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병실에, 마음은 아이들 곁에
2025년 11월 22일 토요일
스테로이드 때문인지 밤새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 3시가 돼서야 잠들었고, 두 시간 뒤에 다시 눈을 떴다. 핸드폰 배터리도 없고, 펜도 없고, 불을 켤 수도 없으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머릿속에서는 생각들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오늘 소통해야 할 것들, 챙겨야 할 일들, 미뤄놓았던 걱정들이 쉼 없이 떠올랐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자, 이번엔 마음속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
민서야
너는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세계를 유심히 바라보는 특별한 눈을 가졌단다. 많은 아이들이 유튜브나 게임에 빠져 있을 때, 너는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 작은 곤충 한 마리까지 오래 들여다보지. 생물학자가 되고 싶다며 생물들의 특징을 신나게 설명하는 너를 보면 엄마는 늘 놀라곤 해.
민서는 때때로 내성적이고, 목소리도 작고, 자신감이 없어 보일 때가 있어. 조금 덤벙대기도 하고. 사람들은 외향적이고 야무진 아이들을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엄마도 가끔 그런 오류에 빠지곤 해.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모두가 그래야 할 이유가 없지. 그랬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지루했겠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다르게 만드셨단다. 너는 너만이 살 수 있는 너의 인생을 살렴. 남과 비교하는 건 아무 의미 없는 일. 출발선도, 기준도, 규칙도 모두 다르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와 은사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과 도움을 주고 받으며 각자의 경주를 하는 거야. 이 세상에 쓸모 없는 것은 없단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고 그렇기 때문에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고 성경에도 나와 있어. 너의 존재는 정말 놀라울 만큼 유니크한 것이고 네가 가진 환경과 경험들도 다 너에게 꼭 필요한 것임을 기억하고 마음껏 누리렴.
⸻
서준아
너는 참 따뜻하고 다정한 아이야. 얼굴도 너무 잘생겼고. 너의 웃는 얼굴을 보면 엄마는 모든 걱정이 사라지는 것 같아. 일본어로 ‘癒される(이야사레루)’라는 표현이 있는데, 누군가를 보거나 안아줄 때 마음이 위로받는다는 뜻이야. 엄마는 너를 볼 때마다 그 단어가 떠오른단다.
한글도 조금 늦게 떼고, 태권도 승급도 오래 걸리고, 받아쓰기도 많이 틀려오지만, 엄마는 너의 속도를 존중해. 빠른 게 다 좋은 건 아니란다. 천천히 가면서 주위를 보고, 너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한 걸음씩 너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것도 참 멋진 일이야.
서준이는 특히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살피는 아이지. 친구가 너를 아프게 했다는 말을 하면서도 “하나도 안 아팠어. 친구가 미안하다고 했어. 난 괜찮아.”하며 엄마가 걱정할까 봐 먼저 달래주지.
그 마음이 감동이기도 하고, 때때로 안쓰럽기도 해.
서준아, 기억하렴.
다른 사람이 소중한 만큼, 너도 소중하단다.
개그맨이 되고 싶다 하다가, 요리사가 되고 싶다 하다가…
엄마는 은근히 네가 배우가 되면 좋겠다는 사심이 있지만(얼굴도 잘생기고 감정도 잘 표현하니까), 결국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면 돼.
너는 지금도, 앞으로도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아이일 거야.
⸻
아이 둘의 얼굴을 떠올리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내게 이런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성공한 인생이다.
어린 시절, 매일 울며 잠들던 내가 있었다. 시편의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운다”던 다윗의 고백이 너무나 와닿던 시절.
그랬던 내가, 지금은 왼쪽과 오른쪽에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안고 잠든다. 병실에서 혼자 누워 있으니 그 아이들을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해졌다.
⸻
아침, 그리고 불안한 시력
새벽을 버티고 나니 아침 식사가 왔다. 그동안 ‘병원 밥이 왜 맛없다는 거지?’ 싶었는데, 환자가 되어보니 알겠다. 입맛이 없다. 반도 못 먹고 내려놓았다.
회진에서 의사 선생님께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씀드렸다. 오른쪽 눈 바깥쪽이 얇은 막이 낀 것처럼 흐렸다. 염증이 시신경을 건드렸을 수도 있다며 조금 더 지켜보자 하셨다.
책을 좋아하고, 강의도 계속해야 하는 나에게 시력은 정말 생명과도 같다. 잘 회복되기를 마음 깊이 바라며, 조금 눈을 붙였다.
⸻
오후, 아이들 방문
남편이 오전에 짐을 가져오길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평일 내내 잠을 거의 못 자고 토요일 오전에 몰아 자는 남편을 알기에 억지로 깨우고 싶지 않았다. 토요일만큼은 그에게 허락된 유일한 늦잠이니까.
오후 3시쯤, 남편이 아이들과 함께 병원에 왔다. 민서는 쑥스러운지 멀찍이 서 있었고, 서준이는 내 팔에 꽂힌 수액—정확히 말하면 수액 라인으로 조금 빠져나온 피—을 무서워하며 다가오지 못했다.
아이들이 배고프다 해서 폴바셋에서 내가 마실 커피 한 잔, 아이들이 먹을 스콘과 소금빵을 사왔다. 내가 한 손으로 링겔을 끌고 한 손으로 쟁반을 들고 오자 서준이가 달려와 자기가 들겠다고 했다. 빵을 급하게 먹던 서준이에게 물 좀 가져다 줄까? 했더니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괜찮다 했다. 아무리 봐도 목이 막힐 것 같아서 저기 정수기에서 물 떠 먹으라고 했더니 그제서야 일어난다. 엄마가 힘들어 보여서 물 가져달라고 못했는데 자기가 정수기에서 떠 먹으면 되겠다고. 짠했다.
둘 다 허겁지겁 먹길래 아침밥을 먹었냐고 물으니, 역시나 였다. 남편은 정오까지 일어나지 못했고 배고팠던 아이들은 내가 사둔 레토르트 스프를 직접 데워먹었다고 했다. 의자에 올라가 전자렌지에 돌리고, 스프 한 그릇을 나눠 먹고, 민서는 딸기쿠키, 서준이는 초코송이를 후식으로. 그 모습이 눈에 그려져 마음이 아렸다.
엄마가 없으면 이런 구멍들이 생긴다. 씻고 새 옷을 갈아입어도 뭔가 꾀죄죄한 모습. 뭔가를 먹었어도 배가 고픈 느낌. 서준이는 손톱이 길어져 부러져 있었고, 민서는 로션을 듬뿍 바르지 않아 피부가 거칠었다.
병동에서 이동 연락이 와 짧은 만남을 마무리했다.
⸻
신경과 병동으로, 그리고 또 대기
응급병동에서 신경과병동으로 옮겼다. MRI는 계속 딜레이됐다. 연락해야 할 사람들이 있어 노트북을 켜서 소통했고, 읽고 싶어 가져와 달라 부탁했던 책도 펼쳐보았다. 하지만 눈이 불편해 오래 읽을 수 없었다.
문득, 오래 미뤄둔 브런치 글이 떠올랐다. 기억이 생생할 때 이 날것의 입원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병원에 입원했다고 떠벌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지만, 불가피하게 일정을 조정하려면 연락을 해야 했다. 걱정해주고, 쿠폰을 보내주고, 회복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말해주는 사람들 덕에 마음이 조금 따뜻해졌다.
⸻
밤, 그리고 민서의 속마음
밤 10시에 드디어 MRI를 찍었다. 대기 중 민서 친구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민서가 엄마 보고 싶다고 했다며.
정작 내게는 내색 못했던 마음을 친구에게 털어놓았나 보다. “집이 가까우면 도와줬을 텐데, 필요한 거 없냐” 정말 진심으로 말해주는 그 언니의 말이 고맙고 감동적이었다.
MRI는 몇 번 찍어봤지만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는다. 조영제가 혈관을 따라 스며들 때 느껴지는 그 차가운 감각도, 거대한 기계 안으로 온몸이 삼켜지듯 들어가는 순간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40분 동안 꼼짝도 하지 말아야 하는데, 기계음은 수십 가지 조합으로 쉴 새 없이 울린다. 평소 같으면 그냥 참고 지나갔을 텐데, 이번에는 유난히 얼굴이 가렵고 왼쪽 배까지 뻐근했다. ‘조금만 참자, 조금만…’ 움직여 다시 찍게 되면 선생님도 나도 더 힘들어진다는 생각에 그저 참고 또 참았다.
길고 긴 촬영을 무사히 마치고 병실 침대에 돌아와 누웠다.
그런데도 여전히 잠이 오지 않았다.
우리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그 소리가 내게 자장가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