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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Jul 17. 2022

바람핀 애인과 재회를 했다

당신은 정답대로 살고 있는가

즐겨보던 연애 고민 상담 프로그램에서 바람 핀 애인에 관한 사연이 나오면 나는 늘 ‘무조건 헤어져야지. 용서해주면 어차피 또 바람피울게 뻔한데’하고 생각했다. 사연이 마치 내 일이라도 되는 듯, 공감하며 열을 내고 또 화를 냈다. 그렇게 남의 일인 줄로만 알았던 그 일이 어느 순간, 나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하루아침에 내 인생이 뒤집혔다. 정확히는 그날 새벽, 내 몸과 마음이 모두 무너져버렸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이게 무슨 상황일까,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과연 꿈인 걸까?


애석하게도 꿈은 아니었고 상대방은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나는 짜고 짜내어 질문을 계속해서 내던졌지만 돌아오는 말은 미안해, 가 전부였다. 나는 듣고 싶은 말이 너무나도 많은데,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미안하다는 말 뿐이었다. 새벽 내내 일방적으로 오만가지 말을 쏟아내다가, 결국 그렇게 그를 보냈다.






상대의 바람을 알고 꽤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원래 같았으면 친구들을 만나 욕하고 하소연하면서 위로받았겠지만, 나는 공부를 하는 수험생이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아 나는 대부분의 인간관계를 잠시 접어두고 공부에만 매진하고 있었다. 내가 이별을 했던지 아니던지 그건 중요치 않았고, 시험날은 다가오고 있었기에 다시 공부에 전념해야 했다. 하지만 잠을 자지 못했고 속이 울렁거려 밥을 먹을 수가 없었고, 운동을 하면서도 울었다. 공부를 하다가도 생각이 났고, 생각이 나면 나는 또다시 동굴로 들어가 한참을 울었다. 밥을 며칠씩 안 먹으면 몸에서 안 좋은 신호가 온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게 됐다.


처음 하루 이틀은 원망이었다. 나는 정말 이 관계에 최선을 다했다. 나와의 미래를 꿈꾸는 그 사람으로 인해 내 미래도 바꿨다. 이민을 포기하고 새로운 커리어를 쌓기 위해 시험 준비를 시작했고, 자주 보고 싶어서 그의 집 근처로 이사를 했다. 물론 이 모든 게 오로지 상대만을 위한 결정은 아니다. 상황이 조건에 맞게 떨어져서 이와 같은 결정을 한 것이지만, 결정에 큰 영향을 준 사람이 그였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나의 진심은 배신으로 돌아왔다.


원망과 분노로 가득 찬 날들이었는데, 어느샌가 마음속 깊이 그리움이 조금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아닌 걸 알면서도 그가 보고 싶었다. 우리의 추억이 그리웠다. 동시에 궁금해졌다.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바람에는 이유가 없다지만 그래도 궁금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그의 행동에는 이유는 없었을 것이고, 있었다 하더라도 내가 알아서 좋을 리 없다. 그런데도 자꾸만 우리의 지난 대화를 곱씹어보고 사진을 보고, 통화기록을 살펴보며 그의 흔적을 좇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처음에는 미안하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였다. 밉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존재도 아니었던 게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내가 미련하기도 하면서도 내심 반가웠을지도 모른다. 억지로 메시지를 피했다. 그것도 잠시, 나는 그 메시지 속에 갇혀버렸다. 공부를 하다가도 메시지를 보게 되고 길을 걷다가도 얼른 핸드폰을 켜서 말의 의미를 하나하나 새겨보게 됐다. 그래서일까, 두 번째 연락은 피할 수 없었다. 피해봤자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을 알았다. 똑같이 연락을 곱씹어보면서 일상생활을 전혀 하지 못할 것을 알았다. 결국 그를 만났다.


그를 만나러 가는 길 내내 머릿속은 온통 물음표로 가득 차있었다. 그와 재회하고 싶은 마음으로 만나러 간 것은 아니었고, 그냥 왜 그가 그런 행동을 했는지가 너무 궁금했다. 헤어진 날, 충분한 얘기를 나누지 못했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도 못 하고 답답한 것들이 많았다. 물론 화도 크게 낼 생각이었다. 이런 다짐은 그를 만나자마자 녹아내렸다. 아파트 놀이터에서 그를 보자마자 서로 웃어버렸다. 그게 우리 재회 당시의 상황이다. 어떻게 수습할 겨를도 없이 반사적으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내 앞에 그가 있는 게 너무 당연했고, 옆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게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용서를 구하고 싶지만 염치가 없어서 조심스럽다고 말하는 그에게 나 또한 용서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당장은 옆에 있고 싶었다. 앞으로의 미래가 핑크빛만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당장의 고통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깊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헤어져있는 시간 동안 날마다 울면서 눈을 뜨고 울면서 잠에 들었다. 보고 싶었고 곁에 있고 싶었다. 무너진 일상을 빨리 되찾고 싶었다.






누군가는 뭐 얼마나 대단한 사랑이라고 이렇게까지 자신을 갉아먹냐며 혀를 찰 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 또한 존중한다. 과거의 나여도 그렇게 말했을 테니. 하지만 사람들은 각자 처한 상황이나 가치관이 다양하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각자의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할 뿐이다.


정답을 알고 있더라도 정답대로, 정답처럼만 사는 것은 쉽지 않다. 다들 인생을 전부 정답대로 살고 있는가? 때론 내가 가는 길이 오답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


정답과 오답이 무엇인지 가르쳐주기보다는, 그냥 단지 무언의 공감이 때로는 그 사람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정답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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