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힌남노가 북상하고 있던 9월 5일이었다. 전국적으로 비가 내렸던 월요일. 개인적으로는 지난주에 아기집과 난항을 확인하고 보건소에도 들렀던 터라, 임신 테스트기가 아닌 세상의 인정을 받은 후 첫 출근이었다. 덕분에 내 가방에는 임산부 배지가 있었는데, 이걸 꺼낼 일이 있을 줄이야... (멀리 가지 않으면 자차를 이용하고 있어 배지를 보일 일이 없다.)
회사에 예정된 큰 이벤트는 없었기에 일이 오는 대로 처리하자는 마음으로 집에서 나섰다. 남들이 볼 때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겠지만, 5주 차 임산부임을 혼자 생각하면서 운전도 조심히 해보고 걷는 것도 조심히 걸어봤다. 5주 차는 임신 극 초반이라 유산의 가능성도 높고, 실제로 갈색 피도 종종 보이고 있어 더 신경이 쓰였다. 조심해야 할 시기인 만큼 주변에 널리 알릴 수도 없었다. 물론 알리고 배려받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보통 뒷감당과 민폐가 더 어려운 사람이니까 참기로 했다.
평소와 같이 쌓여가는 일들을 처리하고 있는데, 기획실에서 연락이 왔다. 거래처의 지적사항이었다. 게다가 다른 거래처와 다르게 더 강도 높은 지적을 해서 담당자 대응이 필요하다는 연락까지 받자 머리가 멍해졌다. 지적한 내용 자체는 다른 거래처들과 같은데 이쪽만 유난히 '세게' 문제를 제기한 것이었다. 거래처와의 협의를 통해 문제 제기를 철회하든지, 강도를 낮추든지 해달라는 것이 기획실의 요청이었다.
할 수 없이 거래처 쪽에 전화를 걸었다. 지적에 대해 이해했음을 말하고, 우려하는 부분과 그 대안을 설명하려고 대화 내용까지 준비해놓은 참이었다. 하지만 인사말 이후 수화기 너머 거래처는 단호했다.
"직접 와서 설명하시죠."
같은 건물? 같은 지역? 아니었다. 기차로는 한 시간, 그 앞뒤로 출발지와 기차역, 목적지까지의 이동을 생각하면 이동시간만 버스, 기차, 지하철을 합해서 왕복으로 최소한 2시간은 잡아야 했다. 거래처도 물론 이 사실은 다 알고 있었다. 다만 요즘 우리 회사의 대응이 맘에 들지 않으며, 그렇기에 직접 와서 하는 설명만 받겠다는 말이었다. 오늘 시간이 안되면 내일까지는 시간을 내주겠다고 했지만 내일은 다른 회의가 있었기에 내게 시간은 오늘뿐이었다.
"오후에 찾아뵙겠습니다."
갑작스럽게 출장을 가게 됐다는 보고를 마치고, 관련 서류, 책자를 서둘러 챙겼다. 임신 초기임을 알렸다면 유선, 영상회의로 설명할 수 있었을지는 알 수 없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개개인의 사정을 봐줄 리 없고, 영상회의 생각이 있었으면 저쪽에서 먼저 말했을 테니 더 이상의 상상은 접기로 했다. 직접 가서 설명해도 수정을 해줄지 말지는 거래처의 결정에 전적으로 달려있으니까... 나는 그냥 표를 끊는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많고, 비가 와서 짐도 많은 대중교통에서 처음 개시한 내 배지는 눈에 띄지 않았다. 아직 몸이 가벼우니까 이 정도 들고 이 정도 서있는 것쯤은 괜찮다고 스스로는 위로할 수 있었지만, 태아에게까지 이 사과가 닿을지는 모를 일이었다. 쑥쑥아 어떤 의사는 임산부가 피해야 할 유일한 것으로 ‘안정’을 뽑기도 한대.
막상 회의실에서 마주한 거래처 담당자는 배지를 보고 놀란 기색을 감추지도 않았다. 홀몸도 아닌데 날씨도 이래서 고생하셨겠다는 위로? 의 말과, 준비한 자료가 남았는데도 일부 설명만으로 납득이 됐다는 말을 듣자 내 기분은 좋아야 하는데 이상하게 더 착잡해졌다. 어쨌거나 나는 설명이 납득이 됐다면 문제 제기 수준을 조정해줄 수 있는지, 아예 철회해줄 수는 없는지를 물었고 결과적으로는 수준 조정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조정만으로도 다행인 일이었지만, 삭제 불가 사유가 ‘내’가 아니라 ‘회사’에 있음은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렇게 회의실에서 만난 지 정말 10분도 지나지 않아 조심히 가라는 배웅을 받으며 회의실을 나섰다. 애초에 거창한 일이 아니었다. 서류 몇 장을 보면서 상대방의 의문점에 답하는 일, 추가로 자료를 제시하는 일들이었으니까.
대면 회의가 가지는 장점들을 나도 안다. 나도 인강보다 현강이 좋았던 사람이다. 현장감과 즉각적인 의사소통이 가지는 장점은 분명하고 매력적이다. 하지만 오늘 있었던 대면 회의가 정말 유선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을까. 나는 요구에 대항할 수 없는 사람으로서 가야만 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거래처도 그 상황임을 알기 때문에 임산부임에 난색을 표했던 것은 아닐까.
이렇게 보면 회의 결과는 나의 능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일부는 그럴 수도 있지만) 거래처가 배려한 결과였다. 그래서인지 회사로 돌아가는 기차에서 나는 조금 서글퍼졌다. 나는 ‘왜 직접 가서 설명해야 하죠?’라고 묻지는 못하면서 유산을 걱정하는 힘없는 엄마인데, 아기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배려받기도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스스로 아이를 지킬 수는 없어 타인의 호의에 기대야 하는 이 상황이 아기에게 미안했다.
사람 간에 오가는 친절과 배려 같은 것들이 결국 오래도록 남고, 그 행위와 흔적들이 세상을 조금이나마 따듯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왔다. 그렇게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되도록이면 친절과 배려를 ‘하는’ 사람이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원하는 배려만을 받고 싶은 욕심 많은 사람인 걸까. 남은 10개월 동안 혹은 계속 생각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