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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설 Mar 07. 2024

여전히 죽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난 있다. 그 자리에 그대로.

글을 쓰지 않던 몇 개월 동안에도 여전히 죽고 싶었다. 힘든 건 여전했고, 무기력함도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짜증이나 화가 전보다 늘었고, 더 불안해졌다. 병이 더 심해졌다고 하기에는 뭣하지만 그렇다고 더 나아진 것도 아니니 난 그냥 있다. 그 자리에 그대로.


오늘은 진료가 없는 날 아침이었다.

밤새도록 가족들과 싸우고 이 얘기 저 얘기 퍼붓는 꿈을 꾸고 일어나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눈을 감았다. 조금이라도, 아니  단 십 분이라도 편안한 단잠을 자고 싶었다. 하지만 실패. 12시가 넘어서야 꾸역꾸역 일어났다.


그 뒤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짜증이 날 정도로 머리와

몸이 따로 놀았다. 제 멋대로인 머리와 몸에 화가 나서 눈물이 났다. 주치의선생님이 쓰라고 했던 감정노트를 냅다 던져버렸다. 그러다 다시 주워서 뭘 쓰다가 던졌다가를 계속 반복했다.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안절부절못하는 고장 난 기계 같았다.


그렇게 멍하게 앉아있다가 문득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주 중요한 파일을 내 실수로 날려먹은 기억, 또 학창 시절 못생기게 나온 졸업사진, 누군가에게 했던 실수 같은 것 등.

돌이킬 수도 없는 과거에 실수한 기억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괴로웠다. 잊고 있던 오래된 과거와 안 좋았던 기억들이 한순간에 떠오르는 바람에 내 기분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래서 현재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방해했다. 중요한 것은 그 생각 때문에 또 나는 죽고 싶었다.

이때 느끼는 기분은 상상하는 것 보다도 더 최악에 별로다. 그래서 필요시약을 먹었다. ‘한숨 자면 나아지겠지.‘ 소용이 없었다. 숨이 턱턱 막혀왔다. 4시 12분. 마지막예약시간을 아슬하게 앞두고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당장 병원이라도 가지 않으면 오늘 밤을 못 버틸 것 같았다. 그렇게 또 병원을 찾았다.


“제가 미쳐가고 있는 건 아니겠죠?”

선생님에게 물었다. 요즘 그런 생각을 자주 한다. 내가 고장 난 로봇 같다는. 어딘가 나사가 하나 풀렸다거나, 아니면 애초에 조립이 처음부터 잘못되었다거나. 어떤 이유에서건 이상하고, 쓸모없음에는 틀림없다.


어쩌면 죽고 싶은 이유를 끊임없이 찾아다니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기력해서 죽고 싶고, 삶이 무의미해서 죽고 싶고, 내가 너무나도 힘들고, 아프다는 것을 주변에게 알려주기 위해 죽고 싶고, 심지어 실수투성이에 자존감이 바닥난 현재를 살아가는 과거의 내가 너무 미워서 죽고 싶은 것일지도.


상담을 마친 후,

무거운 마음으로 병원문을 나섰다. 주치의선생님은 집에 바로 들어가지 말고 좀 걷다가 들어가라고 하셨다. 그래서 걸었다. 그 근처를 서성거렸다. 찬바람을 쐬고, 사람들 구경을 하니 생각보다 빨리 마음이 가라앉았다. 목적지 없이 걷고, 신호가 걸리면 멈추고, 또 걷고. 그렇게 하루를 또 버텼다. 허무하게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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