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좌충우돌 스타트업 경험기는 대부분 작년에 작성했었다.
누군가에게 보여 줄 생각도 없었고 피토하는 심정으로 누구에게도 토로하지 못할 고충을 꾸역꾸역 일기처럼 써나갔던거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 다시 읽고 회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스타트업이 다 이런건가? 이게 전부인가?
그게 아니라는걸 말하고 싶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더 겸손했어야 했다.
좀 더 이들의 눈높이에서 생각했어야 했다.
내가 주니어였을 시절에 어떤했던가?
아무것도 몰랐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고 그 이상의 일이 주어지면 성공여부를 계산하기보다 호기심이 먼저였고 겁없이 시도했었다.
그때는 할 수 있는 방법에서 최선을 다했을뿐 그게 성공적이지도 기준을 통과할 수준도 아니었다.
하지만 열심히 했던 나의 기분과 시간은 소중했다. 그리고 그것이 우선이었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음에도 나에겐 너무 까마득한 과거였기에 거기까지 생각이 도달하지 못했다.
사내정치, 원년멤버 이슈도 사람이 사는곳 어디에나 존재하는 일들이었다.
사람이 집단을 이루면 이루고자 하는 욕망이 뒤엉켜 수반되는 일들인데
나도 모르게 스타트업의 순수성을 좀 더 기대했던거다.
처음에 열정 가득 했을 그들의 모습을,
겁없이 도전하며 방법을 찾아가려 했던 그들을,
수많은 잣대를 가진 경력자의 시선으로 보려했던건 내가 아닐까 라는 반성을 해본다.
열정, 꿈, 아이디어가 있어도 자금이 없어 그만둘 수 밖에 없는 수많은 대표이사들이 있었다.
한 두번의 펀딩이 있어도 다음 자금줄을 못가져와 프로젝트를 그만둬야 했던 회사들도 많다.
이 회사의 대표이사는 가장 충실해야할 일을 묵묵히 해내고 있음을 나는 더 존중했어야했다.
그리고 모두의 비난속에 힘겨워하고 이 고난을 나누고 함께 해줄 사람이 누구보다 필요했음을,
힘이 되주려고 합류했음을 상기했다.
갈등이 최고조에 달할 무렵이 이직시즌이었다. 오퍼가 들어오며 나의 갈등도 최고조에 달했었다.
이직이냐, 피벗을 함께 하느냐는 선택의 기로에서 나는 두 달을 고민했다.
그리고 작년에 써뒀던 글들을 회고하고 현재의 나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봤다.
이 과정이 쉽지 않았기에 나는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했다. 나는 책임질 가족도 있었고
그리고 결정했다.
나는 투덜이거 되거나 상황에 매몰되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리더로 살아온 날이 더 많고, 리더십이 필요 없는 일에는 흥미가 없다.
그리고 내게 잘 주어지지 않던 시행착오의 기회가 있음을 깨달았다.
무모한 시행착오가 아닌 객관적인 지표가 있는 시행착오라면 반가운일이다.
인간의 잘못된 의사결정이 불러오는 시행착오가 얼마나 지긋지긋했던가
그래서 이 피벗을 함께 하기로 했다.
물론 이전 회사의 업종으로 돌아간가면 경력도 인정받고 적당한 대우에 익숙한 일을 할 수 있지만
내가 그 익숙한 일에 흥미가 없어서 뛰쳐나온것 아니겠는가?
지금의 어려움과 답답함이 온전히 타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한편으로는 내 시선에서 비롯된 일임을 인정했다.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기회, 실패를 할 수 있는 기회
이것은 나에게 간절히 필요한 경험이고 과정이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 사람의 생각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이건 나 역시도 마찬가지고, 그 어떤 대단한 지식인들도 별반 다르지 않을것이다.
내가 인생에서 학습한 중요한 한 가지는,
생각을 바꾸기는 쉽지 않지만 시선을 바꾸면 생각도 시나브로 바뀐다는 것이다.
하루 아침에 되지도 않고, 쉽지도 않지만
실패하면서도 계속 시도하면 바뀌긴 하더라.
내 시선을 바꾸기로 결정했고 생각도 바뀌고 있다.
나는 피벗을 위해 시선을 바꾸고 성공적인 길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최선을 다해 찾기로 했다.
물론 멍청하게 가고 싶지는 않다.
나는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도전은 쉽지 않다. 생계는 도전정신보다 중요하긴 하다
도전하다 막히면 쉽게 포기한다. 그것을 선택한 나의 능지를 탓하고, 남을 탓하고
과거에 많은 날들을 포기했었다. 도박이다, 하지마라, 가지마라 업계 선배들의 말이었다.
쉽게 포기하면 남는게 없다. 과정도, 경험도 모른다.
나는 이 도전의 끝맺음을 해보고 싶어서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조급해하면 자꾸만 빠른 판단, 효율적인 판단을 하려고 한다.
짧게는 도움이 됐어도 인생 길게 보면 도움이 안되더라.
시선을 바꾸면,
이들도 잘하고 싶었지만 실패에 대한 경험도 없었던 사람들임을,
실패한 후의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도 몰랐던 사람들이 보인다.
내가 속했던 조직들은 끊임없이 인간적인 감정을 거세하라고 말했다.
내가 시니어가 되면서 이 방법은 제법 편리했다.
시선을 바꾸면 이곳은 아직은 그 감정이 소중히, 가치있게 여겨지는 곳이다.
나는 조직에서 감정이 존중받고 배려되는 환경이 낯설었던 나의 시선을 바꿔야 한다.
조직이 성숙해가는 과정에서 구성원은 사람이 아닌 부품화된다.
인간은 감정을 배제할 수 없고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조직의 프레임에 맞는 감정을 절제한 페르소나를 가졌을뿐,
그것이 내 자아는 아니었으니까
감정은 독이 되기도 하지만 때론 강력한 동기가 되기도 한다.
시선을 바꾸면,
작은 성공도 큰 기쁨이 될 수 있는 감정을 느낄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점을,
그리고 실패에 좌절만 하지 않고 다시 도전을 시도하는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을,
그리고 이 과정에서 누군가를 버리지 않고 함께 성장하려는 배려를,
그것 또한 리더십이었음을 볼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에서 나는 냉소적인 시선보다 칭찬과 따뜻한 한 마디가 몹시 필요했을
그들의 입장에서 함께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스타트업 경험기는 마무리하려고 한다.
나도 여기에 성공적인 스타트업 경험담을 쓰고 싶다.
절망편으로 끝나는건 뒤가 찜찜하니까 열린 결말로 마무리 하겠다.
성공적인 경험을 하게 되면 시즌2를 쓸 수도 있다.
그렇게 되길 바라고 있지만 아직은 모르겠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