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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준파 Jan 16. 2023

미국의 국내선

플로리다행 비행기를 타던 날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내가 지내던 버지니아 Charlottesville은 소도시이고, 국내선 공항이 하나 있다. 수속부터 게이트까지 약 15분 내에 해결되는 매우 작은 공항이고, 자연스럽게 큰 비행기의 이착륙이 필요한 노선은 없다. 또한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착륙 유도 시스템이 열악해서 기상 상태가 좋지 않으면 비행기가 연착 혹은 취소되거나 착륙에 실패하고 회항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이착륙 가능 여부에 대한 결정은 생각보다 기준이 더 까다롭다- 그런데 이런 일이 나의 On-site 인터뷰 때마다 매번 발생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인터뷰를 위해 공항에 가는 날이었다. 도착 예정지는 Florida의 Gaineseville. 최근 플로리다 주립대학을 중심으로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도시였다. 약 3~4시간이면 도착하는 꽤 가까운 곳이라 마음의 부담 없이 공항 근처에서 인터뷰 준비 자료를 검토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항공사로부터 믿을 수 없는 문자가 도착했다. 

“기상 상태가 우려되어 비행기가 취소되었으니, 다른 비행 편을 알아보세요.” 뭐라고요? 


인터뷰를 위해 많은 회사의 인원들이 하루 전체 일정을 빼서 기다리고 있는데 취소라니.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공항의 항공사를 찾아갔다.

 "저기요, 나는 오늘 꼭 Gainesville에 가야 해요, 밖을 보세요. 날씨도 그렇게 안 좋지 않잖아요?" 


항공사 직원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한 가지 다른 방법을 알려주었다. 자동차로 약 1~2시간 거리의 Richmond 공항에 가서 다른 항공편을 잡아타면 새벽에는 도착할 수 있다고 했다. 

“감사해요. 아니 그런데 왜 이 공항은 비행기가 안 뜨고 저 공항은 떠요?"

"작아서"


당황스럽고 긴박했던 하루가 지났고, 밤 12시가 넘어 플로리다 공항에 도착했다. 비가 오고 있었다. 택시를 타고 호텔로 향하는 축축한 밤 길에서, 그래도 참 다행이라는 생각에 겨우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다음 날 오전부터 바로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잠을 푹 잤다. 너무나 길고 긴 하루를 보낸 탓에 숨을 고를 틈도 없이 바로 잠에 들었다. 아마 불도 제대로 끄지 못한 채 잠에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음날 오전,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호텔을 나섰다. 야자수가 곳곳에 심어져 있는 풍경이 사진으로만 보던 플로리다였다. 떨리는 마음으로 회사 건물 안으로 들어섰고, 화상으로만 보았던 CEO가 게이트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어색한 인사를 나눈 뒤, Guest 카드를 받았다.


나는 미국의 Guest였고, 이제 막 걸음을 내딛는 중이다.


버지니아 Charlottesville 공항의 일몰, 그리고 아주 작은 비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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