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이야기에 푹 빠진 아들 월터에게
‘왕 중의 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찰스 디킨스.
이 영화는 바로 그 설정에서 시작된다.
지금은 절판되었지만, 디킨스가 남긴 『예수님의 생애』라는 책을 중고서점에서 어렵게 구해 읽었다. 내가 읽는 모습을 본 민서도 자연스레 함께 읽게 되었다. 이 책은 디킨스가 자신의 자녀들에게 예수님의 생애를 들려주기 위해 정리한 원고로, 그의 사후 가족에 의해 출간되었다. 예수님의 사생애와 공생애가 사건 중심으로 짧고 쉽게 쓰여 있어 아이들이 읽기에도 참 좋았다.
영화는 북미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보다 더 큰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개봉 전부터 장성호 감독을 비롯한 많은 크리스천 연예인들이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섰고, 나 역시 큰 기대를 품고 극장을 찾았다.
하지만 동시에, 기독교계 내부에서는 다양한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모티브가 된 찰스 디킨스의 신앙관, 배급사의 성향, 예수님에 대한 편향된 시각, 성우에 대한 논란 등 여러 지점에서 신학적‧문화적 논쟁이 일었던 것이다. 나도 그 의견들을 마음에 두고, 한 장면 한 장면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결론적으로, 내가 느낀 가장 큰 감정은 이것이었다. 예수님의 이야기가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전해진다는 사실 자체가 반가웠다.
“그렇지만 어떻습니까? 거짓된 마음으로 하든지 참된 마음으로 하든지, 어떤 식으로 하든지 결국 그리스도가 전해지는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기뻐합니다. 앞으로도 또한 기뻐할 것입니다.” (빌립보서 1:18)
인간이 만든 콘텐츠가 어떻게 완전무결할 수 있을까. 우리는 모두 연약한 존재지만, 각자에게 주어진 은사와 부르심을 따라 하나님을 전하며 살아간다. 그 부족함과 한계는, 결국 하나님께서 채우실 것이라 믿는다.
아이의 순수한 시선으로 예수님의 생애를 따라가 볼 수 있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주인공 월터는 처음에는 다소 장난꾸러기로 등장하지만, 그 천진난만함과 생기 넘치는 모습이 오히려 더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의 맑은 눈과 반응을 통해 예수님의 이야기가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고, 어느새 나도 모르게 그 아이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많은 분들이 영화를 보며 울었다고 하셨는데,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가장 먼저 울컥했던 장면은, 아기 예수님이 구유에 누워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헤롯의 유아살해 명령을 피해 이집트로 피신했다가, 어린 아이로 자라 나사렛으로 돌아오던 예수님. 그가 길을 걷다 월터와 눈을 마주치는 장면에서 다시금 마음이 뭉클해졌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눈을 맞추시고, 대화하시고, 함께 음식을 드시고, 두 발로 이 땅을 살아가셨다는 사실. 그 사실이 새삼 감격스러웠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던 장면과 월터가 제3자의 시선으로 예수님의 기적을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 자신이 그 기적의 대상이 되었음을 깨닫는 순간. 장님이 되고, 병자가 되고, 여인이 되고, 베드로가 되어 예수님의 눈을 마주한 그 순간.
우리 모두 그렇지 않을까.
성경의 이야기가 ‘그들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가 되는 순간,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가 바로 ‘내 죄 때문’임을 깨닫는 순간, 바로 그때가 우리의 믿음이 시작되는 지점 아닐까.
영화의 마지막,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작은 아이가 이제는 그 부활을 전하는 증인이 되어, 형제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모습에서… 그 아이의 기쁨이 곧 나의 기쁨처럼 느껴졌다. 모든 것이 내 이야기 같아, 마음이 먹먹했다.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예수님 영화가 나와서 정말, 너무나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