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어느새 300일
우리가 함께한 지는 약 576일
처음 겪어보는 임신, 출산, 육아에 매일 바쁜 하루를 보냈다. 오랜만에 보는 흰 바탕에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는 건 그동안 읽은 게 SNS상의 육아 정보나 육아 용품의 상세페이지 정도밖에 없어서겠지. 여백이 낯설어진 만큼 스스로가 낯설어져 버린 300일 동안의 일기나 써보려 한다.
생각해 보면 지난 시간 동안 나는 나에게서 착실히 멀어져 갔다. 하지만 그보다 애석한 것은 내가 멀어져 간 길이 아기에게 다가가는 길이 맞는지는 모르겠다는 거다. 아기 입장에서는 엄마는 왜 길을 잃고 헤매나 싶을 수도 있다. 신이 어디에나 존재할 수 없어서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말이 맞다면 나는 '애기 엄마'여서는 안 된다. 이렇게 실수투성이에 우왕좌왕하는 신의 대리인이라니, 말도 안 되니까.
그리고... 직접 해보니 여태 내가 출산한 사람, 아기를 돌보는 사람에게 했던 위로의 말, 응원의 말이 얼마나 얄팍했는지 알 수 있었다. 어차피 우리 모두는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겠지만, 이쪽 분야는 특히나 내 상상력과 공감 능력의 차원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그리고 요즘도 이걸 느낄 때마다 과거에 입만 살아있던 내 모습이 아찔하다.
겪어본 사람들은 아기에 관련된 고통은 시간이 지나면 다 잊히고 결국 남는 건 내 앞에 있는 예쁜 아기뿐이라서 둘째를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나도 크게 다르진 않다. 2박 3일을 버틴 진통의 시간이라든지 그래서 수액의 힘으로 아가를 낳아야 했던 것들은 어느새 희미해졌다. 다만 어느 회귀물에서나 나올 법한 '절대 이 고통을 잊지 마 둘째는 없어'라는 내 다짐만 머릿속을 맴돌 뿐이다.
불과 몇 줄로 내가 출산으로 겪은 힘듦을 표현하고 넘어가는 것이 내심 아쉽지만 출산은 육아에 비하면 지나버린 일이라 놓을 수 있달까. 이제는 무언가를 놓아버릴 수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됐다. 육아는 한 생명의 삶이 온전히 내 손에 쥐어지는 일이라, 따갑다고 손을 펼칠 수도 뜨겁다고 손을 털 수도 없으니 말이다.
생각해 보면 300일은 그런 날의 연속이었다. 초반에 2시간마다 수유를 해야 했던 나날들도 그랬다. 말이 두 시간이지 아가를 세워 안는 시간을 합하면 수유에 걸리는 시간은 30분을 훌쩍 넘는다. 어떤 날은 수유하다가 잠든 아가의 속이 편하라고 세워 안고 있다가 시간이 지나 다시 수유를 하느라 소파 망부석이 되기도 했다. 잠이 너무 부족해서 기절할 거 같다가 기절하는 시간들이 그렇게 지나니 이제는 걱정에 잠 못 드는 새벽이 왔다. 목도 제대로 못 가누면서 뒤집어버리는 아가를 다시 뒤집어줘야 해서. 예방접종을 맞고 열이 끓는 아가 체온을 주기적으로 재야 해서. 그냥 아가가 자다 깨서 울기를 반복해서...
그런 날들이 지나고 나서야 바로 옆 침대 아가의 숨소리를 자장가 삼아 들을 수 있게 됐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자장가는 아니다... 숨소리가 거칠어지면 건조한 걸까 혹시 추운 걸까 것도 아니면 나쁜 꿈을 꾸나 고민하게 되니까. 그냥 이제는 잠든 아기의 숨소리에도 귀 기울이는 나를 무엇으로도 막을 수가 없다. 아 잠만은 나를 막을 수 있겠다. 이렇게 300일의 결론은 '잠이 최고다'가 됐다. 맞다. 맞는 말이다. 잠이 최고다. 그러니 모든 아가들은 꿈속에서도 행복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