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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훈 Jun 16. 2023

종강일기

2023.6.16 (fri)

  종강했다.

그래도 요즘은 마음이 대체로 평온하다. 잘 지내고 있다.


  근데 사실 어제 공황발작 때문에 기말시험을 못 갔다. (대참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을 수 있는 건 이번 학기에 얻은 가장 중요한 깨달음 때문일 것이다. 그건 바로 스스로를 기다려줄 줄 알아야 한다는 것.


  더 단단해지려고 심리 상담을 신청했는데 상담을 하며 계속 듣게 되고 또 스스로 느끼게 되는 메시지는 오히려 정반대다. 나 스스로와 주위 사람들에게 더 너그러워지고 부드러워지자는 것.

엄격하고 투박한 마음이 내 안에 항상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늘 불안이 있다. 존재론적 불안 같은 것. 눈에 보이지 않는 것과 스스로 싸워 이겨내려 하다 보니 정작 내 주위의 정말 소중한 사람들에게 충분한 눈길을 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미안하다. 나 자신에게도 미안하고.

좀 못나도 괜찮은데.

그러나 후회는 없다. 사실 생각해 보면 어제의 나는 어제 주어졌던 에너지와 조건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다.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나라도 가엽게 여겨주어야 하지 않을까?


  이번 학기에는 또 불안 장애와 싸우는 동시에 학업을 이어나가야 했는데, 부족한 실력을 가지고 여러 일들을 처리하다 보니 지치기도 했었고 정말 아프기도 했었다. 심각한 무기력증에 빠졌을 때도 있었고. 그렇지만 아프고 지쳤던 만큼 감사할 수 있는 것은, 그럼에도 내가 여기 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도우시고 보호해 주신 분이 계시기에. 쓰러지지 않고 끈기 있게 우뚝 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여기, 살아 숨 쉴 수 있는 게 정말 소중한 일이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삶은 곧 기적이고 살아있는 역사다.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내가 붙들고 있는 것들, 내 꿈들이 의미 있고 값지다.


  예전부터 글 쓰는 게 좋았고 문학이 좋았다. 그래서 시 쓰는 게 좋다. 요즘은 정신분석학이랑 신경과학이 재미있는 것 같고 화학 중에는 물리화학이 잘 맞는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 내가 좋아하는 것들 알아가는 중인 것 같아 기쁘다. 완벽하지 않아도 되고, 지금 이대로 충분하다. 이번 학기에 새로 얻은 꿈과 사랑을 바라보며 이번 방학을 살아내기를 기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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