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또치 Oct 20. 2024

역세권 원룸

어둑한 도시의 밤, 붉은빛, 초록빛의 전광판 불빛들이 새하얀 커튼을 뚫고 방으로 들어왔다. 내가 사는 이곳은 도시 한가운데, 지하철역까지 걸어서 3분 거리인 초역세권의 원룸이다. 쿵척-쿵척- 음악소리가 흘러나오고 밤 11시부터 새벽 4시까지는 문을 닫지 않는 bar, 술집, 클럽들이 원룸 바로 아래, 옆에, 뒤에 있다는 것만 빼면 꽤 좋은 컨디션과 좋은 위치의 원룸이다. 젠장.


 처음 이 집을 구할 때는 당연히 낮시간이었고, 술집은 문을 열지 않았다. 부동산아저씨는 지하철역이 가깝고, 신축은 아니지만 리모델링을 착한지 2년도 되지 않은 서울에 이만한 방은 없다며 나를 설득했다. 가게들이 아래에 몇 개 있는 것은 보았지만 평범한 이름의 가게들이었고, 무엇보다 역이 가까운 점에서 매일 출근하는 직장인 신세인 나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심지어 다른 원룸보다도 반평정도 더 커 보이는 착시현상까지 느껴졌는데, 아마도 그건 깔끔한 리모델링에 속았던 듯하다. 해도 잘 드는 편이었고, 가격도 적당한 선이었다.


1층은 상가 2층부터 주택인 건물이었지만 1층은 운영하지 않는다고 당시 부동산 아저씨는 거짓말을 했다. 


'어차피 운영을 하던 안 하던, 회사 끝나고 와서 잠만 자는 게 다일텐데, 이 정도 집에 이 가격이면 괜찮네? '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덜컥 계약을 하고, 이사를 한 당일 밤 무언가 잘 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날은 회식을 하고 집에 오느냐고 저녁 9시쯤 늦은 귀가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집 근처에 오는 길이 낮보다 더 밝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 여기가 이렇게 사람이 많았던가?"


역세권이라 사람이 많은 건가,라고 단순히 생각했지만 이때 술을 많이 마셔서 그랬는지 사람이 많아 보인다고 착각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3분을 걸어오는 동안에 왁자지껄 떠드는 사람들과 중간중간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모습들, 쿵쩍거리며 클럽 edm노래가 흘러나오는데도 이게 꿈인지, 생신지 내가 집을 잘 온 게 맞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사를 하고 첫날밤이었고, 집을 가는 길은 당연히 익숙하지 않았다. 낯선 이 길이 분명히 부동산 아저씨와 같이 걸어갔던 길인건 맞는 것 같은데... 왜인지 아닌 것 같기도 하면서, 내가 지금 꿈을 꾸는 건가? 하고 걸어가며 앞을 바라보는데 나의 원룸 건물이 떡하니 나타났다.


"어라. 여깄 네."


내 앞에 있는 이 건물이 맞긴 하는데, 아저씨 말로는 1층 상가는 분명히 문을 닫은 상가라고 했던 기억과는 다르게 붉은빛을 내뿜으며 로맨스 바라는 이름의 전광판이 번쩍이며 운영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 안에는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분위기가 제법 좋아 보이는 바였다.


"뭐야. 나 사기당한 거야?"


 이사 첫날부터, 완벽히 사기를 당한 느낌에 단전부터 화가 끓어올라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 당장 부동산에 전화해서 사기꾼새끼야.라고 욕을 해야 할까? 아니면 집주인한테 따져야 하나? 아니 이제 와서 이사까지 다했는데 계약을 파기할 수가 있나?라고 생각하기도 잠시 집을 보니 긴장이 풀렸던 것인지 잠이 쏟아졌었다. 이때부터의 기억이 없다.


기억은 거기서 끊기고 아침이 되었다.  회사를 가야 한다고 울려대는 알람소리에 눈을 뜨고, 상황을 파악할 그런 시간 따위 없이 당장에 하루를 살아야 하는 직장인으로 씻고, 옷을 입고 역까지 뛰어가 출근할 뿐이었다. 지하철은 언제나처럼 콩나물 같은 사람들을 빼곡히 실고, 흔들거리며 움직였고 콩나물 한줄기인 나 또한 끼여서 출근하는 회사원 1 일뿐이었다. 끼여서 가는 동안에 어젯밤 내가 본 것들이 진짜인가? 가짜인가? 생각하려 했지만 옆에서 밀쳐대는 아저씨 때문에 그마저도 금방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