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다닐 때 어느 날 친구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본어 단어를 말해 줬다.
こもれび (木漏れ日) 코모레비
한국어에서는 이 말이 단어가 아니라서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이라고 풀어서 말해야 하는데 일본어에서는 하나의 단어여서 좋다고 했다. 자기 이름을 가지고 있는 거니까.
나는 '코모레비(こもれび)'를 생각하면 이 단어가 마음에 든다고 말하던 그 친구가 먼저 생각나고 그다음엔 드라마의 마지막회가 떠오른다.
드라마의 마지막회는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이때 까치 소리와 같은 새소리를 곁들여 더욱 평화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리고 화면에 ‘◯년 후’라는 글자가 등장해 주인공들이 어떻게 살고 있을지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마지막회에서 악역이 캐릭터에 맞지 않게 갑자기 착해지고 지금까지 갈등을 빚던 사람들이 서로에게 관대해져서 화해하는 것이 억지스럽다는 지적도 종종 있지만 나는 이왕이면 해피엔딩이 좋다.
드라마의 마지막회에는 시간이 흘러 ◯년 후가 되었을 때 그동안 온갖 어려움을 겪으며 힘들게 살았던 주인공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 나온다.
주인공들의 결혼식이 마지막회 이야기인 드라마도 있었고 공원 벤치에 다정하게 앉아 임신한 배를 쓰다듬으며 아이의 탄생을 기대하는 모습이 마지막회에 나온 드라마도 있었다. 부모가 되어 아이를 키우는 모습, 인천 공항에서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유학이나 해외 근무를 떠나는 모습, 직장에서 인정받으며 멋지게 일하는 모습을 보여 줄 때도 있다. 주인공이 결국 행복해졌다는 이야기가 메인이지만 작가님은 주인공만 잘 살게 하지 않으시고 의리 있게 주인공의 친구나 이모, 삼촌과 같은 감초 조연들도 살뜰히 챙겨 주신다. 그들도 잘 먹고 잘살게 되었다는 소식이 마지막회에 조금 나오면 반갑다.
누군가 그런 말을 했었다. 살다가 힘든 일이 생기면 ‘나는 주인공이고 지금 주인공이 겪어야 하는 시련이 온 것뿐이라고 생각하자’고 자신을 다독이면 좀 낫다고.
이 방법도 나름 괜찮지만 너무 힘들 때는 나의 드라마가 대체 몇 부작이길래 계속 시련만 나오나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나는 그랬다.
며칠 전에 친구가 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들어왔다고 나에게 연락을 했다. 카톡으로 잠깐 안부를 주고받고 조만간 만나기로 했는데 그동안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엄마의 수술과 같은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일도 있지만 다른 일들도 있었던 모양이다.
시련이 다 지나가고 부디 친구의 지금은 드라마의 마지막회처럼 되어 있기를.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의 앞날도 드라마의 마지막회처럼 행복하고 평화로워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