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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뚜벅 Oct 08. 2021

엑상 프로방스, 세잔의 시선을 따라

예술,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

엑상 프로방스는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의 도시다. 여기서 난 예술이 현실을 반영하지만 때론 현실을 보는 우리의 눈을 바꿀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세잔과 생트 빅투와르산을 보면서.

엑상 프로방스 Aix-en-Provence 물의 도시다. 로마시대 집정관 섹시티우스 칼비누스가 온천 때문에  도시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당시엔 지하에서 샘솟는 온천수에 치유의 힘이 있다고 믿었다. 덕분에 온천 지대엔 로마 유적이 많다. 덕분에 남겨진 오래된 건물 바랜 느낌과 분수는  도시가 주는 매력의 원천이다. 특히 구도심 중앙의  소뵈르 성당에선 누구나 묵직한 천년의 공기를 느낀다. 로마네스크 양식 회랑의 조각들에다 고딕 양식의 지지대, 르네상스  지붕이 섞여 있다.  건물에 쌓인 시간의 무게가 순간 다가온다.


엑스라고 불리는 프로방스의 도시, 엑스는 물이란 뜻이다. 분수는 가축들 목 축이려고 19세기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실용적인 이유에서 출발해 아름다움이 만들어졌다니 더 반갑다.


프랑스혁명 당시 작가이자 정치가인 미라보는 의회에 진출해 시민의 편에서 자유를 위해 싸웠다. 그의 이름이 각인된 곳이 엑스의 중심대로  ‘미라보 거리’다. 이 미라보 거리에. 1860년, 12미터 높이의 분수대 ‘로통드’ La Rotonde가 건설됐다. 엑스의 상징이다.

벨뷔에서 본 생트 빅투아르 산

하지만 내게 엑상 프로방스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세잔이었다. 그리고 그가 그렸던 산, 생트 빅투아르 산이다. 사실 세잔 덕분에 난 이 산을 알게 됐다. 석회암과 대리석 산, 덕분에 하루에도 수십 번 색깔이 바뀐다는 사실도. 우리가 이 산을 응시하는 건 세잔이 평생 이 산을 그렸기 때문이다. 그를 따라 오랫동안 산을 바라보다 보면 프로방스의 햇살 아래로 산이 색의 파편으로 변하는 순간이 온다. 그때 우리는 왜 피카소가 세잔을 ‘나의 유일한 스승’이라 했나 느끼게 된다. 세잔은 숨지기 전 87편이나 이 산을 그렸다.

그의 흔적을 따라 구시가지를 지나 언덕길을 조금 올랐다. 나무 사이로 그의 아뜰리에가 보였다. 마침 고요했다. 초록빛 나무와 풀 사이에 있는 아뜰리에는 참 반가웠다. 아뜰리에에 들어서니 한쪽 벽면 전체가 다 유리창이다. 바깥 풍경이 방으로 훅 밀려드는 느낌이었다. 거대한 캔버스를 그대로 들고나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창문 한쪽엔 세로로 난 문이 천장까지 나 있다. 아뜰리에 이곳저곳의 소품들을 챙겨보는데 묵직한 뭔가가 가슴을 때렸다. 그가 세상을 떠난 1906년의 상태 그대로를 보존 중이라고 한다.

https://www.cezanne-en-provence.com/

드니는 세잔과 관련된 명언을 남겼다. “역사상 유명한 사과가 셋 있는데, 첫째가 이브의 사과이고, 둘째가 뉴턴의 사과이며, 셋째가 세잔의 사과이다. 평범한 사과는 먹고 싶지만 세잔의 사과는 마음에 말을 건다.” 사람들은 드니는 몰라도 이 말은 기억한다. 세잔이 50을 넘기고 돌아온 고향 엑상 프로방스에서 아뜰리에에 틀어박혀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봤던 것을 지금 우리도 바라본다. 테이블에 놓인 사과, 그리고 멀리는 생트 빅투아르 산을.

https://www.cezanne-en-provence.com/

세잔이 없었다면 생트빅투와르 산을 누가 기억했을까? 고흐를 알지 못했다면 프로방스를 여행하며 사이프러스 나무에 과연 지금처럼 관심을 뒀을까? 또 밤에 아를의 강을 찾으려 했을까? 터너가 아니었다면 런던의 안개를 주목이나 했을까? 누군가 개발을 목적으로 사이프러스 나무를 베고 생트빅투와르 산을 깎고 아를 강에 건물을 지으려 한다면 우린 그냥 그대로 있을까? 자연은 예술을 낳지만 예술은 자연을 다시 보게 하고 아름다움을 지키려는 선순환이 그렇게 시작된다.

내셔널 트러스트 역시 이런 고민에서 출발했다. 거칠게 말하면 화가의 작품 하나가 경관 보존운동으로 이어졌다고도 하겠다. 산업혁명이 시작될 때 컨스터블 같은 화가들은 자연을 그렸다. 그가 그린 ‘건초 수레’ 1812에는 1800년대 영국의 전원 풍경이 담겨있었다. 그런데 화가들이 그린 자연들은 순식간에 산업혁명의 물결 속에 사라져 가는 중이었다. 생태학자이기도 했던 러스킨 같은 이들이 분노한 지점이다. 강의 중에 그는 터너가 그린 풍경화를 새까맣게 칠해버리면서 자금 우리가 하는 짓이라고 설파했다. 산업혁명에 대한 성찰이었다. 그의 정신을 이어받은 옥타비아 힐 등이 나중에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을 시작한다. 자연보호를 위해 땅을 사들이는 운동이다. 그렇게 산 땅 중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레이크 디스트릭트다.

한 장의 그림이 변화시킨 세상의 이야기, 액상 프로방스에서 보낸 시간 동안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이다. 아름다움은 우리가 세상을 보는 시선을 바꾼다. 그리고 새롭게 보게 한다.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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