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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푸는사람 Apr 12. 2022

[스타트업 경험기] 2편 이곳은 회의지옥인가?

이제 나는 NAS에서 업무파악하는 것은 일단 포기했다.

문서화 작업을 나름 진행했으나 쓴 사람만 읽기 좋은 구조였지 협업을 위한 양식은 아니었다. 

파일들은 버전관리도 안되어 있었고 동일한 파일들이 문장 몇개만 바뀌어서 수십개가 한 폴더에 존재 하는등

폴더를 열면 파일들이 소리를 지르는 느낌이었달까?


산출물 위주로 업무를 파악해나가는데 

콘텐츠를 다루는 업무라 정량적인 시간소모가 클 수 밖에 없었다.

잘 정리된 문서라면 1시간 내 7~10개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고 치면 

산출물 위주로 파악하려면 1시간 내 2~3편 정도만 진행할 수 있었다.


극도의 효율충인 나에겐 고문 그 자체였지만 이것또한 이곳의 조직문화려니 하고 

잠깐 나태해질뻔한 존중을 다시 상기했다.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한다고 했을때 지인들이 날 더 걱정했었다.

"젊꼰 시집살이가 더 무서운데 괜찮겠어?" 

라는 말을 들었던터라 캐릭터 파악에 신중을 기했었다.


그런데 이들은 정말 좋은 사람들은 맞았다. 

업무 성과는 논외로 하고 사람들은 대체로 예의바르고 

오히려 짬바 단단한 시니어급이 온다고 하니 기다렸던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대표의 우려와 달리 면담을 통해 알아간 이들은 배움과 경험에 목말라 있었다.

본인들이 만들어내는것이 제대로 되고 있는건지 판단해줄 경험자가 필요했었고

문제에 봉착할때마다 스스로도 이게 맞는건지 혼란스러워하고 의사결정을 하지 못했었다고 한다.

관리자의 필요성을 여실히 느끼고 있었고 그 갈증도 매우컸다.

여기에서 경영진과 직원들의 간극을 느낄 수 있었다.

정작 직원들은 관리를 원하고 회사는 자유라는 이름으로 방치하고 있었다.


출근 이후 나는 매일 회의지옥이 시달렸다. 아니지 모두가 회의지옥에 시달리고 있었다.

어차피 전 직장에서도 나는 회의에 소모되는 시간이 많았어서 어느정도는 익숙한데

이곳의 회의는 전혀 다른 방식이었다.

공식적으로 매일 1회 오전 회의가 있으나 간단한 업무공유 수준이 아닌

일단 시작하면 1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였고 발언자는 대부분 1인이었다.

이런 회의를 주5회 반복하고 수시로 각종 미팅을 소집했으나 

의사결정을 한다거나 중요한 안건에 관한 회의는 없었다.

첫출근 이후 2개월간 회의시간을 통계냈더니 일평균 나는 5시간의 회의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니.. 일은 언제해요?????


고민할것도 없는 것들을 회의 한다거나, 결론 없는 회의가 매일 반복되었다.

자유롭게 의견이 오고가는 회의가 아닌 사내하청을 위한 회의였다.

안타까운것은 이들은 사내하청에 대한 개념이 없었기에

회의지옥에 시달리며 고통스러워 하지만 본인들의 불쾌감의 원인을 찾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회의는 툭하면 점심시간을 침범했고 심한 날은 점심시간이 한 시간 지나서야 종료되곤 했다.

입이 간질거렸다. 그냥 좀 일찍 출근해주시면 안되겠냐고

회의가 밥시간을 초과하는 이유는 경영자가 늦게 출근하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하나는 인정해야겠다. 경영자는 자유를 스스로 실천하고 있다는 것?


회사에서 집까지 10분도 안걸리는데 왜 이렇게 늦게 출근하는건지 ㅠㅠ 

그리고 밤늦게 슬렉 메세지 보내는것도 좀 안하면 안되겠냐고 

누가봐도 방금 일어나서 눈은 퉁퉁 부어있고 머리는 축축하게 말리지도 않고 왔는데

일하다 왔다는 둥, 미팅하다 왔다는 둥 말도 안되는 거짓말도 몸소 실천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 이들의 '문화'를 '존중' 해야하니까 조용히 있었다.

이것이 진짜 이들의 문화일수도 있으니까


여튼 매일 오전 크게 의미 없는 업무체크 회의를 반복하는데 

모두 다 억지로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참여하는게 눈에 보였고

소통방식은 수직적이었고 일방적이었다. 

이들이 침묵하는 이유를 차츰 깨달아갔다.


이 회의 지옥이 고통스러운 가장 큰 원인은 파악해보니 빈번한 요구변경이었다.

몇일 전 하기로 결정했던 업무를 진행중인데 그 업무의 방향을 갑자기 바꿔버린다던지

1~3까지의 일을 하기로 했는데 1~3을 A~C로 바꾸고 

갑자기 4~5의 덧붙이고 추가일정은 고려하지 않는다던지

갑을관계에서 갑사도 요즘은 잘 하지 않는 불합리한 일들이 빈번히 이뤄지고 있었다.

이미 직원과 경영자는 물과 기름처럼 전혀 섞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일은 수시로 발생했다. 

아마 내가 입사하기 전부터 존재했을 이 회의지옥은 앞으로 어떻게 변질될 것인가?


혼돈의 카오스!


입사 첫 날부터 애자일 선서문 같은 낯부끄러운짓도 시켰으면서 

90년대 방식으로 일하는 스타트업이라니... 나는 이때부터 생각이 많아졌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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