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말 Aug 27. 2023

일본 계란은 미끄러워

바도

일본 계란은 미끄러워

     

  나는 지금 일본 후쿠오카 주오구 텐진 지역에 머물고 있다. 텐진 후쿠오카 inn. 후쿠오카에서도 굉장한 번화가에 속하는 멋쟁이 동네다. 우리나라로 치면 홍대 같은 느낌이라고들 합니다. 일본에 다녀와 본 사람이라면 지극히 당연한 말인지도 모르지만 일본 사람들은 각기 개성이 뚜렷하다. 모두 자신들이 살아가고 싶은 라이프 스타일에 확고한 기준과 신념이 일상에서 심플하게 튀어나온다. 오히려 그렇지 않은 쪽이 더 신기할 지경. 그런 정도는 옷차림이나 흘끗흘끗 바라보는 정도만으로도 알 수 있다.      


  일본인은 타인을 대하는 태도가 굉장히 부드럽고 유들유들하다. 버스 기사 아저씨 발음도 굉장히 매끄럽게 기름 위를 미끄러지듯 흐른다. 아마도 회사 메뉴얼인 것 같은데, 정차할 때마다 매번 정류장 이름을 안내하면서 뒤에 ’마—스'라고 읊조린다. 나는 그 간질간질하고 나긋한 안내 방송이 마음에 들어서 몇 번이나 버스를 탄다. 심지어 엠뷸런스의 출동 사이렌도 일종의 명랑함과 느긋함을 지니고 있다.     


  텐진 시내 골목에 위치한 식당에 들어가 식사를 주문했다. 식당의 모든 직원이 다같이 반겨준다. 손님 이랏샤이마셰! 간 마와 파가 듬뿍 들어간 규동에 날달걀이 딸려 나온다. 톡 깨서 수북한 덮밥 위에 올리니 투명한 흰자가 빙글 돌고 굽이쳐서 접시 밖으로 빠져나가 버렸다. 아휴. 일본은 무슨 날계란도 특히 미끄러운걸까.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실대며 도망가는 계란을 보면서, 어렴풋 느꼈던 막연한 생각이 구체적인 실재감을 가지고 확고해진다. 일본에 온 뒤로 보이는 모든 것들이 어쩐지 매끈매끈한 기분이다. 도무지 손으로 꽉 움켜쥘 수가 없다.     


  일본인들은 저마다 라이프 스타일 혹은 애티튜드라는 투명한 막을 한 겹씩 두르고 있다. 페르소나. 일본인의 경우 그것은 가면 보다는 전신을 두르는 로브와 같다. 그 로브는 특수 코팅 처리된 옷감처럼 굉장히 매끈매끈하다. 웬만한 접촉에는 미끄덩 흘려버린다. 그렇게 그들은 하나의 방어술처럼 굉장히 효율적인 개인적 보호막을 구비하고 조금의 흠결도 없이 몸에 두르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외국인의 눈에만 보이는 특정한 종류의 물질인지도 모른다.     


  주오구 북쪽에 위치한 오호리 공원은 그야말로 일본스러운 공원이다. 석촌 호수 크기의 강변을 한 바퀴 돌면서 발견한 쓰레기는 비닐봉지 단 2개뿐. 블루투스 스피커를 쾅쾅 트는 자전거 동호회도 없다. 코오롱 등산복을 입고 몰려다니는 시끄러운 등산 모임도 없다. 기분 탓인지 강아지도 주인과 보조를 맞춰 짖지도 않고 얌전히 품위를 지키며 산책한다. 나뭇가지에 묶여 있던 플래카드가 풀려서 덜렁거리면 누군가 매듭을 짓고 유유히 사라진다. 청둥 오리들도 잔잔한 수면 위에서 태연자약 머리를 묻고 졸고 있다. 그런 광경을 쳐다보며 머리를 비우고 벤치에 앉아 있으면 마치 공원 풍경을 그린 한폭의 유화 속으로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든다. 그것은 다분히 일본화적인 풍경화다.     


  역시 처음에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일본은 사람들도 다들 친절하고 사소한 규칙도 잘 지킨다. 솔직히 부러운 마음도 든다. 그렇지만 그것은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는 생선 비늘처럼 미끌미끌하다. 그것은 타인의 접촉을, 적어도 생소한 타국민의 접촉을 단호히 검열한다. 미끈매끈한 표면을 지닌 하나의 완제품. 메이드 인 재팬. 그것은 일본의 장인정신처럼 국가적으로, 지역적으로, 개인적으로 제작되고 다듬어지는 종류의 것이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높은 수준의 시민 의식이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것의 뿌리가 일본이라는 나라가 지닌 고유의 자기지향적 로맨티시즘은 아닌가 생각해보고 있는 것이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그것은 굉장히 감탄스러운 일이다. 역시 일본은 누가 뭐래도 섬 중의 섬이다.                    


작가의 이전글 귀를 쫑긋거려봐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