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원에서 Jun 14. 2023

안 해 본 티

나에게는 로망이 하나 있었다. 학원에서 일할 때 주재원들의 수업을 하러 회사에 가면 직원들이 목에 출입증을 걸고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게 좀 멋있어 보여서 나도 출입증을 갖고 싶었지만 학원은 출입증이 없었고 어학당은 나중에 생겼지만 그냥 하얀 카드였다.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한테 그런 말을 하면 그게 뭐가 좋냐며 갇혀 있는 자의 목줄 같은 거라고 했다.

 

얼마 전 이직한 곳에서 출입증 목걸이를 기대해 봤는데 지문 등록으로 출입하는 시스템이었다.  

출근 첫날 운영본부 담당자가 내 자리로 오더니 출입문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지문을 대라고 했다. 그렇게 지문을 등록하고 문을 열고 다니고 있다.  


어제 모임이 있어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다가 출입증에 대한 아쉬움을 말했다. 그런데 내 모션을 보고 엄지 손가락을 등록한 것을 알아챈 사람이 말했다.


"안 해 본 사람은 엄지를 등록하죠. 검지를 등록해야 하는데."


어쩐지. 점심을 먹고 들어갈 때 동료가 검지로 찍는 걸 봤다.


"아.. 안 해 봐서 몰랐어요. 그거 바꿀 수 없어요?"

내가 물었다.

추가 등록을 할 수 있는데 담당자가 귀찮아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음.. 그렇구나. 사실 운영 본부 담당자분이 약간 무서워 보여서 그런 요청을 할 용기가 안 난다.


'제가 얼마 전에 휴대폰 번호가 바뀌었는데요.' 같은 느낌으로 '제가 얼마 전에 손가락이 바뀌었는데요'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안 해 본 것은 조금씩 티가 난다.

내가 또 이직을 할 가능성은 낮지만 다음에 한다면 잘할 수 있겠지. 잊지 않고 검지로 등록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침부터 먹어도 되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