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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홀라 May 16. 2022

황인용 뮤직스페이스 카메라타,
음악이 대류하는 이곳

이곳에는 또 어떤 예술이 잉태되어 있을까


학교 다닐 때부터 공부를 썩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좋아하지도 않았고. 방에 들어가서 공부 좀 하라는 부모님의 잔소리는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방에 들어가 보지도 않는 교과서나 문제집을 펼쳐놓고는 라디오를 들었다. 가장 많이 들었던 라디오 프로그램은 아무래도 ‘배철수의 음악캠프’다.


저녁 여섯 시부터 여덟 시 무렵까지 배철수 형님(형님이라는 호칭을 좋아하신다)의 묵직한 목소리와 고집 있는 멘트들, 그리고 그 시절 좋아했던 음악들로 가득 찼던 나의 방. 사춘기를 나름 강렬하게 맞았던 필자에게 그 공간은 우주 한가운데 홀로 동떨어진 듯한 외로움 속에서 세상과 나를 이어주는 공간이었다.


여전히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퇴근길에 즐겨 듣는데, 올해가 자그마치 32주년을 맞았단다. 참 오랫동안 함께 해주셨지만 솔직히는 그가 앞으로 30년 이상은 오래 방송을 해 주셨으면 한다. 아니면 어딘가에 그의 취향이 고스란히 녹아있을 공간 하나를 마련해 배캠 팬들을 반갑게 맞아주셨으면 좋겠다. 우리보다 윗 세대에게 ‘황인용’ 선생님이 그러고 계시듯. 황인용 선생님이 2004년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에 문을 연 고전음악 감상실 ‘황인용 뮤직 스페이스 카메라타’에 다녀왔다.

 




음악의 대류현상이 일어나는 공간

황인용 뮤직스페이스 카메라타



목재와 콘크리트, 몇 줌의 햇빛으로 만들어진 내부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은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지만 그 안에서도 약간 외곽에 위치한 카메라타는 비교적 조용한 편이다. 단단하고 묵직하게 보이는 박스 형태의 콘크리트 건물은 두 개의 동으로 나뉘어 있는데, 왼쪽은 황인용 선생님의 개인 공간이고 오른쪽이 음악감상실 카메라타다. 필로티 구조의 1층에는 낡은 자동차 한 대가 세워져 있다. 선생님의 자동차 일지 궁금했다.


건물에 가까이 가면 내부에서 울려 퍼지고 있는 음악소리가 흘러나오는 걸 들을 수 있다. 계단 옆의 벽에는 그 달의 콘서트 일정 등을 알리는 팜플렛이 붙어있으니 흥미 있는 공연이 있다면 날짜를 확인해두는 것이 좋겠다.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자그마한 문이 보인다. 그게 카메라타의 입구다. 


콘서트홀을 연상시키는 내부 구조는 생각보다 널찍하다. 밖에서 보기에는 다소 꽉 막혀서 답답하게 보일 수 있지만 의외로 햇빛이 공간 곳곳을 고르게 내리쬐고 있다. 정면에서 오른편에는 CD와 LP가 빼곡히 들어찬 구역이 있는데, ‘STAFF ONLY’라 적혀있어 살펴볼 수는 없었다. 아마 이곳의 스태프들 또는 황인용 선생님이 저 공간 안에서 곡을 골라 재생하고 계실 터다. 

  


적당한 자리에 앉아 음료를 선택하고(입장료에 음료 한 잔 가격이 포함돼 있다) 앉은 뒤 공간을 조금 더 둘러볼 수 있었다. 영화 <아빠가 줄었어요>를 보신 적 있는지? 개미 정도 크기로 줄어든 주인공 일행이 영화 중간에 오디오 내부로 들어가게 되는데, 이 공간이 바로 그런 느낌이다. 몸이 작아져 커다란 오디오 안으로 들어와 있는 듯 한 느낌.


어둑한 실내 깊숙이 파고드는 자연광은 스피커 부품 사이의 유격으로 비치는 햇빛처럼 느껴진다. 정면을 향해 배치된 의자들, 정면의 양쪽에 놓인 커다란 스피커. 그리고 중앙에는 콘크리트 벽 안으로 매립된 스피커까지 보인다. 콘크리트와 목재로 구성된 실내 공간 내부를 울리는 클래식 음악은 나무 벽과 바닥, 콘크리트 벽을 치고 둥둥 울린다. 


여러분은 책을 읽을 때 음악을 듣는 편인지, 아닌지? 필자는 전자다. 주로 가사가 없는 연주곡을 즐겨 듣는다. 고전음악 감상실인 카메라타에는 계속해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그 때문인지 책을 들고 온 방문객을 상당히 많이 볼 수 있다. 노트와 펜을 준비해 뭔가를 끄적끄적 적는 분도, 천장의 창을 통해 들어오는 한낮의 자연광을 흠뻑 받으며 햇빛 샤워를 하는 분도 있다.


만약 독서와 음악을 함께 즐기시는 편이라면 가벼운 책 한 권을 들고 오시는 것도 좋겠다. 음악 때문에 책에 집중하지 못하는 분이라면 생각할 거리 아니면 하품 몇 모금을 챙겨서 찾으시는 걸 추천한다. 이곳은 고요하다면 고요 하달 수도 있고, 음악으로 가득 차 있어 잡념을 털어내기도 좋거든. 




   


커다란 스피커 안에 들어가 멍 때리기 


커다란 스피커는 고고하게 음악 소리를 토해낸다. 필자가 머물렀을 때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음반이 LP로 재생되고 있었는데, 낡은 바이닐 특유의 표면 잡음까지도 선명하게 들려온다. 요즘은 이런 잡음까지 ‘감성’이라며 즐기는 분들이 많다고 한다. LP판이 지지직거리는 아날로그 감성을 좋아라 하는 분이라면 앞쪽 자리를 잡는 것을 권장한다. 


초등학생 시절, ‘따뜻한 공기는 위로 올라가고 차가운 공기는 아래로 내려간다’는 사실을 배웠다. 차가운 공기는 밀도가 높아 가라앉고, 뜨거운 공기는 반대로 가볍기 때문에 올라가는 것이라던가 뭐, 아무튼 그렇단다. 그걸 배웠을 즈음 했던 실없는 생각 하나. 만약 음악에도 온도가 있다면, 음악은 위로 올라갈까? 아래로 내려갈까?


루이스 본파처럼 하늘하늘거리는 보사노바 음악은 분명 위로 뜰 것이다. 가볍고 경쾌하고, 따뜻함이 느껴지는 장르니까. 수프얀 스티븐스의 노래 중 대다수는 아마 낮게 바닥에 깔릴 것이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그의 목소리는 어쩐지 가을이나 겨울 무렵의 공기처럼 코밑을 차갑게 한다. 


클래식 장르의 음악들은 어떨까? 봄처럼 하늘거리는 차이코프스키의 ‘꽃의 왈츠(Waltz of the Flowers)’는 당연히 둥실둥실 떠올라 천장에 맺힐 것이다. 클로드 드뷔시의 ‘달빛(Clair de Lune)’은 구름을 머금은 달처럼 떠오르는 한편, 밤이슬처럼 낮게 깔리기도 할 것이다.


이어서 재생된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의 음반은 CD였다. 가녀린 듯 날카로운 선율은 나무와 콘크리트를 타고 공간을 오르내렸고, 그녀의 바이올린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연주하는 악기들과 엇갈렸다가 만나고 부딪히면서 카메라타를 가득 채웠다. 




  


밤을 잊은 그대에게, 영업시간은 9시까지 지만


<밤을 잊은 그대에게>, <황인용의 영팝스> 등으로 사랑받는 DJ이자 70년대 최고의 라디오 스타셨던 황인용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부모님께나 들을 수 있다. 갬성에 젖어드는 심야 시간, 당시의 청춘들에게 ‘카펜터스’, ‘플릿우드맥’, ‘나나 무스쿠리’ 등 팝스타들의 곡을 들려주셨다고 한다.


그때의 추억을 지닌 60년대~70년대생들은 우상이었던 황인용 선생의 흔적을 찾아 이곳에 온다. 늦은 시간까지 밤을 잊은 채 팝 음악에 빠져들었던 청춘들은 이제 희끗해진 머리칼을 쓸어 넘겨주는 딸과 함께, 자글자글하게 웃어주는 남편과 함께 카메라타를 찾고 있다. 황인용 선생을 존경하는 후배들도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클래식 레이블에서는 음반을 소개하기 위해, 피아니스트와 첼리스트는 콘서트를 위해 카메라타로 온다. 시집이 발표되고, 시가 낭독되고, 방송인 후배들이 선생을 찾는다. 


카메라타(Camerata). 1500년대 후반 이탈리아 피렌체 바르디 백작 살롱에는 학자와 시인, 음악가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예술에 대해 함께 논의하고 교류하면서 의견을 나눴으며, ‘오페라’라는 예술을 탄생시켰다. 카메라타는 이탈리아어로 ‘동지들’, ‘작은 방’이라는 뜻을 담고 있단다. 수백 년이 지나 다시 등장한 이 작은 방에서 동지들은 음악과 시를 나누며 때로는 음악 속에서 휴식하면서 예술을 통해 교류하고, 하나가 되고 있다.


여든을 넘겼음에도 여전히 멋지게 가다듬어진 목소리로 동지들을 맞이하는 황인용 선생과 예술가들이 모인 이곳에는 또 어떤 예술이 잉태되어 있을까. 예술적 해갈이 필요하다면, 마음 맞는 동지와 함께 이곳을 찾아보는 것을 권장한다. 이곳에 모인 이들과의 어떤 뜻밖의 만남이 깊이 있는 울림을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 문의: 031-957-3369
* 영업시간: 평일 11:00 ~ 21:00, 주말 및 공휴일 11:00 ~ 22:00
* 입장료: 성인 10,000원 / 초중고생 8,000원 (음료 한 잔 무료)
* 주차: 가능
* 기타: 매월 휴무일 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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