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곡한 스케줄표만 봐도 피로가 몰려오던 날들이 있었다. 일개 주부인데, 뭐가 그리 바쁘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집안일도 아니고 바깥일로 정신없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결국 탈이 나고 말았다. 전날 친한 동네 언니와 점심 식사 약속이 있었고, 저녁에는 학부모 모임이 있던 날이었다. 귀가가 늦어져서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잠이 들었다. 새벽에 화장실에 다녀와서 다시 누웠는데 갑자기 세상이 빙그르 돌면서 천장이 뒤집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쪽으로 돌려 눕는데 또 한 번 세상이 돌았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잠을 자던 가족들이 깼다. 두렵고 무서웠다. 놀란 가슴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침대는 배로 변신이라도 할 걸까. 마치 파도가 심하게 일어 출렁거리는 배를 탄듯한 느낌이 들었다. 속이 울렁거려서 참을 수가 없었다. 변기를 잡고 여러 번 꺽꺽거리다가 결국 응급실로 향했다.
병원에 가는 길에는 난관이 한둘이 아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자 어지러움증은 더 심해졌고, 차를 타자 멀미가 나서 속이 뒤집어질 것만 같았다. 남편은 주차를 하고 오겠다며 날 응급실 문 앞에 내려줬다. 난 비틀거리며 응급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내 직원은 곧바로 휠체어를 가져왔다. 휠체어에 앉아 다리를 덜덜 떨며 접수를 겨우 마쳤다. 그리고 베드를 하나 배정받았는데, 난 난간을 잡고 "살려주세요."를 여러 번 외치며 몇 가지 검사를 받았다. 흔들리는 베드는 놀이동산의 바이킹이나 롤러코스터를 탈 때보다도 더 무서워 눈을 질끈 감았다.
수액의 약이 바닥날 때즈음 의사는 검사 결과를 말해주었다. 혈액검사, 소변검사, 뇌시티 모두 이상이 없다고 했다. 병명은 이석증으로 추정이 되고, 스트레스나 피로한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결국 피로가 누적되어 이 사달이 났구나 싶었다. 병원에서 나오며 결심했다. 스케줄 사이에 쉼표를 넣기로. 하루에는 주요 스케줄을 하나만 잡고, 평일, 주말 쉼 없이 매일 스케줄 잡는 건 금물. 퐁당퐁당 휴일을 만들기로. 연말이 다가오자 스케줄표에 빈칸이 자꾸 사라지고 있다. 이러다 또다시 컨디션이 나빠질까 싶어서 미리 일주일에 하루는 '휴식'이라는 글자로 메꾸어 놨다. 마치 12월에 주 6일 근무자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