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는 매우 감각적이고 신체적인 반응이다. 가슴 한편이 찔리고 잠을 이루지 못하고 무엇에도 집중하지 못할 때, 그걸 극복하는 방법은 시간이다. 무덤덤하게 “이 또한 지나가겠지”를 외치며 마치 없던 일처럼 그걸 덮어버리는 것이다.
상처를 이렇게 다루지 않는 방법이 있을까? 그건 그 상처를 제대로 마주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매우 쓰라리다. “상처가 아물 때까지 만지지 마” 어른들도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그 상처를 들춰내서 상처를 준 상대방을 마주하고 그 아젠다를 수면으로 끄집어내면, 우리의 관계는 바뀐다. 나는 그 성공 경험을 이제는 가지고 있다.
이 성공 방정식에도 불구하고 이 실천은 괴로움을 수반한다. 이 시도는 더 큰 상처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내가 제대로 피드백해 줄게”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에 A는 (심리적으로 벽을 세우며) 밀어냈고, 나는 “결국 안되는구나”를 깨닫고 그 관계에서 더 나아가기를 포기했다.
그럼에도 이 실천은 엄청난 업사이드를 가지고 있다. 까칠한 반응 앞에 내 진심은 그게 아니라고 다가갔을 때, 오해가 풀린 B는 내 세계를 확 넓혀주었다. 비즈니스 모델, 투자, 스타트업 같은 대화들을 펼쳐내고 같이 쌓아나가는, 그런 퀄리티 있는 시간을 선사해 주는 지인이 되었다.
강도 높고 솔직한 관계가 되어야 미래의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상처를 주고받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이다.
상처를 받아도 또다시 다가갈 용기는 어디서 나올까?
이는 물리적이고 신체적인 괴로움을 상쇄하는, 믿고 함께 하면서 서로를 끌어올려 주는 시간을 상상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그렇기에 이 실천을 드라이브하는 것은 사실 매우 감각적인 도파민의 영역이다.
True-self로서 서로를 끌어올리며 얼마나 더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는지 경험한 기억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또 다른 상처를 감내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주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