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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이 Nov 22. 2024

아이의 세상에서 길을 잃은 엄마라니  

아이의 세계 어디에 서 있는가? (1) 

초등학교 2학년 딸아이가 친구와 놀다가 들어왔다. 

생각보다 일찍 집에 들어온다는 연락이 왔고,

영 힘이 없어 보이는 모습에 신경이 쓰였다.


"왜 이렇게 일찍 집에 온다고 했어? 재미없었어?" 

"응, 그냥 빨리 집에 오고 싶었어."
"어젯밤에 잠이 부족해서 그런가 보다. 좀 잘래?"

"응." 

 어제 일찍 좀 자라고 하는 걸 기어이 늦게 자더니.. 싶다. 

 하지만 아무래도 누워 있는 아이가 평소와는 다르게 느껴진다. 
"무슨 있었어? 수영(가명)이싸웠어?" 

"아니."  
"근데, 왜 그래?" 

엄마의 직감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는 확실히 평소와 다른 모습이었다. 

 
"엄마 속상할까 봐, 말 안 할래." 

철렁, 하는 마음과 함께 오만가지 생각이 스친다. 


대개는 이러저러해서 자기가 너무 속상하다고 말하거나, 

혹은 '엄마한테 혼날까 봐' 말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그런데 엄마가 속상할까 봐 말하지 못하는 일이라니?!
대체 무슨 일이지? 


"말해도 괜찮아. 엄마 속상해하지 않을게. 

 그거보다 우리 덕이가 엄마한테 말하지 않는 게, 엄마는 더 속상할 것 같아." 

한참을 달랜 끝에야 나는, 무겁게 꺼내는 아이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있지... 오늘 놀이터에서..." 





 그날은 오빠들의 줄넘기 대회가 있었다.  
대회가 길어지자 관중석에 있던 덕이(가명)가 무척 지루해하며 물었다.   

"엄마 나 오늘 지민(가명)이랑 놀아도 돼? 놀 수 있어?"
"음, 오늘은 오빠들 대회가 너무 늦게 끝나서 놀기 힘들 것 같아.  

오늘 말고 내일 놀자고 하면 안 될까? "

"응 알았어. 괜찮아요." 


그러다 경기가 예상보다 더 길어지자, 

나는 이런 꼬맹이가 안쓰럽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마침 같은 경기에 출전한 지민이와 그의 엄마가 먼저 집으로 간다기에 아이를 맡기기로 했다.  

"언니, 우리 덕이(가명) 잘 부탁해요."

"응 그래 걱정 마. 애들끼리 잘 노니까." 

친구와 놀 생각으로 아이의 얼굴은 활짝 피었고, 

그 환한 얼굴과 가벼운 발걸음에 나는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 

그렇게 보낸 것이 몇 시간 전인데. 

집에 온 아이의 모습은 적잖이 나를 당황하게 했다.  




엄마가 속상해할까 봐 말하지 않겠다던 아이의 이야기는 이랬다.


수영이 집 근처 놀이터에서 이제 막 놀기 시작했을 때, 

지민이랑 같은 태권도에 다니는 남자아이가 덕이를 보고 "어?!"하고 놀라더란다. 

그리고는 바로 지민이에게 전화를 한 모양이다.  


"야, 네 친구 여기서 놀고 있는데? 바꿔줄게." 

그렇게 덕이는 전화기를 넘겨받았다. 

그리고 전화기 넘어 들리는 말. 

"배신자."


지민이는 곧장 놀이터에 달려왔다고 한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덕이 앞머리를 잡고 발을 올려 옆얼굴에 건드렸다고 했다. 

덕이한테 발로 얼굴을 찼다는 거냐고 몇 번을 물었지만 그건 아니란다. 


아이의 말에 가슴이 울컥하고 손끝이 떨렸다. 


"그래서 덕이는 어땠어?"

"너무 놀랐어... 창피하고... 울지도 못했어."


아이의 말을 듣는데 온몸이 긴장된 채로 그대로 굳었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그 자리에 계속 있어야만 했던 아이 마음을 생각하니, 

또 집에 돌아오는 길,  집에 와서 나에게 말하기까지 그 몇 시간 동안 

아이의 세상은 어땠을까를 생각하니.. 

속이 문드러진다는 게 이런 것이리라. 


그리고 이 어린아이에게, 엄마가 속상할까 봐 말하지 않는 그 마음은 또 어떤 마음인가?  




저녁이 되고 아이는 안정을 되찾았다. 

그리고는 이제는 상황을 정리해야겠다 싶은지,  

슬슬 내 눈치를 살피다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묻는다. 


"엄마, 어떻게 할 거야? 나 이제 괜찮은데.." 


덕이가 좀 괜찮아졌다는 게 눈에 보이니. 

안도감과 함께 본격적인 나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심장이 다시 요동치고, 머릿속이 엉켜 들어간다. 

  

"덕이는, 엄마가 뭘 해주면 좋겠어?"
" 잘 모르겠어. 뭔가 일이 커질까 봐, 걱정 돼."

"덕이가 말하는 일이 커진다는 건 뭔데?"

"몰라."

"그럼 앞으로도 지민이랑 계속 놀고 싶어?"

"응. 지금 생각해 보니까, 아까 그렇게 화내고 난 다음에 

나한테 미안해하는 눈치였어. 나랑 놀고 싶어 하기도 하고"

"그래, 알았어. 엄마가 덕이가 가장 원하는 방향으로, 일 크게 만들지 않고, 

그러면서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 방법을 생각해 볼게. 엄마 믿지?" 

"응"


대체 그런 방법이 어디 있을까?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그 아이 엄마와 대화해야 하나? 그 엄마 번호는 어떻게 얻어야 하지?

놀이터에 CCTV부터 확인해 봐야 하지 않을까. 
CCTV 보려면 경찰 대동하라고 하는데, 나 혼자 확인해도 되려나? 

내가 지금 너무 일을 크게 생각하고 있는 건가?

아니, 상처하나 없다고 해도, 이런 일은 바로 잡아야지.

우리 덕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있는 그대로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일이 커질까 두려워하는 아이의 눈을 보니, 그 마음을 왠지 알 것도 같다. 

내 딴에 잘 처리한다고 하는 일이,  아이에게는 그저 어른의 방법으로 여겨질 수도 있으리라. 

엄마한테 말해서 일이 커져 후회하게 되는 것도 문제지만, 

막상 내가 아무 대응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이에게 무엇을 남길까? 


나에게는 우리 아이가 원하는 결과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이 아이가 앞으로도 엄마에게 무엇이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감정에 휘둘리지 말자.'
'있는 그대로 사실만 보자.' 
...  
그날 밤, 이랬다 저랬다 왔다 갔다 함정에 빠진 나는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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