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꽤 긴 연애를 하기도 했거니와, 둘 다 결혼하면 아기는 있었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이라 관련된 얘기를 할 일이 종종 있었다. 물론 질문을 던지는 쪽은 주로 상상력도 걱정도 더 풍부한 나였다. '어떤 아이였으면 좋겠어?' '나중에 커서 ㅇㅇ 하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 반응할 거야?' 등등. 늘 내가 기대(?)한 답이 나오는 건 아니었지만, 대화는 즐겁기도 했고 때로는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완전히 '문과 사람'이었던 나와 달리, 남편은 어릴 때부터 완전히 '체육인'이었기에, 전에는 한번 '아이가 예체능 한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거야?'라는 질문을 했다. 나보다 현실적인 남편의 반응은 역시나 다소 부정적이었지만 당시 남편의 대답은 다른 이유로 기억에 남았다.
"그래도 학업은 놓지 않게 하고 싶어. 체육만 해보니까, 그리고 주변 얘기를 들어봐도, 예체능은 성공이 어려운데 좌절할 때 돌아갈 곳이 너무 없더라."
이 사람은 언제 좌절했을까 하는 아픔과 함께 부모로서의 역할이 와닿았다. 나는 하고 싶다는 거 지지해주면 되고, 잘 안 되더라도 먹고 살 다른 길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저 속 편한 생각이었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부모는 달리는 아이를 지켜보면서도 갈아 신을 신발이 있는지 살피면서 따라 걸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동안 아이의 성격과 선택들, 그에 따른 부모의 반응들을 상상해본 것이 쓸데없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가 어떻든 간에 내가 어떤 부모이고 싶은지는 왜 고민하지 않았을까. 될 수 있고 없고는 모를 일이더라도 지향점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친구 같은 부모, 자애로운 부모, 엄격한 부모 등 부모의 모습도 아이들의 모습만큼 다양하다. 사실 어떤 모습의 부모이든 (최악만 아니라면) 그 가정의 스타일이고 성장 과정일 것이다. 남편에게 어떤 부모가 되고 싶으냐고 물으니 사랑이 가득한 부모가 되고 싶다고 한다. 사랑을 잘 주고받고 표현하는 부모가 되고 싶다고, 어릴 때부터 단체 활동을 해왔고 지금도 아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예절, 질서 등을 더 중시하지 않을까 했는데 의외였다.남편 말로는 예절과 질서도 사랑이 기본이 되어야 한단다.
나는 어떨까. 친구 같은 부모는 내 이상향이 아니다. 친근하고 편안하다는 의미의 '친구 같은'이겠지만 그 표현 자체가 내가 생각하는 부모의 모습과는 좀 거리가 있다. 그렇다고 매사에 엄격한 부모가 될 수도 없다. 이걸 정한다고 내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이래저래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결국 나는 간략한 다짐으로 생각을 매듭지었다.
나는 최선을 다하는 부모가 되어야겠다. 어려운 말이고 무서운 말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육아가 즐거운 경험이어야 한다고 하는데 최선을 다한다니, 열정 열정을 외치는 대한민국에서 자란 결과물이 아닐까 싶을 수도 있지만 엄청 거창한 의미는 아니다. 단지 우리 부모님을 떠올리며 한 생각이다. 나도 아기가 처음이니까 부족한 점이 많겠지, 어느 집안 부럽지 않게 넉넉히 키울 수 있다는 말은 빈말로도 할 수가 없다. 다만 내가 아무리 숙련도, 부, 인성 등이 부족해도아이가 나중에 '우리 부모님은 최선을 다한 부모님이었다.'라고 느꼈으면 하는 것이 나의 지향점이자 다짐이다.
우리 부모님도 ‘사랑’, ‘훈육’, ‘친구’ 같은 어떤 단어로 정의되지 않는 부모님이었다. 다만 내가 아는 것은 가난하고 팍팍한 시기에도 아이 두 명을 어떻게든 키워내셨다는 것이다. 금전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양육의 자세도 완벽하지는 않으셨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셨음을 그 수고의 수혜자인 나는 안다. 매를 들어도, 아이들 앞에서 싸우는 날이 있어도, 부족하셨을지언정 최선을 다하셨다고 느끼는 건 저변에 깔린 사랑과 이해가 분명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남편의 말이었는데 이렇게 귀결이 되다니... 다행이다. 우리는 같은 지향점을 향해 갈 수 있겠다.그리고 어쩌면 대부분의 부모들이 다 비슷한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