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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라이트릴 Dec 18. 2022

카바티나 #2

나의 하이라이트릴

                                                                                                                                                                                                                                                                                                                                                                                                                                                                                                                          

 2002년 3월. 지하철 두 번, 버스 두 번 갈아타고 아침 7시 반까지 가야 하는 교육원.


 매일 보는 시험에 대한 부담감으로 잠을 자는 것인지 눈만 감고 있는 것인지 모르는 상태로 몇 시간만 누워있다가 나오는 출근길이다.


 회사에 도착하면 나의 복장 상태를 점검한다. 빳빳한 다림질로 자켓과 스커트에 구김은 없는지, 손톱과 립스틱이 빨간색 깔맞춤으로 영롱한 광택을 빚어내고 있는지, 헤어제품으로 잔머리 없이 바싹 붙였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동기들이 모두 모이면 미소를 머금고 큰 목소리로 인사를 한다. 허리를 거의 90도 가까이 숙이며 큰 소리로 외친다. "안녕하십니까." "오하요 고자이마스." "닌 하오."




 처음 배우는 안전, 서비스, 어학 등의 업무지식은 생소하고 광범위하고 촉박했다. 매일 치르는 평가에서 일정 점수가 나오지 않으면 재시험을 봐야했고 재시험에서도 점수가 나오지 않는다면 탈락이다. 탈락을 아슬아슬하게 빗겨가는 재시험의 나날들이 계속됐다.


 나를 드러내지 않는 훈련을 받는 것 또한 살얼음 이었다. 어려운 고객을 미리 만나서 면역을 키우라는 듯이 개인 벌점과 단체 벌점의 예방 주사들이 마구 놓아졌다. 손톱이나 립스틱이 삐져나온 것, 인사할 때 목소리가 작은 것, '다나까'체 아닌 '~요'체로 말한 것, 말대꾸한 것, 사투리 쓴 것, 학과장에서 떠들고 있었던 것, 벌점을 받는 이유도 가지 가지다. 벌점 14점이 넘으면 이 또한 탈락. 수료할 때 내 점수를 보니 벌점 10점이었다.




 한 명이 실수하여 다같이 벌점 받는 재수 없는 날은 원망이 한명에게 쏟아지기도 했다. 인간미와 동지애를 느끼기 각박한 시절이었다. 각자 도생의 3개월간 교육원 생활이 끝나가던 중, 마지막 주에 한명이 탈락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진득한 동료애를 미처 느끼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라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웠다.  탈락한 친구가 안타까운 것인지, 나에게 닥쳤을지도 모를 일이었다는 공포심인지, 기어이 탈락시킨 상사들에 대한 원망인지 구분이 안가는 눈물이 흘렀다.




 3개월간의 교육이 끝나는 마지막 날.


고생한 스스로를 자축하고 가르쳐 준 상사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수료식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개인들의 재능 조사가 실시됐다. 누군가의 연주에 맞춰 우리들의 자작 글을 낭독하자는 것이었다.  그 때, 최종 면접에서 기타를 들고 온 내 모습을 기억한 어느 동기가 나를 추천했다.


 "그래, 알았어. '별이 빛나는 밤에' 배경음악 쳐줄께."


 영화 '디어헌터'ost  '카바티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이후에 다시 도전해서 내것으로 만든 곡.


 중, 고등학교때 라디오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를 청취할 때면 제일 먼저 흘러나왔던 음악이다. 클래식 기타 선율이 유난히 아름다워 한 밤중 감성에 젖어들기 좋았던 곡.




 She was beautiful, beautiful to my eyes.


 From the moment I saw her sun filled the sky.


 She was so so beautiful, beautiful just to hold.


 In my dreams she was spring time winter was cold.


-영화 디어헌터 ost 카바티나 'He(She) was beautiful' 가사 중.






  감성적인 연주를 시작했다. 내 연주에 헌사 낭독이 시작됐다. 분위기는 무르익고 클라이막스, 여기저기에서 훌쩍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가  공감하던 시간, 당황스러운 일이 발생했다. '엥? 기억이 안나.다음 운지가 뭐더라? 에라 모르겠다. 그냥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빨개진 얼굴로 클라이막스에서 잠깐 뜸을 들인뒤  다시 처음으로 도돌이표. 같은 부분을 두번 연주하고 겨우 끝이 났다.


박수소리가 끝나고 풍채 좋은 서비스 교육 담당 남자 대리님(박드레곤)이 갑자기 다가오셨다.


 "아로마씨, 일렉기타도 한 번 배워보지 않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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