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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맥교지편집위원회 Mar 21. 2024

[86호][사회] 직업의상실

수습위원 손나은


 당신은 지금 어떤 옷을 입고 있나요? 어떤 장신구와 머리모양을 하고 있나요? 이것은 아마도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직업의상실’의 한 부분일지도 모릅니다. 바로 이곳, 직업의상실에서 당신에게 다양한 옷을 소개해 드릴게요.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정해진 옷을 부여받습니다. 동그란 모자와 하늘색 카라티, 노란색 가방을 들면 나는 민들레 유치원의 구성원이 됩니다. 키가 자라 하얀 셔츠, 남색 조끼와 넥타이, 남색 치마, 그리고 로고가 달린 재킷을 입으면 나는 덕성여고의 학생이 됩니다. 옷은 나의 소속과 신분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특성은 성인이 되어도 계속됩니다. 우리는 상대방의 옷을 통해 어떤 직업에 종사하는지 유추할 수 있습니다. 자주색 장식단이 달린 검정 가운은 판사를 연상시킵니다. 초록 가운과 라텍스 장갑, 마스크는 수술실 의사를, 앞치마와 위생모는 요식업 종사자를 떠올리게 하죠. 옷은 단순한 의복의 개념을 넘어 특정한 직업군을 대표하는 상징물로 여겨지며, 우리에게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자, 이제 의상에 담긴 메시지들을 자세히 살펴볼까요?  


 정체성과 권위를 담은 의상

▲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의 호텔 유니폼 ⓒFOX Searchlight Pictures

 의상은 직업의 정체성을 표현하며, 다양한 직종에서 조직의 통일성을 유지하는 데 사용된다. 호텔, 레스토랑, 항공 등의 서비스 업종에서는 조직의 문화와 가치를 대표하는 유니폼을 입는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에서는 보라색의 펠트 소재를 사용한 유니폼이 돋보인다. 이러한 유니폼은 조직 내 일관된 모습을 제공하며 대표성을 형성한다. “호텔을 대표하여 사과합니다”라는 지배인 구스타브의 대사는 그가 입은 복장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다.1) 구성원 자격을 증명하는 것은 개인의 마음가짐이 아니라, 소속 기관을 드러내는 복장이기 때문이다. 유니폼 자체가 일종의 정체성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또한 유니폼은 구성원의 자격을 증명하며 조직 내 위계를 드러낸다. 벨보이나 다른 직원들과 구분되는 보타이와 금색 배지는 지배인의 위치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복장에 담긴 사회적 기호는 제복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견장에 수놓아진 상징의 모양과 개수는 그들의 위계를 공고히 한다. 이러한 위계는 조직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에도 영향을 미친다. 특히 경찰 제복을 입은 이들은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는 집단’으로 해석되어, 사회 질서를 바로잡고 통제할 권한을 가지게 된다. 경찰과 일반 시민을 구분하는 지표는 복장 하나뿐이지만, 이 복장 자체가 명령을 따라야 할 당위로 작용한다. ‘질서를 유지하는 집단’의 명령을 따르는 행위가 사회 질서를 준수하는 일이라고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맥락을 삭제한 맹목적 명령과 복종으로 이어져 개인을 억압하기도 한다.


▲ 집회현장에 배치된 경찰 인력 ⓒ (좌)세계일보 | (우) 문화일보

 때로 제복은 특정 사건에 대한 태도를 형성하며 사회적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 집회 현장에는 언제나 경찰이 있다. 미신고 집회는 물론 사전에 신고된 평화 집회, 심지어는 추모 집회에도 경찰이 존재한다. 작년 겨울 진행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침묵 선전전 현장에는 수많은 경찰 인력이 동원되었다.2) 탑승 시도와 통행 방해, 구호 재창이 없는 시위였음에도 서울교통공사는 ‘퇴거불응죄’와 ‘업무방해죄’를 이유로 강제 퇴거 조치를 취했다.3) 당시 시위에 배치된 경찰은 역사를 가득 메울 정도였고, 경찰의 대거 배치는 마치 비상 상태를 연상시켜 긴장감을 유도했다. 또한 제복을 통해 공적인 권력을 얻게 된 경찰의 퇴거 조치를 목격한 시민들은 장애인 단체의 집회를 불법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들의 행동은 전혀 위법하지 않았지만, 복장이 가진 힘을 통해 시위 참가자들이 시민 통행을 방해하거나 업무를 방해한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여론을 조작하는 것이다.4) 이처럼, 제복은 단순히 착용자의 역할을 넘어 사회에서 작용하는 방식까지 드러낸다. 공적 임무를 수행하는 몸이 제복을 통해 권위를 얻고, 권위를 얻은 제복이 다시 몸에 권한을 부여하는 구조다.


 몸을 보호하지 못하는 의상   

ⓒ경향신문

 현장 노동자의 경우, 복장의 권위보다 기능이 더 큰 임무를 수행한다. 이들의 작업복은 업무 수행 능력으로 직결되는 동시에 신체를 보호하는 필수 장비이기 때문이다. 내열 장갑은 폐기물 소각열로부터 작업자의 손을 보호하고, 안전모는 공사 현장의 추락 사고로부터 작업자를 보호하며, 공업용 마스크는 분진으로부터 호흡기를 보호한다. 그러나 부적절한 작업복과 미흡한 관리로 노동자의 안전과 업무는 위협받기도 한다.

 생활폐기물 소각장에서 근무하는 한 노동자는 여전히 이전 회사에서 제공한 작업용 재킷을 입는다. 현 회사가 제공한 옷이 몸을 보호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화학섬유의 작업복은 불씨가 튀면 확 타올랐다가 녹으면서 피부에 달라붙는다.5) 작업복이 사고를 방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심각한 화상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철을 앞코에 덧댄 신발을 산불 진화대원에게 제공하는 것, 지하 하수처리장 노동자에게 환풍이 되지 않는 작업복을 제공하는 것 역시 업무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유니폼의 예시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는 이유는 작업 당사자가 아닌 외부 결정자가 작업복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의견을 수용하는 회사도 간혹 있지만, 대개는 예산 문제에 밀려 반영되지 않는다.6)

 당사자의 목소리가 닿지 않는 상황은 이들의 사회적 위치와도 직결된다. 사회가 이들을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보편적으로 하얀색 셔츠를 입고 일하는 지식노동자는 사회에서 대접받지만, 작업복을 입고 몸으로 일하는 육체노동자는 종종 차별의 대상이 된다. 육체노동자는 학력 수준이나 지적 수준이 낮다는 인식이 대표적이다. 과거 학교 교실에는 ‘대학가서 미팅할래, 공장가서 미싱할래?’라는 급훈이 걸려있었다.7) 최근 SNS에서는 어머니가 아들에게 환경미화원을 가리키며 “너 공부 안 하면 나중에 커서 저렇게 돼.”라고 말하는 만화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8) 노동의 특성을 그들의 능력과 연결하며 차별하는 혐오적 시선은 사회로부터 그들을 배제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들의 목소리는 쉽게 무시되며, 당사자가 배제된 작업 환경은 더욱 열악해지고, 이러한 열악한 환경이 기피 직종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현상이 초래된다.   


 차별적인 의상

 복장은 직종을 넘어 성별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대부분의 제2금융권은 여성 직원들에게 정장 유니폼을 요구한다. 신협 영남 지점에서 근무해 온 한 직원은 주로 대면 업무를 도맡는 하위 직급 여직원은 반드시 유니폼을 입는다고 설명했다. 이곳의 여성 직원들은 치마와 바지 중 선택할 수 있지만, 유니폼 자체를 거부할 수는 없다. 반면 남성 직원들은 하급직이더라도 유니폼을 입지 않는다. 셔츠와 정장을 취향에 따라 개별적으로 구매하고, 심지어는 피복비로 30만 원을 받는 혜택도 누린다.9) 이러한 불평등은 여성을 특정 역할에 국한하고, 대상화하는 시각과 연결된다. 작업복에는 기업이 바라는 집단의 정체성이 투영되지만, 그 옷을 입는 사람의 요구는 반영되지 않는다. 기업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여성에 대한 인식이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성질과 결합하며 특정한 옷차림으로 부과될 뿐이다. 

▲ (좌 신협은행에서 여성 은행원이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하는 유니폼 ⓒ경향신문 | (우) 남녀구분이 없는 항공사 유니폼 ⓒ에어로케이 인스타그램

 유니폼 형태가 고정되고 유니폼을 입은 여성이 대상화되는 이유는 여성이 ‘돌봄을 제공하는 성적 대상’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들이 일터에서 착용하는 복장 역시도 성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항공사는 여성 승무원에게 쪽 찐 머리와 스카프, 딱 맞는 상의와 치마를 요구한다. 이러한 옷차림은 기내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안전을 책임지는 승무원의 업무와는 무관하다. 오히려 돌발상황에 신속하고 정확하게 대처할 수 없게 한다. 차별이 투사된 유니폼은 여성에 대한 혐오적 시선을 드러내는 동시에 업무 능력을 감소시킨다. 이와 같은 성 상품화는 직업적 편견을 강화하고 유지하며, 여성이 일터에서 부당한 처우에 놓이게 한다. 

 그러나 최근 일부 국내 저가 항공사에서는 이와 같은 고정관념을 깨고자 하는 시도를 보이고 있다. 성별에 따른 구분을 최소화하고 직무 수행에 실용적인 유니폼을 도입하는 것이 그 예다. 해당 항공사의 승무원들은 움직임이 자유로운 상의, 통기성이 좋은 바지, 운동화를 착용한다. 이러한 노력은 여성 성 상품화에 대한 효과적인 대안이 될지도 모른다.



 ‘직업의상실’의 여정은 여기까지입니다. 어떤 의상이 기억에 남았나요? 여러 옷을 보며 어떤 감정을 느꼈나요? 지금까지 이야기한 대로, 의상은 사회적 역할을 표현하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이는 직업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각 직종의 특성을 고려한 복장은 안전과 편의를 고려하는 동시에 직업의 정체성을 나타냅니다. 복장은 업무 수행을 위한 필수 장비가 되기도 하고, 권위와 결합하여 집단의 규범을 공고하는 권력의 표현이 되기도 합니다.

 작업복을 둘러싼 불평등한 권력관계, 편견과 차별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를 개선하려면 의상의 디자인뿐만 아니라, 사회적 시선도 함께 변해야 합니다. 특정 직업이나 외양에 따른 차별을 근본적으로 타파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교육과 인식 개선이 필요합니다. 성별, 직업, 경제적 지위와 상관없이 모든 노동자가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따라서 다양성을 기반으로 서로를 존중한다면 우리는 이 중요한 과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 나은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갈 때, 직업의상실은 진정한 가치를 찾게 되지 않을까요.

 직업의상실의 여정에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에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고 의미 있는 생각거리를 선사했기를 바랍니다. 이 작은 여정이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발걸음이 되기를 기대하겠습니다.   



1) 차지현 외 2명. (2017). 웨스 앤더슨의 영화 속 유니폼에 표현된 이미지 연구. 디지털콘텐츠학회논문지,  18(7). 1303-1312.

2) 김정진. 「4호선 혜화역 대합실서 침묵시위하던 전장연 활동가 또 체포」. 『문화일보』. 2023.12.16. https://www.yna.co.kr/view/AKR20231214035200004(2024.01.31. 접속).

3) 하민지. 「사상 총 8명 대거 폭력연행...장애인 2명 병원 이송」. 『비마이너』. 2023.12.08. 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5752(2024.02.02. 접속).

4) 고병찬. 「[단독] “침묵시위 체포는 위법”…전장연, 국가 상대로 소송」. 『한겨례』. 2024.01.10.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23646.html(2024.02.06. 접속).

5) 김한솔. 「8년 전 작업복을 꺼내입는 이유? “옷이 녹아 피부에 붙을까봐”」. 『경향신문』. 2023.06.19.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06190600011(2023.12.18. 접속).

6) 강한님. 「[커버스토리④] 사장님! 저희 작업복 30분만 입어보세요」. 『문화일보』. 2021.10.11. https://www.laborpl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7824(2023.12..31. 접속).

7) 강이종행. 「대학가서 미팅할래, 공장가서 미싱할래?」. 『오마이뉴스』. 2005.07.19.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69059(2024.02.06. 접속).

8) 배상기. 「[진로에세이]환경미화원을 바라보는 두 가지 마음」. 『한국대학신문』. 2020.01.14. http://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225161(2024.02.06. 접속).

9) 박하얀. 「치마 안 입었다고 “다리에 문신했니?”···유니폼이 보여주는 차별」. 『경향신문』. 2023.07.12. https://m.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07120600001#c2b(2024.01.03. 접속).



참고문헌

강이종행. 「대학가서 미팅할래, 공장가서 미싱할래?」. 『오마이뉴스』. 2005.07.19.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69059(2024.02.06. 접속).

강한님. 「[커버스토리④] 사장님! 저희 작업복 30분만 입어보세요」. 『문화일보』. 2021.10.11. https://www.laborpl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7824(2023.12..31. 접속).

고병찬. 「[단독] “침묵시위 체포는 위법”…전장연, 국가 상대로 소송」. 『한겨례』. 2024.01.10.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23646.html(2024.02.06. 접속).

김정진. 「4호선 혜화역 대합실서 침묵시위하던 전장연 활동가 또 체포」. 『문화일보』. 2023.12.16. https://www.yna.co.kr/view/AKR20231214035200004(2024.01.31. 접속).

김한솔. 「8년 전 작업복을 꺼내입는 이유? “옷이 녹아 피부에 붙을까봐”」. 『경향신문』. 2023.06.19.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06190600011(2023.12.18. 접속). 

박하얀. 「불꽃 맞고 물 뒤집어 쓰는 산불진화대원들···“‘옷 입는 사람’ 얘기를 들어야죠”」. 『경향신문』. 2023.06.28.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06280600041 (2023.12.18. 접속).

박하얀. 「치마 안 입었다고 “다리에 문신했니?”···유니폼이 보여주는 차별」. 『경향신문』. 2023.07.12. https://m.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07120600001#c2b(2024.01.03. 접속).

배상기. 「[진로에세이]환경미화원을 바라보는 두 가지 마음」. 『한국대학신문』. 2020.01.14. http://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225161(2024.02.06. 접속).

진경옥. 「[진경옥의 시네마 패션 스토리] 64.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부산일보』. 2014.10.10. http s://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141010000071(2024.01.28. 접속).

차지현 외 2명. 웨스 앤더슨의 영화 속 유니폼에 표현된 이미지 연구. 디지털콘텐츠학회논문지,  18(7). 1303-1312.

하민지. 「사상 총 8명 대거 폭력연행...장애인 2명 병원 이송」. 『비마이너』. 2023.12.08. 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5752(2024.02.02. 접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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