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조현빈
여느 날처럼 등교하던 와중에 월경이 시작됐다. 찝찝한 느낌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예상 월경일까지 꽤 남았던 터라 그냥 질 분비물이라고 생각했다. 팬티라이너라도 차야지- 하고 들어간 화장실에서 피가 묻은 속옷과 바지를 직면했다. 급하게 휴지로 닦아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른 아침이라 주변 옷 가게는 굳게 잠겨 있었다. 학교에 거의 다 온 게 아까웠지만 다시 지하철에 몸을 싣고 보건결석을 썼다. 배란통인 줄 알았던 찌뿌둥함이 월경통이었다니, 어쩐지 분했다.
잠을 설쳤다. 어제 오후부터 배가 마구 아프더니 자는 내내 식은땀이 흘렀다. 아이고 나 죽네. 속이 메스껍고 몸은 무겁다. 하지만 어제 보건결석을 썼으니 오늘은 학교에 가야 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보건결석을 쓰는 게 아니었다. 내가 초능력자도 아니고 고통을 어떻게 예측하라는 건지. 그때 불안감이 엄습한다. 꾸물꾸물 책상으로 손을 뻗어 휴대전화를 집어 든다.
수업은 세 개, 교수도 세 명. 어제는 그것까지 알아볼 정신이 없었다. 메일을 보내지도 못했고, 진단서를 받아오지도 못했다. 황급히 전자출결시스템에 들어갔지만, 보건결석 신청은 이미 반려되어있다. 아, 이렇게 내 보건결석이 날아갔구나. 약이나 먹자. 학교나 가자. 나도 모르는 새 깎여버린 출석 점수를 만회하려면 꼼짝없이 등교해야 한다.
‘보건결석’이라 불리는 공결제는 월경통으로 인한 결석을 출석으로 인정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는 2004년 9월 중학교 담임교사가 제출한 진정 사건에서 시작한다. 해당 교사는 ‘여학생이 월경으로 인해 결석하거나 수업받지 못하는 경우를 병결이나 병조퇴로 처리하는 것은 인권침해’라고 주장하며 월경 결석 관련 제도 보완을 요구했다. 출결 및 성적에 영향을 미치는 기존의 제도가 건강권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월경통을 개인적으로 참아야 하는 상태 혹은 질병에 걸린 상태라는 인식을 답습한다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를 받아들여 2006년 교육인적자원부에 여성의 건강권 및 모성보호 배려를 위한 제도 마련을 권고했다.1) 교육인적자원부가 권고를 수용하며 월경공결제2)가 시행되었으나 명확히 규정된 세부 지침은 없다. 구체적인 운영 방식은 학교의 재량에 달린 셈이다.
2006년 국내대학 최초로 중앙대가 월경공결제를 도입한 이후, 경희대, 서울대, 연세대, 제주대, 한양대 등 다양한 대학에서 공결제를 시행하고 있다. 한양대의 경우 학기당 5회 월경 결석을 신청할 수 있지만, 의사 소견서나 진단서 등 증빙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한국외대는 월경공결제를 전산화하겠다고 공지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월경 기간이라는 사적정보를 전산시스템에 입력하는 것이 사생활 침해로 이어질 수 있으며, 행정 차원에서 월경을 관리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3) 반면 고려대는 월경 결석을 질병, 예비군 훈련, 직계가족의 사망 등과 같은 유고결석의 일환으로 취급한다.
우리대학은 2013년 2학기에 보건결석제를 도입했다. 초기에는 교내 건강증진센터에서 진료받은 후 전산상에서 보건결석을 신청하고, 센터에 재방문하여 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했다. 하지만 2015년 5월부터 건강증진센터 업무량 증가와 이용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재방문 절차를 삭제하고 인터넷상에서 증명서를 발급하는 형식으로 변경했다.4) 2017년 2학기부터는 절차가 간소화되어 전자출결시스템을 통해 보건결석을 신청할 수 있다. 학교의 원칙을 따르면, 보건결석은 코로나 확진이나 질병 등에 적용되는 유고결석과 달리 증빙서류가 필요하지 않고, 학기당 3회 22일 간격으로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원칙이 출석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공결 승인 여부는 전적으로 교수의 재량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어떤 교수는 학기당 1회만 공결을 승인하고, 어떤 교수는 사전에 승인된 결석만을 인정한다. 나아가 증빙자료를 요구하는 교수도 있다. 제각각 다른 처리방식에 학생은 아픈 몸을 부여잡고 강의계획서와 오리엔테이션 자료를 뒤지거나 주변에 수소문하여 정보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교수의 재량권이 학생의 건강권보다 우선되는 상황을 논의하기조차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도마 위 월경
월경공결제는 언제나 뜨거운 감자다. 월경 외의 이유로 결석하거나 월경공결제를 사용하지 못하는 남학생이 ‘역차별’받지 않도록 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은 끊이지 않는다. 실제로 서강대는 F 학점을 면하기 위해 제도를 악용할 가능성이 높다며 교학위원회에서 시범 운영 3학기 만에 폐지를 결정했다.5) 비슷한 이유로 여자대학교인 이화여대에서조차 해당 제도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6) 하지만 월경의 여부 및 통증의 정도를 판단하는 것이 가능하긴 할까? 월경공결제를 악용이라 판단하는 주된 근거는 대개 ‘불규칙한 결석 주기’이다. 결석 주기가 일관되지 않거나, 금요일과 황금연휴에 결석률이 높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월경은 28일 간격으로 3-5일간 지속되며, 21-35일 간격으로 2-7일간 지속되는 것까지 정상적인 월경 범주에 해당한다.7) 따라서 우리대학을 포함한 다수의 대학은 학기당 3-5회, 20-22일 간격으로 공결제 사용의 횟수 및 주기를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월경이 ‘정상 범주’에 포함되지는 않는다. 통증이 단 하루만 지속되는 것도, 월경주기가 항상 규칙적인 것도 아니다. 결국 해당 규정은 ‘정상적인 월경’에 속하는 최소한의 건강권만을 보호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악용을 막기 위해 월경의 다양성과 몸의 차이를 배제하는 것이다. 월경 그 자체에는 주목하지 않고, 악용 사례에만 집중하며 혐오를 확산하는 상황은 여성 자체를 배제하는 일로 이어질 수 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정체성은 몸의 경험을 근거로 형성될뿐더러, 여성과 여성의 몸을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8) 따라서 몸의 경험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여성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혹자는 최소한의 수준이라도 보장해 주는 게 어디냐며 배부른 소리라고 비판할지도 모르겠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세상에는 보호받지 못하는 월경이 넘쳐나니 말이다.
보호받지 못하는 월경
2022년 10월 이데일리의 취재 결과에 따르면, 서울 지역 31개 대학 중 월경공결제를 시행하지 않는 대학은 22.6%에 달한다.9) 공결제를 시행하더라도 학교가 해당 제도의 존재를 알리지 않아 사용하지 못하는 학생도 다수다. 서울대학교 교육환경개선협의회의 2021년 설문조사에 의하면, 응답자 1,073명 중 93%가 월경공결제의 존재와 이용 가능 여부에 대해 자세히 모르고 있다고 답했다.10) 나아가 제도를 인지하고 있더라도 주위 시선과 복잡한 절차에 의해 사용을 망설이거나 포기하기도 한다. 진단서를 제출해도 의심하는 교수,11) 아파서 빠졌는데 잘 놀다 왔냐고 묻는 선배, 술자리에서 공결제에 불만을 표하는 동기들로 인해 결석은 쉽지 않다.12) 광주의 한 대학에서는 ‘월경 공결을 인정하는 대신 태도점수를 감점하겠다’라는 교수의 발언이 논란이 되자 학교 측에서 해명에 나서기도 했다.13) 이러한 상황은 비단 대학에서 그치지 않는다.
몇몇 고등학교에서는 월경 조퇴 확인 절차로 보건 교사에게 교체한 월경대를 검사받거나 친구에게 월경을 확인받으라고 요구한다.14) 증빙자료로 월경대를 제출하라고 요구하거나 월경대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요구하는 직장도 있다.15) 끝없는 의심, 몸의 상태를 증명하고 사생활을 밝히길 요구하는 사회의 몰이해는 여성의 건강권을 빼앗고 심리적·육체적 어려움을 가중한다. 부정적 인식이 만연한 결과, 2020년 월경 휴가를 사용한 서울시청 여성 공무원은 0.4%에 불과했고, 울산·세종·전북 공무원은 한 명도 없었다.16)김수천 전 아시아나항공 대표는 승무원들이 신청한 월경 휴가를 138차례 거부해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17) 여성 노동자의 월경 휴가는 학교의 월경공결제와 달리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법적 권리로서 강제성을 지닌다. 하지만 월경을 입증하라는 요구와 대체 근무자가 없다는 말 앞에서 권리는 무력해진다.18) 여성의 몸과 월경을 이해하기를 거부하는 사회에서 월경공결제는 ‘여성을 배려한다’는 표면적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월경공결제는 유지하지도, 폐지하지도 못하는 ‘처치 곤란 제도’로 여겨진다. ‘결석 자유이용권’19)이라 불리며 남용의 대명사가 되었고, 혐오와 조롱은 끊이지 않는다. 여성의 ‘건강권과 모성보호’는 사회에서 공감받지 못한다. 특혜와 역차별이라는 소모적 논쟁은 여성의 몸과 월경이 공적 담론으로 공유되지 못하고 문제로서 상정되고 있음을 보여줄 뿐이다. 설명하고 증명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어떠한 것’으로서 말이다. 하지만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통증과 불쾌, 번거로움은 병결로 처리하거나 의사의 소명과 진단으로 증명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증명할 필요도, 증명할 수도 없는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이다. 여성의 몸과 월경이 그 자체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모성보호라는 명분을 넘어, 스스로의 상태를 살피고 관리할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 여러 상황에 밀려 유보되고 반려되는 권고가 아닌,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는 권리 말이다.
1) 국가인권위원회 홍보협력팀. (2006). 생리결석 관련 모성보호 제도마련 권고. 『국가인권위원회』. https://www.humanrights.go.kr/base/board/read?boardManagementNo=24&boardNo=555026(2023.12.30. 접속).
2) 공식 명칭은 ‘생리공결제’이다. 본 글에서는 월경을 에둘러 표현하는 ‘생리’ 대신 ‘월경’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월경공결제’라고 표현하였다. 하지만 ‘공결’이라는 용어 역시 사전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단어로서, 의미가 불명확한 행정 중심의 용어라는 지적이 존재한다. 명칭조차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상황은 월경으로 인한 결석이 사회적으로 논의되고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김찬곤. 「생리, 당당히 ‘결석’하게 해주세요」. 『오마이뉴스』. 2018.03.08.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11810(2024.01.02. 접속).)
3) 이성진. 「생리주기를 전산망에 입력하라고요? 대학가 생리공결제 설왕설래」. 『일요신문』. 2018.08.02. https://www.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305313(2024.01.02. 접속).
4) 박소영·정혜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생리공결제」. 『덕성여대신문』. 2015.09.21. https://www.dspress.org/news/articleView.html?idxno=5544(2023.12.30. 접속).
5) 박인영. 「서강대가 생리공결제 폐지한 이유」. 『연합뉴스』. 2008.09.25.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02282254?sid=102(2023.12.20. 접속).
6) 현재 이화여자대학교는 서울 주요 여자대학 중 유일하게 월경공결제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인권센터는 학생의 학습권, 교수의 수업권 등 여러 문제가 얽혀 있는 문제로서 해당 제도의 도입이 어렵다고 밝혔다. (강해연. 「[심층뉴스] 생리공결제 도입 어렵나」. 『EUBS』. 2023.07.13. http://eubs.ewha.ac.kr/news/articleView.html?idxno=20092(2023.12.30. 접속).)
7)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출판일 불명. 표제어 『월경』. 네이버 지식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51007&docId=927592&categoryId=51007(2023.12.20. 접속).
8) 정희진. (2005). 페미니즘의 도전. 서울: 교양인, 210쪽.
9) 김형환. 「아직도 자리잡지 못한 대학 생리공결제…남녀갈등까지」. 『이데일리』. 2022.10.25.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1210326632496528&mediaCodeNo=257&OutLnkChk=Y(2023.12.30. 접속).
10) 서울대학교는 2020년 11월부터 월경공결제가 시행되었다. (김아영. 「2021 교개협 1·2차 설문조사, 그 결과는?」. 『대학신문』. 2021.09.12. https://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2432(2023.12.30. 접속).)
11) 한재준. 「인권위 권고 12년째…갈 길 먼 대학가 '생리공결제'」. 『News1』. 2017.09.13. https://www.news1.kr/articles/?3099493(2023.12.30. 접속).
12) 앞의 글, 김형환.
13) 김태원. 「“여자들 ‘생리공결’ 쓰면 태도점수 깐다”…남녀 갈등 불지른 대학 교수」. 『서울경제』. 2023.09.07. https://www.sedaily.com/NewsView/29ULB3VQDB(2023.12.30. 접속).
14) 김미향. 「“생리조퇴 하려면 생리대 검사 맡아라” 황당한 학교들」. 『한겨레』. 2017.03.07. https://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785436.html(2023.12.20. 접속).
15) 성기평. 「“생리중이라고? 증명해봐” 아시아나 전 대표 벌금 200만 원 확정」. 『우먼타임스』. 2021.04.25. https://www.women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2374(2023.12.20. 접속).
16) 해당 지표는 2021년 4월 4일 기본소득당 신지혜 의원이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로부터 확보한 자료에 근거한다. (전진영. 「서울시 여성 공무원 보건휴가 사용률 전국 최하위…"여전히 눈치"」. 『아시아경제』. 2021.03.04. https://view.asiae.co.kr/article/2021030413421742724(2023.12.31. 접속).)
17) 이재호 외 2명. 「외국은 ‘생리휴가’가 없다? “아프면 누구나 쉴 수 있으니까!”」. 『한겨례』. 2021.04.27. https://www.hani.co.kr/arti/society/women/992777.html(2023.12.20. 접속).
18) 김미영. 「[‘있지만, 없다’ 월경하는 노동자] ‘생리휴가’ 도입 70년, 사용자는 끊임없이 “입증하라”」. 『매일노동뉴스』. 2022.03.08. https://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7734(2024.01.01. 접속).
19) 2015년 부산일보에 기고된 관련 기사의 제목이다. (안혜진. 「[시민기자 광장] 대학가 여성 생리공결제도‘는 결석 자유이용권?」. 『부산일보』. 2015.12.13. https://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151214000023(2023.12.30. 접속).)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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