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밤
2025년 11월 21일 금요일
오전부터 목과 어깨가 뻣뻣했다. 강직성 척추염 환자인 나에게 이런 정도의 통증은 낯설지 않다. 다음 주에 생애 첫 대장내시경을 앞두고 며칠간 진통소염제를 끊은 상태라, “약을 안 먹어서 통증이 올라오나 보다” 하고 가볍게 넘겼다. 안마기로 몸을 조금 풀어주고 평소처럼 일과를 이어갔다.
오전에 일을 마칠 즈음 뒷목이 묵직해졌다. 오후에는 지인들과 티타임 약속이 있어 카페로 향했다. 밀크티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동안 머리가 갑자기 ‘볼링공’처럼 무거워졌다. 집에 돌아와 누웠지만, 앉지도 서지도 못할 만큼 머리가 짓눌렸다.
챗GPT가 말해준 대로 따뜻한 물주머니를 베고 누워 있었지만, 통증은 점점 더 심해졌다. 거대한 손이 머리를 움켜쥔 듯한 조임, 관자놀이와 앞머리 쪽에 박동성 통증, 그리고 눈이 빠질 것 같은 안구통. 결국 타이레놀을 한 알 먹었다. 얼마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했지만 4시간이 지나도록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아이들 저녁은 피자를 시켜주고, 일찍 쉬려고 누웠지만 아파서 잠이 오지 않았다. 불안감이 밀려왔다. 우리 가족은 뇌·심혈관 질환으로 쓰러진 분들이 많다. 이 두통을 방치했다가 일이 커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에게 일찍 와달라고 연락하고 아이들을 재웠다. 그런데도 남편은 오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재촉했다. 악세서리를 모두 빼고 씻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신분증을 챙겼다. 남편 차가 지하주차장에 들어오는 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내려갔다.
남편은 나를 보자 “애들 자?”라고 물었다. 나는 그 순간 ‘괜찮아?’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애들부터 챙기는 모습이 섭섭하고 괘씸하게 느껴졌다. ‘나는 애들 돌보는 도구인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10년을 함께 살다 보니 이제 안다. 딱 봐도 내가 안 괜찮아 보이니 굳이 묻지 않은 거다. 그리고 오늘 밤 병원에서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르니, 아이들이 자는지 여부가 그에게는 더 현실적인 문제였던 것이다.
응급실에 도착해 신상정보를 확인하고 바이탈 체크를 한 뒤 침대에 누웠다. 아이들 때문에 응급실에 올 일은 많았지만, 내가 환자로 누워보는 건 처음이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눈부심이 견디기 어려웠다.
CT, X-ray, 피검사, 소변검사를 하고 진통제를 맞으니 조금 나아졌다. 하지만 오른쪽 안구통은 여전히 심해서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의사는 뇌수막염이 의심된다며 뇌척수액 검사를 하자고 했다.
무통주사처럼 척추 사이로 바늘을 넣어 척수액을 뽑아 세균성인지 바이러스성인지 구분하는 검사였다. 혹시 세균성이면 더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당연히 검사에 동의했다.
간호사님이 신중하게 척추 뼈와 뼈 사이에 바늘을 넣으셨지만 더 깊이 들어가 지지 않았다. 교수님이 직접 다시 시도 하셨지만 마찬가지였다. “강직성 척추염으로 인해 공간이 좁은 것 같다”며 결국 채취가 되지 않았다. 의사는 “입원해서 MRI를 찍자”고 권했고, 증상으로 보아 뇌수막염 치료를 먼저 시작하는 게 좋겠다며 스테로이드를 투여했다.
병실에 올라왔을 때, 나는 아무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충전기도, 책도, 세면도구도 아무것도 없다. 그저 입고 온 옷뿐. 서랍에 옷을 넣고 멀뚱히 천장을 바라보았다. 잠은 오지 않았다.
그렇게 혼자 누워 하나님과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듯 기도했다. 놀랍게도 마음에서 흘러나온 건 감사뿐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를 보호하고 인도해주신 하나님을 떠올리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초라했고 때론 비참하기도 했던 어린 내가 어떻게 지금 이런 삶을 살고 있는지, 하나님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했다. 감사 외에는 아무 말도 나올 수 없었다.
그리고… 조금 우습지만, 마음속으로 내 장례식을 그려보았다. BGM은 이찬혁의 〈장례희망〉. 함께해준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떠올랐다.
아빠, 엄마, 오빠.
고마웠어요. 때로는 미워하기도 원망하기도 했지만, 그 모든 것도 결국 사랑이었음을 깨달아요.
초·중·고·대학 친구들.
내 학창시절이 빛날 수 있었던 건 너희 덕분이야. 내 친구가 되어 주어 정말 고마워.
회사 동료들.
제가 많이 모났죠. 미숙함에서 나온 행동들이었어요. 미안합니다. 그래도 함께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치열하게 일한 시간이 돌아보니 참 소중하네요.
아이 친구들과 그 부모님들.
우리 민서·서준이에게 좋은 친구와 좋은 어른이 되어줘서 고마워요.
교회 공동체.
함께 기도하고 예배하며 서로의 믿음에 기대어 살았던 모든 시간이 은혜였어요.
내가 맡고 있는 유아부 아이들.
너희는 내 기쁨이야.
오동통한 볼, 작은 손, “민정쌤!” 하고 달려와 안기던 너희의 말랑한 몸. 사랑 그 자체였어. 믿음의 세대로 잘 자라길 기도하고 축복해.
그렇게 마음속에서 한 명 한 명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내 인생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니.
내 삶은 생각보다 훨씬 풍요롭고 따뜻했구나.
이만하면 참 좋은 인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