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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시작하는 마음 Oct 20. 2024

글쓰기에도 용기가 필요해

2024. 10. 20.

한 학기의 절반이 지나갔다. 큰아이가 학교에서 중간고사를 치렀고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도 중간고사가 있었다. 오랜만에 시험 문제를 출제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무사히 끝나기를 바랐는데 문제 하나에 오류가 있어 재시험을 봐야 했다. 슬프고 창피했다. 실수를 수습하느라 몸과 마음이 녹초가 되어버렸다.


칠레에 살 때는 마음이 힘들면 글을 썼는데 지금은 글을 쓰기가 어렵다. 나를 노트북 앞으로 데려다 놓기가 힘들다. 대단한 글을 쓰라는 것도 아닌데 나는 자꾸 도망 다닌다. 오늘은 큰 용기를 냈다. 마침 학교에 제출해야 할 보고서가 있었다. 미루고 미루다 더는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글을 쓴다는 핑계를 대고 더 미루고 있는 중이다. 


일을 자꾸 미루다가 마감 시간에 임박해야 하는 습관 때문에 삶이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시험 문제도 서두르다 오류가 생긴 것이다. 내 삶은 '차근차근'이라는 단어 보다 '꾸역꾸역'이라는 단어로 채워졌다. 나를 어디서부터 손을 대서 고쳐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나의 열등감을 자주 확인한다. 똑같은 일을 해도 나보다 더 여유 있게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힘들어진다. 내가 못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해도 그것이 하필 내 직장에서 꼭 필요한 능력이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불안해진다. 이렇게 애매한 능력으로 직장에서 버티는 것이 가능할지 매일 걱정한다.


내 삶이 어디서부터 비뚤어지고 잘못되었는지 궁금하다. 나는 어디까지 좋아질 수 있을지 알고 싶다. 나는 앞으로도 쭉 이렇게 내 재능을 의심하고 내가 좋아지고 있는 건지 매 순간 확인하며 살아야 할까. 그럼 너무 괴로울 것 같다.


학교에서 나는 별 것 아닌 일 앞에서도 과하게 두려움을 느낀다. 내가 그 일을 잘 몰라서, 잘하지 못할 것 같아 그렇다. 물어서 해보면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저 빈칸을 채우면 되는 거였다. 빈칸을 못 채워서 벌벌 떠는 나를 보는 것이 괴롭다.


글을 쓰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괴로움이 더해져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오늘은 미뤘던 일 중 하나인 글쓰기를 해결했다. 미뤘던 다른 일을 시작해야겠다. 꾸역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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