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훈 Dec 27. 2021

abstract

2020.01.25

블로그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2020년 1월 19일, 상해를 떠나기 3일 전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고 집에 가던 중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던 정든 이 곳을 떠나려니 아쉬움이 들고, 앞으로의 생활도 걱정된다. 이런 상황에 기분이 그렇게 좋진 않고, 행복한 것 같진 않은데 이런 감정도 나름 재밌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아주 오래 전부터 느끼던 것이지만 내 마음 속에 드는 감정들 – 그것들이 긍정적인 것이든 우울한 것이든 고통스러운 것이든 - 그런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수용하고, 온전히 느끼는 것에는 은근한 즐거움이 있다. 슬플 때 혼자 산책하면서 일부러 슬픈 노래만 골라 들으며 눈물 흘리면서도, 다신 이런 슬픔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식의 생각을 하면 신기하게도 뿌듯한 기분이 든다. 고통스럽고 아픈 감정들이 오히려 즐거움과 유쾌함으로 승화되는 이런 아이러니는 음미할 만 하다. 혹독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스스로에게 선물하는 일상 속 자잘한 위로들이 꼭 필요하다. 내게 작은 기쁨을 주는 많은 것들 중 하나가 감정의 바다 한복판에서 헤엄치는 것이라면, 그 감정들에서 추상을 덜고 형태를 부여하여 기록물로 남기는 것, 그 과정 중에서 감정의 바다를 탐사하는 것만큼 내게 필요한 일이 따로 있을까. 


  또 한 가지 이유는 음악과 관련 있다. 나는 평소에 음악을 아주아주 즐겨 듣는데, 하루 중 절반 이상 내 귀에 에어팟이 꽂혀 있을 정도로 음악과 나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과외해서 번 돈은 모두 씨디나 엘피 구매로 탕진한다. 좋아하는 음반을 들으며 그만의 세상에 빠지는 것만큼 즐거운 취미가 없다. 각 음반은 시와 사운드로 이루어진 하나의 세계다. 나는 그 세계에 방문하여 나와 다른 한 인격체의 감정을 간접적로 느끼고, 그것을 나의 그것과 합치시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타인의 세계를 이해하고, 나의 세계와 결합하여 모호했던 나의 세계를 구체화하고, 확장해가는 것이다. 가끔씩 노래를 듣다가 귀에 꽂히는 노랫말들이 있는데, 그런 가사들은 살아갈 힘을 주기도 한다. 희망을 주기도 한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지치는 일상 속에서 위로가 되는 노랫말들을 그냥 머릿속에서 읊조리다가 놓아주기보단, 기록해두고 싶었다. 글을 쓰는 과정 속에서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찾아왔을 때 추억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앞으로 종종 심심할 때 블로그에 글을 쓰며 시간을 보낼 예정인데, 글 주제는 그 때 그 때 내 마음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문제나 일에 관해 쓰게 될 것 같다. 또, 갑자기 귀에 박힌 노래 가사에 대해 쓰게 될지도.


---


  이 글을 쓰고 개인 블로그에 올린지도 일 년이 다 되어 간다. 한국에 도착하고 자가 격리하면서 완성한 글이니, 한국에 온 지도 한 해가 다 되어간다는 뜻이다. 대학생의 시간은 왜 이리 빨리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일 년 사이에 나는 많이 바뀌었다. 그러나 위로가 필요한 영혼이라는 점은 그 때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처절한 영혼의 갈증을 그 누구보다 긍정적으로, 즐겁게 받아들이고 이겨내려 한 내 과거의 모습에서 새삼스레 많은 생각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제는 더 중요한 것들을 찾아가고 그것들에 집중하는 것이 최상위 목표이지만, 가끔씩 내 마음의 한구석에 담아둔 모습들을 재방문하면 힘이 된다. 

작가의 이전글 가속사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