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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PD Jul 21. 2023

영화스텝이 되다.

두번째 영화 현장 속으로..

촬영 들어가기 전 촬영준비하는 것을 프리 프로덕션이라고 하는데 내가 처음으로 참여한 영화는  프리 프로덕션 어느 정도 진행이 되고 난 후  제작파트에 들어왔다. 촬영은 얼마 남지 않고 제작부 막내를 뽑아야 하는데 구하지를 못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난 학교를 늦게 들어가다 보니 내 동기들보다 나이가 많아 동기들이 제대할 때쯤 해서 졸업할 때가 되었다. 조금 있으면 서른이라는 생각이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고 내가 그토록 바라던 스텝으로 빨리 들어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영화과에 다니면서 영화는 연출하는 감독과 촬영뿐만 아니라 여러 파트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던 중 강의를 나오는 강사 중에 제작파트에 들어가 보라는 권유를 받게 되었다. 처음 듣는 파트였다. 그래서 제작파트에 대해 알아보다가 어느 정도 흥미도 생기고 제작으로 들어가면 영화에 대해 전반적인 부분을 파악하기도 싶고 제작파트에 흥미가 생겨 제작파트를 알아 보던 중 필름메이커스라는 사이트를 통해 영화제작협회라는 모임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거기 협회장에게 연락을 해서 이러이러해서 영화 제작협회에 참석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고  모임에 나오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 주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때 마침 집이 혜화동이었는데 협회 모임도 혜화동에서 하게 되었다. 그리고 참석해서 어색하게 있는 나에게 말도 걸어 주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시던 회장님에 대해 옆에 앉으셨던 분이 왕에 남자 제작실장 하셨던 분이라고 알려 주셨다. 그 모임에서 꽤 대단하게 생각해서 좀 의아해했는데 옆에 앉은 분이 귀띔하기를 이름은 장원석이고 '왕에 남자' 제작실장 하면서 판권을 영화사에 사게 해서 영화화되고 흥행에 성공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하였다. 

'왕에 남자'를 두 번 본 나로서는 그제야 이야기를 보는 능력이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모임 중에 참석하신 제작실장중에 제작부를 구하신다는 제작실장님이 계셔서 장원석피디에게 문의를 했더니 이력서를 내보라는 장원석피디에 말을 듣고 이력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조건이 있었다. 제작부는  운전면허가 필수라는 이야기에 그동안 운전면허가 왜 필요해, 하던 나는 한 달 만에 운전면허를 따고 제작부 막내로 들어가게 되었다. 

제작부에 들어가니 제작부장부터 회계까지 다들 경력이 꽤 있었다. 하지만 누구를 가르쳐 주거나 이끌어 줄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 와중에 폴란드 스텝이 스텝으로 참여하였고 다들 맡은 바 임무가 있어 포지션이 없는 내가 폴란드 스텝 서포트를 맡게 되었다. 

폴란드 스텝과 에 경험은 좀 특별했다. 사실 다른 영화경험이 없어 비교할 수 없었던 첫 영화여서 폴란드 스텝 어시스트가 특별한 경험인 줄 몰랐지만 외국 스텝과의 작업 없이 영화를 진행한 이후에야 외국 스텝에 경험이 특별했다는 것을 알았다. 

일단 그들이 좀 프로 페셔널 했다는 기억이 있다. 그중 한 명은 밤새 술 마시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 심지어 잠도 자지 않고 아침에 얼굴이 시뻘것게 되어서 촬영장에 나와서 해 롱 되었지만 본인에 일이 생기면 누구도 지적할 게 없을 만큼 깔끔하게 본인에 일을 해 냈다. 

그리고 인상 깊은 사람 중 한 명은 포커스 플러라는 분이 계셨는데 보통 카메라 포커스는 촬영감독밑에 퍼스트가 포커스를 잡지만 이분은 포커스만 몇십 년을 하셨다고 한다. 

지금은 촬영에 디지털카메라만 사용하지만 당시에는 필름 카메라가 당연시되던 시기였다. 필름 카메라는 촬영본을 바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인화가 이루어진 다음에 포커스가 정확한지 촬영 앵글에 이상은 없는지 확인이 가능했다. 

다른 영화 이야기지만 한 번은 정말 다시 섭외하기 힘든 장소여서 재촬영은 힘든 회차였는데 나중에 인화를 하니 붐 마이크 화면에 나와 그 부분만 확대해 인화하니 어쩌니 하다가 감독이 과감히 촬영분을 날린 적이 있었다.

지금 촬영 환경에서는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지금은 디지털카메라 사용이 일반화되어 촬영분을 현장 편집하는 편집자가 컷과 컷을 붙여서 현장에서 바로 확인이 가능한 시스템이다) 그 당시 영화 현장에서 가끔 일어 나는 일이었다. 그래서 촬영팀에 입김이 센 촬영장도 생긴다. 한 번은 촬영감독 때문에 영화 촬영 도중에 그만두고 싶은 적이 있었다. 이 부분에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하겠다 정말 지금 생각해도 안 좋은 기분이 올라오는 경험이었다. 

그리고 어떤 영화는 후반작업에서 화면 포커스가 정확하지 않을 것을 확인했고  그 상태로 영화 개봉이 이루어진 일도 일어났다고 한다. 

외국 스텝 이야기 하다가 다른 쪽으로 이야기가 새었는데 외국인들은 사실 들어올 때부터 한국에 관광 목적이 아니라 일하려고 들어 오는 것이다 보니 입국하기 전 서류 작업부터 한국에 숙소며 생활용품 이동까지 손이 정말 많이 갔다. 결국 촬영을 마치고 출국할 때 공항이 이동하려 하려고 숙소에 가니 밤새 동대문에서 쇼핑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겨우 깨워서 짐을 챙기고 공항에 이동하니 시간이 정말 빠듯했다. 그중 한 분이 캐리어가 너무 커 에레베이터를 타게 되었고 세명을 케어하는 쪽이 낮다고 생각해 세명과 같이 에스컬레이터로 이동했는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하겠다는 분이 아무리 기다려도 게이트에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안내 데스크에 방송을 요청하러 갔는데 그분은 영어를 못 알아 들어서 결국 폴라드 스텝 중 한 분이 폴란드 말로 동료를 부르는 멘트를 하게 되었다. 인폼 직원분이 일하시는 중에 다른 분에게 마이크 넘긴 게 처음이라고 당황하셨던 인폼 직원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마지막 스텝이 게이트에 나타났고 무사히 출국을 마치고 나는 내 첫 영화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제작스텝에 대해 많이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촬영 후 남배우가 연락이 왔다. 배우가 스텝보다 더 많이 받는다는 이유로 그날도 어김없이 남배우가 술을 쐈다. 남자 배우 집 앞에 있는 술집이었는데 어떤 술집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날 남 배우는 자기가 촬영 중 죽을 뻔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정확한 연유는 알지 못했지만 남자배우 캐스팅을 감독님이 못마땅하게 생각했고 배우와의 작업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감독님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세트 촬영때 한 적이 있다. 그날 특별히 어려운 촬영이 아닌데 아침부터 테이크( 한 장면을 한번 촬영하는 것을 '1 테이크'라고 함) 정말 많이 갔다. 느낌상으로는 2~30번은 갔던 기분이 들었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이어졌으니 그렇게 생각이 되었다. 특히 그 장면은 배우가 연기하기보다 조명이나 촬영이 더 중요한 장면이었지만 감독님은 몇 번이나 다시를 외쳤다. 그때 배우는 꼼짝없이 좁은 공간에서 대기와 촬영을 반복했다. 그때 내 생각에도 감독님이 배우를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해서 일부러 골질(좀 속어이긴 한데 먼가 화가 나 화풀이하는 행동을 현장에서는 골질이라고 불렀다.)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아직 촬영할 장면이 많이 남았고 속도를 내도 제대로 촬영이 어려운 때에 감독님이 이런 씬에 이렇게 힘들 빼고 시간을 들인다는 게 제작부 막내인 나에게는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남배우가 와이어에 매달리는 촬영이었는데 컷이 나고 현장에 있는 스텝이 배우를 와이어에 매달아 둔 체 점심 식사를 하러 모두 나가 버린 것이었다. 제작부장이 나중에 현장을 지나다가 와이어에 매달린 배우를 발견하고 스텝들을 불러서 겨우 매달린 배우를 내려 주었다고 한다. 스텝들이 현장에 갔을 때는 남자 배우가 호흡을 힘들어하고 물도 제대로 못 삼키는 상태였다고 한다. 배우가 술자리에서 자기는 그렇게 매달려서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사실 그때 그 상황 보다도 다들 매달려 있는 자신을 일부러 매달아 놓고 간 게 아닌가 하는 스텝들에 배신감과 서운함이 더 컸다고 한다. 그때 배우에 대한 연민 같은 게 들었고 배우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배우는 소속사와 매니저와 계약관계가 엮이면서 매우 힘들어했고 그 뒤로 연락이 잘 되지 않아 자연스럽게 연락이 되지 않았다. 지금도 TV에서 배우가 나오면  내가 얻어먹기만 해서 만나면 술 한잔 사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첫 영화는 빠르게 후반 작업을 마치고 영화가 개봉되었다 하지만 여지없이 흥행에 실패했다.  영화가 개봉할 즘 다른 부서일을 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러던 와중에 영화 피디를 하셨던 분이 영화사를 차렸다고 같이 하자고 해서 들어가게 되었고 그 영화사에 준비하던 영화가 3편 정도 엎어지면서 (당시 영화 쪽에서는 영화 촬영을 못하게 되었다는 표현을 업어졌다고 썼다) 일 년을 무일푼으로 영화를 못하게 되었다. 정신적으로 제정적으로도 엄청 힘들었던 때였다. 결국 기다린걸 모두 포기하고 아는 분 소개로 촬영이 얼마 남지 않은 저예산 영화를 한편 하게 되었는데 이 또한 나를 힘들게 하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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