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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에서 Jul 18. 2023

운전면허증이 없으면 생기는 일

처음에는 우연인 줄 알았다. 코로나 시국의 투표소에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사람들뿐이니 본인 확인을 위해 마스크를 잠깐 내려 달라고 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다음에 또 투표를 하러 갔을 때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앞사람에게는 하지 않았던 요청을 나에게만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운전면허가 없다. 그래서 내 유일한 신분증은 주민등록증이다. 주기적으로 갱신하는 운전면허증과 달리 주민등록증은 분실하지 않으면 교체를 하지 않고 계속 가지고 있게 된다. 주민등록증에 붙어 있는 꽤 오래된 사진이 투표소에 갈 때마다 마스크를 잠깐 내려 달라는 요청을 받게 만든 것이다.


소설 '불편한 편의점'에서 주인공 독고는 잃어버린 지갑을 찾으러 온 염 여사가 지갑의 주인이 맞는지 확인하려고 한다. 지갑 속 신분증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지 않냐는 염 여사의 말에 독고가 '사진과 다른 것 같다'라고 대답했을 때 나는 괜히 찔렸다. 염 여사도 마음에 걸렸는지 나중에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시현에게 주민등록증 사진과 실제 얼굴이 달라 보이냐고 묻는다. 지갑 주인이 맞는지 확인하려고 한 독고는 '경우'가 있고, 사진과 실물이 다르지 않다고 대답해 준 시현은 '예의'가 있다고 한 염 여사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에 주민등록증도 일정 기간이 되면 교체하게 된다는 뉴스를 봤다. 아마 10년 주기가 될 것이라고 하는데 그러면 일단 10년 간은 동일인으로 확인될 수 있도록 열심히 관리를 해야겠다.


학교 사무실에서 외국인 등록증, 여권, 학생증 등을 받아서 학생들에게 전달할 때가 있다. 부끄러워하며 증명사진을 가리는 학생도 있고 친구들과 같이 보면서 사진에 대해 이야기하는 학생도 있다. 중국 학생들의 말로는 중국에서 증명사진을 예쁘게 찍는 것은 어렵다고 한다. 증명사진을 촬영하는 기준이 엄격한데 앞머리를 무조건 올려서 이마가 보여야 하기 때문에 평소에 앞머리를 내리고 다니는 사람도 소중한 앞머리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앞머리를 내릴 자유가 있는 나의 조국에 감사하게 되었다.  


약간 옆으로 증명사진을 찍는 나라도 있다고 한다. 처음에 학생들 파일을 보다가 45도 얼짱 각도로 찍은 사진을 보고 멋 부리고 찍은 줄 알았는데, 학생에게 물어보니 그 나라에서는 귀가 보여야 해서 그 각도로 사진을 찍는다고 한다. 귀 모양은 바꿀 수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에 다들 자기 귀와 옆자리 친구의 귀 모양을 확인했던 기억이 있다. 스웨덴 학생이었던 것 같은데 오래전이라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다.


증명사진의 기능은 내가 이 사람이라고 증명해 주는 것인데 10년 이상 지난 내 주민등록증 속 사진은 이제 그 기능을 못하나 보다.

선택지가 3가지 정도 있을 것 같다.

다시 젊어지든가 주민등록증을 바꾸든가 운전면허를 따든가.

가장 쉬운 걸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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