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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푸는사람 Jul 08. 2022

[스타트업 경험기] 8편 사내정치(下)

앞 서 상(上)편에서 좀 더 거슬러 올라가서 회고하자면,


입사 첫 주부터 사내정치의 불쾌한 냄새를 감지할 수 있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내 앞에서 서로의 험담을 늘어놓았다.

경영진이나 직원이나 누구랄것도 없었다.

안듣고 싶고 안궁금한데 사람들은 일러바치듯 각자의 사연과 타인에 대한 험담을 쏟아냈다.

내가 또 선비 기질 못참아서 '저는 그런 얘기 듣고 싶지 않아요.' 라고 하면

그걸로 한달 내내 씹을거리 제공할거라는것쯤은 알고 있었다.

한편으론 얼마나 쌓인게 많았으면 저럴까 싶어 그저 무료 상담을 해줄 수 밖에 없었다.

이때 돈받고 들어 줬다면 한달 월급은 가뿐히 넘었을 것 같다. 진짜로


상식적으로 요만한 스타트업에서 다같은 일개미끼리 뭐 그렇게 불만일게 있나 싶었는데

이곳은 이미 파벌이 형성되어 있었다.


원년멤버 vs 아닌멤버


그리고 그에 대한 차별을 대놓고 드러내고 있었으며 부끄럽기는 커녕 그 차별을 당연히 여겼다.

좀 더 객관적으로 나누자면


원년멤버는 1세대 라고 하자.

아닌멤버는 2세대 라고 할수 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입사했던 사람들은 3세대다.


1세대와 2세대를 거쳐보니 경력자가 필요하다는 내부 의견인건지 본인 판단인건지

아무튼 3세대는 경력자로 충원되었다.


그리고 3세대는 이 두 파벌사이에서 폭풍의 눈이 되어버렸다.

본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말이다.


하지만 이들은 누구랄것도 없이 부족한 경험만큼 서투르기도 했다.

경력이 대충 1n년 이상이 되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정치 수작쯤 금방 눈치채게 된다.

단지 말을 안할뿐인거다. 애써 모르는척 해주면 좀 그만해도 될텐데... 눈치도 없다.

나는 특별히 휘말릴 생각도 없고 정치질에 염증이 나있었다.

이전 회사에서 임원급으로 일하며 지긋지긋하게 매일같이 겪고 해봤기 때문에

최소한 이 젊은이들과 그러고 싶진 않았다.


파벌이 나뉜 직원들은 열심히 3세대를 자기편으로 만드려고 애썼다.

아마도 대표이사는 3세대는 당연히 자기편을 들어줄거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편들어주기엔 1세대가 벌린 일이 2,3세대를 갈아넣어도 해결이 안되는 수준이었다.

1세대들은 그 일을 더이상 수습하기도 싫고 2,3세대에서 떠넘기고 발을 빼려고 했다.


원년멤버인 1세대도 똘똘 뭉쳐있진 않았다. 그 안에서 나뉘었다.

철밥통 멤버 vs 위기의 원년멤버


철밥통 멤버는 대표이사의 지인과 개발자, 특별한 감정이 있는 사이였고

위기의 원년멤버가 바로 근태 문제직원이었다.

위기의 원년멤버는 제품의 핵심 개발자이기도 했는데 대표이사와 사이가 틀어지고 이직처를 구하자 퇴사했다. 이 분은 내부 갈등의 강력한 도화선이자 빌런이었는데 이분이 퇴사하면 내부갈등이 좀 줄어들줄 알았는데



다른 빌런이 리스폰되었다.



Amaging! 진상 보존의 법칙은 어딜가나 있나보다.



정치질이 어떻게 되던지 말던지 들어줄 시간도 없었다.

프로젝트가 너무 처참한 상황이라 나는 그걸 수습하기 바빴었다.

협업 직원들은 업무를 너무 몰라서 나는 업무요청이나 업무지시를 해도

그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부터 설명해줘야 해서 피로도가 극에 달해 있었다.

이 상황을 이해하거나 알아줄만한 사람도 없었다.

그들이 해온 업무의 결과물들은 솔직히 말해서 요즘 학부생들 과제만도 못했다.


결국 내가 다시 하거나 꼼꼼히 들여다보고 수정해주다보면 나의 일이 더 많아지곤 했다.

이들은 속도도 느리지만 효율적인 일처리 자체를 학습한적도 없었다.

스타트업이라 하기엔 너무 올드한 방식으로 업무를 진행하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서 나는 대표이사와 특별한 감정이 있는 그 분을 성장시켜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어서

그분의 기분이 다치지 않게 일거리를 주고 듣기 불편하지 않을만한 말로 피드백을 해주느라

하루 하루 고통스러운 나날들을 보냈다. (tq 사내연애 다 뒤져)

그분의 인성이 못됐으면 흑화해서 창의적인 방법으로 하루하루 괴롭혀줬을텐데

사람만 놓고보면 착해서 참 나를 심정적으로 힘들게 했다.

결국 이분에게 할당된 모든 일을 내가 다 검토해줘야 했고 중요도가 높아서 건너뛸수도 없었다.

나는 일에 찌들어서 울분이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곤 했었다.

특별한 분이니까, 그냥 편하게 쉬엄쉬엄 하고싶은거 하시게 두고 내가 다 해버리는게 나을것 같았지만

초롱초롱 뭐라도 배워보려는 눈빛을 보니 거지같은 내 홍익인간의 정신이 그래도 기회를 주어라 라고 말했다. 그 결과가 나에게 독이 되어 돌아올줄은 몰랐다.


이분도 이 회사의 큰 이슈 중 하나였는데 내부적으로는 이분의 퍼포먼스에 대한 불만과 우려가 많았던 모양이다. 상업적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의견과 외부 피드백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대표이사는 꿋꿋하게 정말 잘하고 있고 진짜 실력있는 분이라고 열심히 변호하고 있었나보다.

그게 오히려 더 큰 반감을 사게 만들었던 모양이고 원년멤버들이 특권을 누리는건 팩트였다.

내 여자를 지키고 싶었다면 이런 방식은 잘못..읍읍


채용부터 비용지출까지

1세대 멤버의 요청은 수용했지만

2세대 멤버들의 요청은 무시되었다.

3세대의 요청도 무시되었다.


이전 세대 멤버들이 월급루팡과 정치질에 몰두해 있을 동안

3세대는 소위 말하는 '뺑이치기'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고군분투하는 3세대들을 이전세대들은 어쩌나 두고보자 라며 피식거리거나 간을 보기도 했었다.


1세대 멤버들은 이미 특권을 누리는것에 무감각해져서인지 꼬투리 안잡히려고 신경은 썼지만

2세대 멤버들의 불만을 잘 이해하지는 못하는듯 했다.

알아도 모르는척 하는건지, 정말 모르는건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도 않고 한 사무실에서 각자 다른 계층으로 나뉘어 있었다.


사내정치는 여러가지의 형태로 존재했다.

1세대 혹은 대표이사가 맘속이 찜해준 최측근자들에게 특권을 제공하는건

은밀히 비밀스럽게 진행되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2세대들은 다 알고 있었다.

내가 관심도 없어하고 잘 모르는게 정치에 도움이 안되었던지 가끔 2세대들이 하나씩 귀뜸을 해줬다.

아~ 그렇군요. 라고 하면 약간은 실망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그들의 사내정치는 정말로 다양했다.

대부분은 그들끼리의 뒷말이었을거고 나는 그 어떤 편에도 속하지 않았다.

리더에겐 최소한의 품위는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나는 아무리 x같은 상황에서도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려 노력했다.

그렇다고 무작정 편들어주지거나 방치하지도 않았다.

내 시선에서 잘하는건 잘하는거고 못하는건 못하는거고 필요할땐 솔직해져야만 했다.

정치때문에 그걸 타협하고 싶진 않았고 이건 내 커리어의 자존심이기도 했다.

그들도 나의 업무능력에는 뒷말을 하지 못했지만 그들의 예상을 넘는 수준의 업무 요구에 불편해했다.



내가 하는 업무상의 피드백이 듣기 좋으면 나는 그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었고
듣기 싫거나 수행하기 어려우면 불편한 사람이 되었다.



젊꼰 시집살이가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그래도 차라리 이건 나았다.

철밥통 멤버들은 교묘하게 업무를 하지 않거나, 조용히 무시하곤 했다.


이들은 서로 협업과 도움이 필요할 때에도 신경전을 하기 바빴고

서로가 피곤해하면서도 그만두질 못했다.

대표이사부터 직원까지 물어뜯길 명분 하나만 생겨도 매 회의마다 공론화해서

서로를 공격하길 반복했다.


승자도 없었다.

상처만 남고 더 큰 상처를 주기위해 칼을 갈고 있을뿐이었다.


회고해보면 나에겐 참 생경한 풍경이었다. 그때 도망쳤어야 했는데

이렇게 좋은 나이에 전력을 다해 정치에 몰입하는 사람들은 처음봤기 때문이다.

간혹 한 두사람 정도 있는건 봤지만 온 조직이 전력을 다해서 이러는건 처음봤다.


아이러니한건 내 직장생활 중 최악이었던 곳도 이러진 않았었다.

정리해고를 200~300명씩 했던 회사의 분위기도 이렇진 않았었다.

일이 아무리 거지같아도 동료들과 다독이며 일했던 시간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었고

힘드니까 서로 더 의지하고 다독였는데 여기는 한가해서 쌈박질이나 하는건가 싶기도 했다.

서로 칼을 겨누다가도 어느날은 서로 편먹고 그러다가 또 신경전하고

대표이사부터 직원들까지 다 이 모양이었다.


이런게 스타트업의 컬쳐핏이라는건가?

근데 난 이런 문화컬쳐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데 말이다.


한편으로는 이 회사가 처음부터 이랬으면 다들 이렇게까지 남아 있지 않을텐데

왜 아직도 퇴사를 하지 않는가? 를 살펴보니 은연중에 어떤 정? 애증? 이런것도 느껴지더란 말이다.

감정이 없으면 싸움도 하기 싫은게 사람 심리인데 말이다.

일말의 기대 같은게 있어야 하는 실망하고 싸우고 본인의 의견을 피력하려고 하는거지.



그렇다면 나름 돈독했을 사이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


간자가 있었다!

지속적으로 이간질 시키는 간자가 분명히 있는데 그게 누구인지를 모르겠더란 말이다.

왜 찾기 어려운지는 나중에 알았다.

제일 큰 간자는 직원들과 말을 섞을 일도 없었기 때문에 색출이 어려웠던거다.

대표이사는 본인의 선민의식에 갖혀 본인이 다루기 쉽다 생각하는 간자에게

역으로 조종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적당한 공감과 편들어주기의 단맛에 빠져서 헤어나오질 못했다.

간자와 단둘이 얘기할때가 많았는데

대표이사의 기분을 좀 상하게 한 직원을 문제삼아 도마위에 올리면 덥썩 미끼를 물곤 했었다.

그리고 옆에서 열심히 대표이사는 간자가 던진 워딩에 동조하며 자기 생각처럼 착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간자 외에도 직원 중, 일부는 이 로직을 알아채고 조용히 이용하기도 했었다.

이런 초급 정치질이 가능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뒷담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나도 이렇게까지 알고 싶지도 않았는데 우연한 기회로 두사람의 은밀한 대화를 듣게 되었는데

가설이 사실로 검증된것뿐이었다.


대표이사는 그리 멍청한 사람도 아니고, 비인간적인 사람도 아니었지만

이상할정도로 생각없는 말들을 뱉거나 말실수를 했는데 아마도 이 간자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대표이사도, 직원들도 감정적으로 싫거나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한 명, 한 명 따로 보면 괜찮은데 모아 놓으면 왜 병신집단이 되는거지?


제일 큰 문제의 간자는 철밥통 멤버라 제거할 방법이 없었고 직원들도 이미 알고 있는듯 했다.

그 간자가 직원들에게 주시당하고 있다는건 지난 슬랙 기록에서 쉽게 찾을수 있었다.

그리고 그 간자는 지속적으로 생각없이 뱉는 말로 전직원들을 골치아프게 만들었다.


사내정치가 도무지 사그러들지도 않고 잊을만하면 종종 대표이사의 말실수, 간자의 이간질

혹은 감정 상한 직원의 광역도발이 국지적으로 이어졌고

나는 이때부터는 '경청의 자세'가 내 정신건강과 업무에 대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음을 인정했다.

기존에 고인분들이 왜 노트북을 들고 들어와서 듣는척도 안하는지 이해가 됐다.


그리고 나는 몸이 아프고 나서야 이곳에서 내가 굉장히 스트레스받고 있다는걸 알게되었다.

초인적인 정신으로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지만 스트레스는 사라지질 않았다.

참 미련하기도 하지.


처음엔 회사가 회사다워지려면 필요한 것들은 몰라서 이런가보다 해서 열심히 피력했지만

위아래로 다 비틀려버린 사람들한테 지친 나는 모든 것을 내려봤다.

선의, 동정심, 이타심, 긍정적인 마인드, 동료의식 이런것들을 전부 버리기로 했다.

이것이 전편의 최소한의 인류애도 사라진 이유다.


회사마다 각자의 사내정치가 있겠지만

이곳이 스타트업이라 이런 독특한 경험을 하게 하는건지

멀쩡하던 사람들도 이렇게 변해버린건지는 모르겠다.

나와 함께 일했던 이곳멤버과 비슷한 연령대의 직원들은 이러지도 않았었고 오히려 정치를 혐오 했었다.

이런 사내정치가 절대로 요즘 세대의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스타트업이 겉모습만 보고 입사를 희망할 곳은 아니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수평조직이라

꼰대가 없어서

내가 원하는걸 해볼 수 있어서


이걸 뒤집어서 보면


의사결정이 수평적인건 아니라는것과 호칭만 수평이라는 것을

나이든 꼰대는 순한맛이지만 젊은 꼰대는 불닭매운맛이라는 것을

내가 아니라 대표이사가 원하는대로, 시행착오는 온전히 내몫이라는 것을


같이 고려해보기 바란다.


당장 잘하지 못해도 데이터 기반으로 프로덕트를 만들면 되지 않냐는 착각은 하지 않길 바란다.

스타트업의 장점과 현재의 트렌드는 그게 맞다.

하지만 그건 기반 인프라가 준비된 회사에서나 가능한거다.

소규모 스타트업은 빅데이터를 수집할만한 프레임워크 작업에 시간을 쓰지 않는다.

그럴만한 인력을 넉넉히 둘 형편도 안되고 경험도 없다.

펀딩을 받기 위해 그저 어떤 형상이라도 만들내기에 급급하다.

혹은 B2G처럼 수준이 어떻게 되었든 말든 기간 내 제출만 하면 그만이다.

이곳의 직원들은 1년후, 혹은 2년 후 그런것들을 포트폴리오로 제출하게 된다.

 

기사에서, 미디어에서 온갖 장점으로 도배되는 스타트업은 

이런 스타트업이 아닌 유니콘 스타트업임을 명심해라



지금의 IT붐을 이미 2n년전에 겪어본 사람의 시선에서 지금의 IT붐에서 파생된 스타트업붐이 이 마냥 반갑지는 않다. 코로나 특수가 사라지면 거품이 빠질것이라 예측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미 전례가 있기도 하다.

그때도 개나소나 IT업계 뛰어들어 하루에도 몇십개씩 스타트업이 생겨났었다.

거품회사는 거름망에 걸러져 살아남을 기업만 살아 남았다.

그 기업들의 숫자만큼 같은 업계에 발을 들였던 수많은 동료들도 거름망에 걸러졌다.

역대급 급여 미지급 사태도 있었다. 고용노동법이 약간이라도 개선된건 그때 이후였다.


IT업계에서 일하다보니 가끔은 Booo 앱을 보게 된다.

개발자, 스타트업 열풍의 근원지가 여기였구나싶다.

게시판은 연봉자랑, 회사타이틀 자랑으로 바쁘다.

철밥통 공무원도 개발자로 전향을 물어볼정도다.

그들이 인생에서 이룬 가장 큰 성취는 그곳에 입사한거다. 자랑하고 또 자랑하고싶을거다.

그들 모두가 거름망에 살아남진 않을거라는걸 우린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게임붐일때 업계에 있었던 나도 어릴때는 평생 그 연봉을 받는줄 알았다.

반짝 빛나다 업계에서 사라진 사람들도 많았다.

결국은 살아남은 사람이 강한거다.  


그러니 Booo 앱을 매일 같이 들여다보며 개발자 연봉 부럽다고 현생을 비관하지 않기를

눈먼 스타트업 찬양에 덥썩 미끼를 물지 않길 바란다.

좋은 곳인지, 호칭만 수평인건지, 업종이 비전이 있는곳인지 꼼꼼히 알아보길 바란다.




사내정치편은 여기서 마무리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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