가지를 채워가면, 괜스레 마음이 이스트 반죽처럼 부푼다. 쌀쌀했던 계절에 비해 걷는 일도 늘었다. 공원을 지날 때면 꽃 향기가 코에 스미고, 길어진 해는 걷는 사람의 등을 적당한 온기로 쓸어준다.


계절이 바뀌니 입맛이 좋아진다. 핑계라고 하실 수 있겠지만, 날이 따뜻해지니까 괜히 입이 궁금한 걸 어떡해. 빵 가게 앞을 지날 때면 빵 굽는 고소하고 달큰한 냄새에 발걸음이 느려진다. 굶주린 채 퇴근하는 직장인에게는 너무 강렬한 유혹이다. 


필자는 빵을 좋아한다. 온갖 종류의 빵과 케이크는 저마다 제각각의 개성이 있다. 포근포근하고 부들부들한 우유식빵, 담백하지만 딱딱하고 잘 부스러지는 바게트, 녹진한 캐러멜이 덧입혀진 빵도 있고, 뭉근한 연유나 버터를 품고 있는 빵도 있다. 당근 케이크는 세상을 약간 더 달콤하게 만들어주고, 베이글은 하루를 든든하게 시작할 수 있도록 기운을 불어넣어 준다.


유난스러운 빵 사랑은 필자를 파주로 이끌었다. 빵돌이와 빵순이들에게 인정받은 빵 맛집이자, 채광이 좋아 광합성하기 딱 좋은 곳. 녹색의 싱그러움과 햇빛의 따스함, 그리고 달착지근한 빵과 케이크 향기가 허기를 돋우는 곳, 앤드테라스 파주를 다녀왔다. 빵 한 덩어리처럼 담백하고 가볍게 이곳에 다녀온 이야기를 들려드릴테니, 쪽 찢어 입에 넣듯 편안하게 읽어주셨으면 한다. 


  


  

햇살을 코스터 삼는 온실 속의 커피 타임

앤드테라스 파주



큼직하고 하얀 건물이 백설기를 닮았


앤드테라스 파주는 의외의 장소에 우뚝 서 있다. 저 너머로 자그마하고 정겨운 건물과 컨테이너 창고들이 보이는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다 보면 ‘까꿍’ 하듯 흰색 건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런 곳에 식물원 카페가 있다고?’ 싶을 만큼 주변에 특별한 볼거리가 없기 때문에 찾아가기 어렵지 않다. 게다가 건물 규모 자체가 꽤나 크고, 심지어 지하주차장도 있다!


주말 낮에 방문하면서 너무 붐비진 않을까 걱정했더랬다. 유명한 곳이기 때문에 걱정대로 방문객은 많았지만, 점심 전 시간대이다 보니 지하주차장까지 내려갈 필욘 없었다. 주차를 마치고 건물의 오른편으로 들어가면 아치 구조를 닮은(진짜 아치는 아니고) 유리문이 보이는데, 이 유리문을 지나고 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식물원에 온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미 일찍부터 자리 잡은 손님들도 꽤나 보였는데 내부가 워낙 널찍하다 보니 그리 북적이진 않았다. 약간의 소음은 물론 있었지만 뻥 뚫린 내부 공간이 그 소음을 잘 퍼뜨려준다. 시끄럽고 복닥이는 곳을 싫어하더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서울 카페의 다닥다닥 붙은 테이블에 피로감을 느낀다면, 듬성듬성 놓인 이곳이 마음에 들 것.   


  


  


햇빛 가득한 실내 정원


앤드테라스의 1층은 때 이른 여름이 찾아와 있다. 중앙의 화단을 중심으로 곳곳에 배치된 화분의 식물은 요즘 가로수에서 보이는 앙증맞은 연둣빛이 아니라, 햇빛을 잔뜩 머금고 무성하게 자란 초록빛이다. 이곳을 먼저 다녀간 방문객들의 후기마다 ‘조화인 줄 알았다’고 하시던데, 괜히 그런 게 아니었다. 짙푸른 잎사귀들은 잘 정돈돼있었고 인공적이라고 할 만큼 선명한 녹색을 띤다. 시원스레 뚫린 통창 너머로 들어오는 4월의 햇빛을 6월의 그것처럼 받고 있는 풀잎들을 보고 있자면 괜히 매미 울음소리라도 들려올 것만 같다. 


누차 언급했듯 이곳은 상당히 널찍한 공간을 자랑하기 때문에, 옆 테이블의 대화가 이쪽으로 넘어올 걱정도 덜하다. 그러니 약간의 백색소음과 드높은 잎사귀들이 주는 초록빛 활력이 필요하다면 1층에 자리 잡는 것이 좋다. 머리 위를 훌쩍 넘겨 2층까지 쭉쭉 뻗은 나무 아래에 앉아있다 보면 고등학생 시절 테마파크로 소풍을 갔던 기억이 떠오를 수도 있겠다. 위로도 뻥 뚫린 이곳 중앙은 정오의 햇빛이 아주 잘 쏟아져 내린다. 


   


 


다이어트는 미뤄두고 오셔야 합니다


초여름을 닮은 1층 공간에서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드디어 온갖 종류의 빵과 케이크들을 만날 수 있다. 여느 프랜차이즈 베이커리처럼 트레이를 들고 이것저것 주워 담으면 되는데, 이때가 바로 자제력이 필요한 순간이다. 이곳의 빵들은 꽤 크고, 속도 꽉 차 있어 돼지력이 낮은 사람이라면 금세 배불러할 수도 있기 때문. 


필자도 잠깐 방심한 사이 트레이가 미어터질 만큼 골랐다가 혼자서 다 먹을 수 있을 만큼만 남기고 덜어내야 했다. 깜빠뉴와 마늘바게트를 덜어내고, 우유 생크림 몽블랑과 에그타르트를 내려놓아야만 하는 괴로운 심정을 한 번 상상해보시길. 아침 식사를 하고 방문한 게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던 순간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한 필자가 고른 빵은 어니언 베이글과 버터 연유 프레첼(라우겐)이다. 빵 본연의 맛을 즐기기 위해 비교적(?) 담백한 종류로 고른 결과물이다. 조금 적지 않나 싶었는데 그것만으로도 트레이가 묵직해졌다. 버터 연유 프레첼은 고소하면서도 적당한 단맛이 입안을 가득 채워줬고, 어니언 베이글에 얹어진 부드러운 크림은 손을 쉬지 못하게 만들었다. 소금빵과 무화과 파운드까지만 더 먹어볼 걸…


참고로 빵돌이가 아니라고 해도 걱정 없다. 다른 방문객의 테이블을 흘깃거려보니 샐러드나, 파스타도 있고 스테이크도 있더라. 다음번에 녹음 속에서 한가롭게 햇살을 받으며 브런치 타임을 갖게 된다면 후기를 들려드리겠다. 그땐 꼭 소금빵을 먹어볼 작정이다. 


  


 

 

시에서 시선을 거두고 대화에 집중할 시간 


1층의 활기찬 느낌도 좋지만, 만약 조금 더 한적하고 여유롭게 쉬고 싶다면 2층과 3층으로 올라가면 된다. 2층 역시 넓은 간격으로 테이블과 의자가 배치돼 있고 대규모 모임에 적합할 법한 큰 테이블도 있다. 가족 단위의 모임이 있다면 딱 좋을 규모니까, 인원수 걱정도 덜 하실 터다.


천장의 통유리로 쏟아지는 햇빛이 조금 더 가까운 3층은 숨겨져 있듯 안쪽 깊이 있다. 2층에서 반층만 올라가면 되는 독특한 구조로, 3층 난간 쪽 테이블에 앉아있으면 1층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다. 만약 2층과 3층의 창문이 살짝 열려있는 날이라면 군데군데 놓인 화분의 나뭇가지가 살랑이면서 녹색을 뽐내는 걸 가만히 지켜보게 된다. 


3층에는 양쪽을 오갈 수 있는 구름다리가 놓여있다. 구름다리 정 중앙에 멈춰 서서 사진을 찍는 사람도 더러 볼 수 있다. 채광이 워낙 좋다 보니 사진을 찍기에도 좋은 곳으로 소문이 나 있더라. 햇빛을 피할 수 있는 테이블도 물론 있지만, 2층과 3층의 거의 모든 자리는 볕이 골고루 잘 든다. 고양이 낮잠 자듯 노릇노릇 구워질 수 있으니 자리를 잘 선택하셔야겠다.


서울에서도 카페를 자주 찾는 편인데, 사실 딱히 찾아다니는 게 아닌 한 찌끔찌끔 앙증맞은 규모의 카페가 대부분이다. 서울에선 이곳만큼 시원한 개방감을 느낄 수 있는 카페가 그리 많지 않다. 서글프지만 서울의 땅값은 너무나도 높으니 어쩔 수 없다. 


    


 


우리도 광합성이 필요해요


그거 알고 계시는지, 식물 말고 우리도 광합성을 해야 한다. 아니, 문자 그대로 엽록소를 통해 햇빛을 흡수하는 그거 말고. 체내에서 비타민D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햇빛을 쬐어줘야 한다고 하더라. 비타민D가 세로토닌 수치를 높여주는데, 이것이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하고 우울과 불안을 줄이는 효과도 있단다. 그래서 햇빛을 자주 받아야 한다고.


아~ 복잡하다. 이런 이과적인 이유 말고 문돌이 다운 이유를 대 보겠다. 햇빛을 받고 있으면 슬며시 행복감이 느껴진다. 일단 따뜻하기도 한데, 다른 계절에 비해 유독 봄의 햇빛은 부드러운 감각으로 우리 피부에 와닿는다. 인정하시는지? 여름은 너무 뜨겁고, 가을이나 겨울은 어쩐지 쓸쓸하지 않나. 봄의 햇빛은 꼭 부드럽고 폭신한 식빵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춥고도 기나긴 터널을 지나온 뒤인 만큼 우리는 더 햇빛을 받아야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장 757일 만에 전면 해제됐으니 말이다. 지난 코로롱의 시간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즐거운 일도 있으셨겠지만 마스크 뒤에 괴롭고 속상한 일도 많이들 감춰두고 계실 터다. 그러니 우리는 이 햇빛을 받으며 광합성을 하고, 맛있는 빵을 오물거리며 행복을 느낄 자격이 있다.


하필 또 감염병이 잦아들며 숨통이 트이기 시작하는 시기가 마침 봄이라는 것도 참 반갑다. 2020년과 2021년에도 물론 봄이야 있었지만 올해만큼 기분 좋게 봄을 맞이할 수는 없었으니까. 아무튼 조만간 눈 깜짝할 새 날씨가 뜨거워질 게다. 그러면 갓 구운 식빵에 둘러 쌓인 듯한 이 봄 특유의 햇빛도 지나고 없을 것이고. 그렇게 되기 전에 부디 새싹들과 함께 광합성을 자주 해 두시길 바란다. 연둣빛 아기 새싹들이 짙은 녹색으로 쑥쑥 자라듯이, 우리도 조금 더 짙고 단단해질지도 모르니까.  


  


 


* 문의: 031-937-8612
* 영업시간: 매일 10:00 ~ 22:00
* 브런치 라스트 오더: 18:50
* 주차: 가능
* 기타: 애견 동반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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