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현장 속으로..
영화 현장에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방법을 알지 못한 나는 무작정 연극영화과에 들어가기 위해 수능을 다시 보았고 연극영화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영화 현장에 스텝 50여 명중 연극영화과 나온 스텝은 나를 포함해서 감독님 연출부 몇 명이 전부 나를 포함해 10명이 되지 않았다. 결국 영화 스텝을 하기 위해서는 꼭 연극영화과를 나와야 할 필요까지는 없었던 거다.
사실 현장일을 하면서 연극영화과에서 배운 영화에 역사나 장르 같은 것들이 현장일에 필요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우선 내가 참여한 영화에 장르는 공포 영화였고 (당시 영화계는 여고괴담 이후로 여름에는 공포영화 공식이 있었다. ) 참여한 파트는 제작파트였다.
요즘은 영화 스텝이 좀 더 세분화되어 현장파트가 더 생겼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영화 스텝으로 일할 때는 영화 스텝은 연출을 맡은 감독님, 밑으로 연출파트 3~4명과 스케줄 예산을 맡는 PD, 밑으로 제작파트 3~4명 그리고 촬영, 조명, 그립, 녹음, 미술, 소품, 분장-헤어, 의상, 등 파트로 나뉘어 촬영이 진행된다. 특히 내가 맡은 제작파트는 학교에서 배운 영화 역사나 촬영기법 시나리오 이런 이론적인 것보다 엑셀이나 지도 스케줄 작성 회계등이 필요했고 현장에서 모두 배워서 일했고 처음에는 감도 안 와서 참 많이 헤매고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심지어 4년을 공부하고 첫 영화를 하면서 영화를 그만둬야 하나 참 많이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추억이고 아련하지만 그때는 정말 인생 최대의 고민이었다. 집에서 반대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하고 싶어 집안 도움 없이 어렵게 영화과입학해서 공부하고 생활비, 등록금은 알바로 충당 나이가 많아 어렵게 현장에 들어왔는데 이건 내가 꿈꾸고 생각하던 영화 현장이 아니었다.
첫째 영화 상업영화와 작가적 마인드 사이에서 전 스텝이 고민하고 작업하는 내가 그린 그런 현장이 아닌 시간과 날씨와 제작비 등 회차에 쫓기며 촬영을 강행하는 전쟁 같은 현장, 작업이 고되다 보니 여기저기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그럼 스텝들 간 내 탓이네, 내일이 아니네 왜 이렇게 일하냐는 온갖 음모와 시가와 질투 싸움이 판치는 꼭 정치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는 스텝에 대한 데이터가 잘 갖추어 지지 않은 시절이라 보통 영화 스텝은 인맥, 명성 등으로 영화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런 연유로 경력이나 작업현장에서 흠이 생기면 다음영화가 어려워지는 , 한마디로 생계가 어려워지는 그런 시스템이었다. 그래서 스텝들은 몸을 사리는 것이 영화 현장이 처음인 나에게 보였다.
둘째 모든 현장이 컨트롤되고 스텝과 장비가 스무스하게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현장이 아닌 전투적으로 강행되는 현장이었다. 실제 비가 많이 내리거나 촬영 여건이 되지 않아도 촬영이 강행되고 그 대미지는 오로시 스텝과 배우들 몫이고 모두들 본인을 희생하고 회차를 쳐내는 형국이었다. 물론 계절물이라 개봉시기가 정해져 있어 더 빡빡하게 현장이 돌아갈 수 박에 없었던 것도 있었을 것이다.
셋째가 정말 상업 영화가 처음인 나에게는 큰 임팩트로 다가왔다.
영화를 촬영하기 전 배우와 스텝들에게는 시나리오(영화에 내용과 대사가 기록된 책)와 카메라 앵글과 배우들 동선 등이 기록된 그림으로 그려진 콘티라는 것이 배포되는데 이 콘티는 사실 학생으로 따지면 교과서와 같은 존제이다. 그런 연유로 모든 스텝들은 시나리오와 콘티를 가지고 본인에 할 일과 계획을 세우게 된다. 교재는 순서대로 진도가 나가지만 영화 현장은 콘티 순서대로가 아닌 장소와 날씨 배우 스케줄에 따라 그날 촬영분이 거의 결정된다.(아까 예를 든 학생으로 따지면 교과서 진도를 그날 얼마나 어디를 나가느냐가 결정된다) 그래서 사실 영화가 처음인 나는 콘티의 순서가 아닌 콘티 페이지를 앞뒤로 왔다 갔다 하는 촬영에 영화 중간쯤 되어서는 무슨 촬영이 있는지 어떤 내용인지 사전에 체크하기보다 하루하루 그냥 회차를 버티기에 바빴던 기억이 있다. 그런 내가 보기에도 우리 촬영은 아직 3분에 1은 남은 상황에서 제작 실장님과 같이 이동을 하게 되었는데 그날 제작실장님께서 오늘 촬영이 마지막이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난 처음에 제작실장이 나에게 농담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촬영을 끝으로 정말 그 전투 같던 촬영은 영화에 큰 핵심이 되는 내용이 빠진 채 촬영이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그날 촬영을 마치고 삼겹살에 술을 마시는 것으로 촬영이 마지막이라는 선포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너무나 황당했다. 허무하게 촬영이 끝나버려서 촬영 후 번아웃이 왔던 것 같다.
나는 제작부 막내로 프리부터 촬영까지 6개월간 일하였다. 그리고 촬영을 마친 그 주에 잔금 150만원 포함 6개월간 300만 원을 받았다. 지금은 너무 어이없는 금액이지만 그 당시에는 이것도 엄청 챙겨준 거라는 제작실장에 생생을 한참 듣고서 계약서에 사인했던 기억이 있다. 더 충격적인 건 이전에는 도제시스템으로 각 파트에 스텝 헤드가 스텝계약을 통으로 계약하고 본인 페이에서 조금씩 밑으로 내려가면서 막내급은 거의 돈을 받지 못하고 일했다고 한다.
실제로 첫 영화에서 작업 중에 의상팀과 좀 친하게 되면서 듣게 된 내용은 환경이 더 심했다.
영화가 들어가면 본인 페이로 월 30만 원을 받았고 촬영이 그날 회차가 끝나면 배우가 입은 옷은 세탁 후 다음 촬영을 준비하고 각 의상 업체에 협찬으로 받은 의상은 반납해야 하는데 교통비와 통신비등 한 달에 최소 5~60만 원은 들어가는데 본인이 모두 충당한다고 했다.
그러니 본인은 영화 스텝을 하면서 2~30만 원이 마이너스가 나고 생활비까지 집에서 받아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너무 우울한 이야기지만 지금은 현장에 남아 있는 영화 쪽 일을 하는 스텝들 이야기를 들어 보면 지금은 영화 쪽에도 노조가 생기고 영화협회에서 배포한 계약 내용으로 스텝들 계약이 이루어지면서 이런 일은 없다고 한다. 아직현장에 남아 있는 연출스텝 이 전해준 이야기는 친한 스텝 한분은 일 년에 세금으로만 몇 천씩 납부한다고 이야기했다.
참고로 지금은 난 영화 쪽 일을 하지 않고 있다.
사실 영화스텝들은 촬영 중에 배우들하고 생각보다 친하게 지내지 않는다. 현장 분위기가 그렇다. 배우들하고 친하게 지낸다는게 물리적으로 힘들다 촬영중은 스텝들 모두 각자 일이 있기 때문에 스텝들이 배우들과 마주치지만 배우들 하고 말을 할 기회가 거의 없고 배우들도 각자 맡은 역할에 몰입해야 해서 말을 하고 친하게 지낼 기회가 거의 없다.
물론 회식은 예외다. 그래서 사실 현장 분위기가 좋은 영화는 회식이 좀 잦다. 회식이 잦아서 현장 분위기가 좋은걸 수도 있다. 하지만 일정에 쫓기 거나 하는 현장은 회식을 할만한 일정이 잘 생기지 않는다. 특히 제작파트는 회식도 일이기에 ( 회식장소 찾기, 스텝들 장소 안내, 스텝 및 배우 귀가 챙기기 , 예산에 맞춰 회식 진행하기 등 모두 일이다 ) 마음 편하게 회식을 하기 힘들다. 그런데 그런 내가 첫 영화에서 배우와 친하게 되었다. 사실 멋 모르는 첫 영화여서 그랬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눈치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첫 영화에서 남주인공은 한동안 뜸하다가 요즘 TV 예능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나도 잊고 지내던 첫 영화의 일들이 생각나면서 그 당시는 힘든 일이었지만 지금은 추억이 되어 글을 써보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
남자 주인공을 한 배우는 사실 내가 보기에도 참 잘생겼다. 어쩌다 영화 촬영 중 제작파트와 친하게 지내게 되었는데 남자 배우와 이렇게 친하고 스스럼없이 지내는 게 당연하지 않다는 걸 다음 영화 가면서 알게 되었다.
어찌 되었던 남자 주인공인 배우와 친하게 지내면서 연예게 뒷이야기 들을 스스럼 없이 들려주었다. 그 배우가 해주는 옌예계 뒷 이야기는 매우 흥미진진했던 기억과 놀라운 기억이 동시에 들었다. (지금은 잘 생각이 나지 않고 생각나더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좀 그래서 그런 이야기는 앞으로도 쓰지 않을 생각이다.)
영화 촬영을 마치고 남자 주인공과 PC게임도 하면서 술도 참 많이 얻어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주인공으로 부터 촬영 중 일어난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그때는 정말 배우에게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