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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Aug 12. 2021

낯선 곳에 발을 들인다는 건

해외여행은 처음이라

22살, 내가 처음 해외여행을 갔던 때다. 21살에서 22살로 넘어가던 1월의 나는 어떤 누구보다도 자신감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다. 막 고등학생 티를 벗어낸 20살을 거쳐, 다니던 대학에 적응을 끝낸 21살을 지나온 22살의 나는 이제야 비로소 어른이 된 것 같았다. 무서울 것이 하나 없었고 그런 나를 막을 수 있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해외여행에 눈을 뜨게 된 건 한 TV 프로그램 때문이다. 할아버지들이 유럽을 돌아다니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처음 유럽이라는 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가는 곳곳마다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었고, 자유로워 보이는 분위기가 나를 끌어당겼다. 노천식당에서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고 노래를 크게 듣고, 길거리 어디에서나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흥미로웠다. 프로그램 시리즈가 계속되면서 유럽을 향한 나의 작은 호기심은 결국 유럽행 비행기를 끊게 만들었다.


유럽을 가겠다고 학기 중과 방학을 가리지 않고 내내 아르바이트만 했다. 패밀리 레스토랑, 영화관, 과외, 카페 등등 몸과 머리를 쓰면서 나름 열심히, 그리고 최선을 다해 돈을 모았다. 덕분에 성적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지만 통장잔고는 나 자신과 약속했던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2년 뒤, 380만 원을 들고 나는 드디어 유럽으로 향했다.






여행 계획을 짜는 순간부터 나는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른 선택을 했다. 여기서 말하는 '보통의 사람들'이라고 하면 인터넷 블로거 혹은 지인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들이 런던으로 입국해서 로마에서 출국하지만 나는 반대로 로마로 입국했다. 그리고 대부분 성수기인 6월에서 8월 사이에 여행을 가지만 나는 춥디 추운 1월에 여행을 떠났다. 이 계획엔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다만 주어진 자본 하에서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처음 도착한 곳은 이탈리아 로마. 공항에서부터 끊이지 않는 호객행위로 인해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인터넷과 여행책에서 이미 봤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고 계획했던 대로 고속열차를 타고 버스터미널로 이동했다. 터미널에서 정신을 차리고 둘러보니 주위에는 웬 키 크고 험상궂게 생긴 외국인들로 득실거렸다. 걸려있는 글자들은 뭐 알파벳인 건 알겠는데, 영어랑은 또 달라서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던. 어찌어찌 버스에 올라타 예약했던 숙소로 향했다. 로밍은 당연히 안 해갔고 와이파이도 안 잡히던 버스 안에서 어디서 내려야 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굴렀다.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간간히 잡히는 데이터에 의존하며 근처에 왔다 싶을 때 벨을 눌러 버스에서 내렸고, 시각은 10시였다.


밤 10시, 발아래에는 온통 짙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고 구불구불한 길에는 간간히 가로등만 있는 시골길 한복판에 버려졌다. 어쩌지? 이건 내 계획에 없던 건데. 지도를 보면서 숙소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데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구고, 정말이지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는 표현이 딱 맞겠다 싶다. 내가 어떤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 시간에 비행기를 끊었을까부터 해서 왜 숙소를 터미널 근처로 잡지 않았을까, 아니 어쩌자고 무턱대고 유럽을 왔을까 후회란 후회는 다 했다. 이러다 납치당하는 건 아닐까 아니면 밤새 숙소를 찾지 못해서 길거리에서 아침을 맞이하려나 온갖 상상으로 머릿속이 뒤얽혀버렸다.


10분쯤 지났을까, 멀리서 빌라 단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눈물이 주르륵 흐르려던 걸 애써 참고 단지로 들어섰다. 빌라 내에서도 한참을 헤맨 후에야 에어비앤비에 도착했고 호스트를 만나 방 안으로 들어가자 그제서야 모든 긴장이 풀렸다. 어둠 속에서 길을 헤맨 건 고작 10분가량이었지만 갓 22살이 된 여자애가 감당하기에는 무척이나 두려웠던, 생애 최악의 10분이었다.






낯선 곳에 발을 들인다는 건,

꽤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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