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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훈 Nov 03. 2021

가속사회

정보의 홍수 속에서 (essay)

  지금까지 인류가 걸어온 길은 불확실성으로부터의 탈피를 위한 처절한 투쟁의 역사로 볼 수 있다. 철학의 시작은 ‘알고자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어디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가? 왜 사는가? 어떻게 하면 참되게 살 수 있는가? 수천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답을 알지 못한다. 그것은 인간의 생애는 유한하면서도 그 본질이 불확실성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은 무엇인가? 바로 “판단이나 의사결정에 필요한 적절한 정보의 부족” 이다. 알고자 하는 것이 삶의 의미 탐색으로부터 시작되었으니, 정보는 살아가기(살아내기) 위해 꼭 필요한 셈이다. 기술의 발전은 인류로 하여금 셀 수 없을 만큼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저장하고, 재생산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끊임없는 정보의 재생산과 열람이 가능해진 지금도, 우리는 불확실성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정보를 닥치는대로 축적하려는 시도는 우리 사회를 많은 면에서 바꾸어 놓았다. 이제 시장은 상품만을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물질이 아닌 것들이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비물질적 생산 방식이 지배하는 오늘의 사회에서 정보와 커뮤니케이션은 생산성의 증대에 있어 핵심 요소이다. 이것들은 많을수록 좋다. 뿐만 아니라 정보는 짧은 시간 내에 처리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하기에 다루기 쉬워야한다. 그렇기에 다듬어져야 하고, 가벼워져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우리 사회를 ‘가속 사회’로 만들어가고 있다.

  가속 사회는 ‘정보가 가속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신속하다. 계산을 통해 정보는 빠르게 처리된다. 인간의 두뇌와는 다르게, 계산은 언제나 정해진 답을 가지고 있다. 같은 문제에 대해 항상 같은 답을 가진다. 인간 두뇌에 저장된 정보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끊임없이 변화하고, 왜곡된다. 또, 개개인마다 그 형상과 내용이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사유는 특별하면서 느리다. 컴퓨팅 기술의 발전으로 정보가 컴퓨터 속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처리되다 보니, 컴퓨터 밖에서 뇌가 마주하는 정보의 양도 그 어느 때보다 방대해졌다. 인터넷에 접속한 상태에서는 매초마다 셀 수 없을 만큼의 정보들이 눈에 들어온다. 한 사람이 정보를 대하는 방식, 대중에게 정보가 전달되는 양상 등은 변화할 수 밖에 없다. 이제 뇌들도 사유를 하는 대신 컴퓨터처럼 받아들인다. 그 예로 모든 것이 ‘긍정화’되는 모습을 들 수 있다. 비판적인 사고는 정보의 흐름에 걸림돌이다. 정보는 빠른 소통을 위해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도 무차별적으로 흐르고 전달되어야 하지만 비판적인 사유는 필터처럼 불필요하거나 나쁜 정보를 걸러 내기도 하고, 한 가지 정보를 오랫동안 붙들고 있기도 한다. 분별이라는장애물을 제거한 가속 사회에서는 ‘참’인 명제는 없고, ‘의견’만 있을 뿐이다. 더 나은 것이란 없고, 오직 취향과 다양성만 있을 뿐이다. 

  가속 사회에서는 ‘기술도 가속’한다. 오늘날 기술의 진보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고 신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레이 커즈와일은저서 '특이점이 온다(The Singularity is Near)'에서 ‘특이점’이라는 개념을 소개하며, 그것을 “미래에 기술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빨라지고 그 영향이 매우 깊어서 인간의 생활이 되돌릴 수 없도록 변화되는 시기”로 정의한다. 결국 특이점이 온다는 것은 기술이 가속하여 인류의 리듬을 추월하는 시기가 다가온다는 것이다. COVID-19 팬데믹 속에서의 m-RNA 백신 개발 과정을 통해 우리는 충분한 투자 하에 과학 기술이 얼마나 신속하게 발전할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전세계적으로 접종이 시행되고 있는 COVID-19에 대한 m-RNA 백신은 체내에 유입되어 세포들에게 바이러스 특유의 표면 구조를 가지고 있는 무해한 단백질 조각을 생산하도록 지시하여 면역반응을 일으키도록 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이 때, COVID-19 백신 개발의 관건은 바로 그 지시사항, 즉 mRNA를 몸 속의 세포까지 파괴되지 않도록, 안전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전달체를 만드는 것이었다. 과거였다면 수 년이 걸렸을 개발 과정이 단 2 년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이루어진 것이다. 스스로 정보를 수집하여 스스로 정보를 창출해내는 정보인 인공지능의 개발 역시 가속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마지막은, ‘관계 맺음의 호흡이 점점 짧아진다’는 점에서의 가속 사회이다. 인간 세상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가상적 공간으로 침투하였다. 자연스럽게, 관계 맺음의 장 역시 신속하고 편리한 소통을 가능케 하는 인터넷 공간으로 이동하였다. 이러한 이동이 가속 사회의 핵심이다. 인터넷 공간에서 사용자는 인간뿐만 아니라 사물, 데이터, 컨텐츠 등과도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관계 맺음의 간소화의 원인은 궁극적으로 관계 맺음 역시 정보 창출의 수단으로 전락한 점에 있다. 만남과 소통의 장이 현실 세계로부터 그 중심이 가상 세계로 이동하면서 개체 간의 상호작용 역시 정보로서 수집될 수 있다. 이젠 상호작용도 빠를수록 좋기에 더욱 간소화되고 간편해진다. 소통은 터치 몇 번이면 끝난다. 컨텐츠는 점점 호흡이 짧아진다. 의미 중심보다는, 자극 중심의 소통이 주를 이룬다. 결국 상호작용은 ‘접촉’에 그치고 만다. 

  가속 사회에서는 모든 일이 신속하게, 순간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구성원 또한 그 리듬에 발을 맞출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점점 개인은 자신만의 시간, 고요하고 여유로운 스스로의 시간을 잃어간다. 천천히 돌아보며 깊은 사유를 하는 것, 차근차근 서로를 깊이 알아가는 것은 더이상 사회적이지 않다. 불확실성은 아직까지 인간 삶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 있어서 그 아름다움은, 알아야 할 것은 알아가고, 모르는 편이 나은 것은 그런대로 두며 자신만의 균형을 찾아가며 무르익어 나가는 데에 있다. 끝까지 남는 것은 무엇인지, 진정으로 의미 있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을 멈추지 말길 바란다. 그것이 바로 끊임없이 가속하는 사회에서 호흡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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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글쓰기 과제로 제출한 글. 조교님 피드백도 마음에 들고 그래서 살짝콩 올려봄.. 두고두고 수정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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