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되는 두 시선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하는 남편과 판타지 액션을 좋아하는 나의 상반되는 영화 취향에서 그나마 교집합으로 살짝 걸쳐지는 소수의 작품들 중 '노팅힐(Notting Hill)'이 있다. 남편은 이 영화를 보고 '나도 나랑 잘 맞는 짝을 만나서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영화라서 좋았다고 했고, 나는 영국 특유의 메마른 유머가 좋아서 '나쁘지 않게' 봤던 작품이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뻔한 신데렐라 스토리지만 이 영화를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던 이유는 그 뻔함에 있는 듯하다. 모두가 기대하는 행복한 결말로 나아가는 과정을 보기 좋게 화면에 담아 관객에게 제공했고, 덕분에 적은 예산으로 큰 수입을 벌어들인 듯하다. 적재적소에 사용된 음악도 꽤 효과적이었다.
남편은 이 영화를 보고 안나가 마지막으로 한 대사인 'Indefinitely(영원히)'가 가장 인상 깊었다고 한다. 내가 꼽는 이 영화의 최고의 대사는 'You daft prick!(이런 병신 새끼!)'다.
내가 마음에 들었던 요소는 신 스틸러 '스파이크'다. 진부한 신데렐라 스토리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신선함을 '스파이크'라는 주인공의 친구를 통해 느꼈기 때문이다. 스파이크는 나 개인적으로는 절대 곁에 두고 싶지 않은 초대박 민폐형 인간이다. 변변한 직업도 없이 친구집에 빌붙어 살면서 실생활엔 도움 하나 안 되는 인물이지만, 뜻하지 않은 부분에서 두 주인공이 이어질 수 있게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 재미있었다. 윌리엄이 안나의 고백을 거절했다는 걸 말했을 때, 나름 이성적인 윌리엄의 친구들은 잘한 일이라고 하지만 단순하고 본능에 충실한 스파이크는 윌리엄에게 'You daft prick!(이런 병신 새끼!)'이라고 거침없이 욕을 한다. 이 말에 윌리엄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다시 안나를 찾아가기에, 해피엔딩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게 이 스파이크의 한마디라고 본다.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에 위의 이유를 대면서 '이 영화 최고의 대사는 "You daft prick!"이다'라고 했을 때, 나를 괴생명체처럼 바라보던 그의 얼굴이 문득 떠오른다. (귀여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