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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Oct 04. 2024

수라 갯벌 살리기

소중한 갯벌을 지키는 사람들

  2024 노작문학축전 <반석산 맨발의 인문학> 프로그램을 신청하여 생태 다큐 영화 "수라"를 관람하고, 황윤 감독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환경교육 교사모임을 통해 '수라'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으나 다큐멘터리 영화라서 별로 흥미가 없었는데, 갯벌에 살고 있는 생명체를 담아낸 영상도 훌륭했고, 서사와 메시지도 명확한 잘 만들어진 영화였다.


  다큐멘터리 영화 '수라'는 새만금 간척 사업으로 사라진 갯벌 수라를 재생하기 위해 노력하는 시민들의 이야기이다. 바다를 막은 지 한 달 만에 조개는 말라죽었고, 상한 조개를 먹은 도요새도 죽었다. 온갖 생명체가 명랑하고 활발하게 살던 갯벌은 폐허의 땅이 되었고, 도요새도, 흰발농게도, 검은 머리갈매기도 사라져 갔다.


  황윤 감독은 본격적으로 2015년부터 7년 동안 이 영화를 찍었다고 한다. 그 시작은 2003년 새만큼 간척사업을 중단하라며 4명의 성직자가 전북 부안에서 청와대까지 305Km를 65일간 삼보일배 한 순례단의 목숨을 건 고행을 본 것이 계기였다. 이에 시민단체와 많은 환경 단체도 힘을 보탰지만, 2006년 대법원의 간척 강행 판결로 결국 바다는 방조제로 막혔고 갯벌은 무참히 파괴되었다. 그로 인해 수많은 생명체가 목숨을 잃었고, 그중에는 갯벌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어민도 있었다.


  다큐멘터리에서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 인물인 <새만금시민생태단>의 오동필 단장은 청년 시절 아름다운 도요새의 군무를 오감으로 체험한 경험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광경을 봤기 때문에 그것을 계속 지키고 싶고, 계속 느끼고 싶다고. 아름다운 것을 본 것이 죄가 되냐고. 그 황홀한 경험 때문에 청년 시절에 시작한 새만금 갯벌 지키기는 30년째 계속되고 있다. 지금은 대를 이어 새를 공부하는 대학생 아들과 함께 갯벌을 지키기 위한 힘겨운 싸움을 계속해 올 수 있었던 거라고 말한다.


  황윤 감독은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한다. 처음 작업을 시작한 건 2006년인데, 어민이 갑자기 돌아가시는 일도 있었고, 갯벌을 지키기에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모든 작업을 그만두고 이곳을 잊으려 노력했었다고.

  다시 영화를 찍게 된 것은 하필 군산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1년 뒤 지인을 통해 오동필 단장과 알게 되었고 그를 따라 간 갯벌을 보면서부터이다. 막상 가보니 황폐해진 갯벌에 아직 생명체가 살고 있었다. 저어새 150마리가 살고 있는 것을 보고 만감이 교차했다고 한다. 생명이 있다는 희망이 있다는 건데, 너무 쉽게 다 끝났다고 생각하고 포기한 게 아니었는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단다. 그래서 감독은 다시 촬영을 시작했다.

 

  감독은 이미 끝난 버린 싸움이라고 생각했던 일에, 시민 조사단은 개인의 시간과 돈을 아낌없이 쏟아부으며 십 년 넘게 갯벌 생태계를 기록하고 정확한 데이터를 통해 갯벌을 살리기 위한 자료를 꾸준히 만들어 놓고 있었다. 평범한 시민인 그들이 갯벌을 포기하지 않아 준 것이 너무나 고맙고 한편으로 대단하다고 느꼈단다.

  시민생태단의 끈질긴 노력 덕분에 바닷물이 막힌 갯벌에 해수유통이 하루 한 번에서 두 번으로 늘었고, 그것만으로도 갯벌은 조금씩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흰발농게는 척박한 갯벌에서 10년 넘게 버텨내 지금 모습을 드러냈고, 저어새와 쇠제비갈매기 등 법정 보호종 40여 종이 꿋꿋하게 수라 갯벌에서 살아내고 있었다.


  눈 내리는 설날, 감독은 혼자 수라에 갔다. 그때 이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내가 수라를 지키는 게 아니고, 수라가 나를 살게 하고 지탱하게 해 주었구나."


<노작 문학축전 팸플릿과 황윤 감독>

  

   아직 갯벌에 희망이 있다는 기쁨을 채 느끼기도 전에, 이제는 미군 기지 옆에 있는 수라 갯벌을 밀어내고 새만금 신공항을 건설한다는 움직임이 있다. 링거를 맞히고 이제 겨우 숨을 쉬게 해 놓은 수라의 생명줄을 또다시 무자비하게 끊어내려 하고 있다. 군산 공항과 미군 기지를 잇는 다리를 연결하고 관제탑을 미군이 갖겠다는 새만금 신공항이 과연 누구를 위해 만들어지는 것인지. 활주로가 짧아 장거리 비행기 취항도 못하고, 계류장이 4개라서 국제공항이 될 수도 없는 지방의 신공항 사업은 애초부터 미군기지의 확장과 전략적 요충지를 확보하려는 미군의 정치적은 속셈이 깔려 있다. 그로 인해 다양한 해양 생물의 성육장이며 각종 오염물질의 정화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우리의 소중한 갯벌을 다시 잃게 생겼다.    


  황윤 감독은 얼마 전에 신공항 건설 관련 환경영향 평가 초안 설명회가 파행적 요식행위로 끝났다고 말했다. 이미 환경영향평가도 있기 전에 신공항 건설업체를 선정한 상태였다고. 환경단체는 국토부를 상대로 새만금 국제공항 기본계획 취소 소송을 시작했고, 10월 17일 4시에 양재동 행정법원에서 공판이 열린다고 관심을 가져달라 전했다.


  사실 화성시도 군산과 비슷한 상황이다. 미군은 화성시 매향리 앞 농섬을 1951년부터 주한미군 공군 폭격 훈련장으로 54년간 사용해 왔다. 매향리 주민들의 오폭으로 인한 부상과 생명 위협, 난청, 가축 유산, 주택 파괴 등 수십 년간 막심한 피해를 겪었다. 뿐만 아니라 어민들은 어장을 잃었고 농경지와 어장을 헐값에 징발당했다. 1988년 사격장 폐쇄 청원이 시작되어 공론화되었고 끈질긴 싸움 끝에 2005년 미군 사격장이 폐쇄되었다. 지금은 셀 수 없이 많은 녹슨 포탄을 전시하여 아픔을 간직한 매향리 평화생태공원이 들어섰다.


  매향리 주민들의 눈물이 채 씻기기도 전에 이제는 매향리 인근 화옹지구에 수원 군공항을 이전을 추진하겠다고 하여 또다시 갈등 중이다. 이로 인해 매향리 갯벌을 포함한 화성 습지가 훼손될 위기에 처해 있다. 화성 습지는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이며, 법종보호종인 노랑부리저어새, 검은 머리물떼새, 알락꼬리마도요를 비롯한 25종의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 야생동물 등 다양한 생명체가 살고 있는 소중한 생태계의 보고이다.


  과연 누구를 위한, 그리고 무엇을 위한 공항 이전이란 말인가. 매향리의 아픔이 되풀이되지 않고, 화성 습지도 지켜내야만 한다. 자연은 인간의 욕심으로 함부로 훼손하면 반드시 큰 대가를 치른다. 자연을 순리대로 그대로 보존하고 후손에게 이어주어야 하는 것이 마땅한 의무이거늘. 왜 인간들은 거침없이 생태계를 훼손하는지.


  감독과의 질의응답 시간에 화성시가 처한 상황을 들은 황윤 감독은 아직 늦지 않았다고, 다 같이 움직이라고 말한다. 자신도 수라를 찍기 시작했을 때 이미 끝난 싸움인 줄 알고 포기했었지만, 그게 아니었다고. 아직 늦지 않았다고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면 지켜낼 수 있다고.  


  더 많은 것을 잃기 전에, 돌이킬 수 없게 되기 전에, 우리의 갯벌과 그곳에 사는 수많은 생명체를 지켜내야 한다. 다큐멘터리에서 갯벌을 지키는 시민들이 수라 갯벌에 장승을 세우고, 이런 문구를 썼다.

  "바다를 바란다."

  자연 그대로의 바다를, 자연 그대로의 갯벌을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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