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최성각 선생님을 뵙고 오다

툇골에서의 찰나

by 이지안의 자유비행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 진학하고 느낀 것 중 하나는, 내가 정말 인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점이다.

흔히 인복이 좋다는 건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게 아니라 이상한 사람을 안 만나는 것이라고들 한다.

나는 대학원에 진학하고 좋은 사람을 정말 많이 만났다.

물론 이상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소중한 인연이 많다.

특히 정말 존경할 수 있는 멋진 선배들을 많이 만났다는 게 행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선배가 이번 학기(2025-02)에 <환경인문학>을 주제로 수업을 여셨다.

환경에 관해 능동적으로 생각해보고, 더 나은 환경/생태를 위해 일하시는 분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강의계획서를 보고 내가 매우 기대하던 시간이 있었는데, 바로 소설가 최성각 선생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였다.

나는 최성각 선생님의 <약사여래는 오지 않는다>로 석사학위 논문을 작성하였다.


잠시 석사학위논문에 관해 설명하자면, 제목은 <생태폭력의 서사적 재현 연구>로 이동하의 <장난감 도시>,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최성각의 <약사여래는 오지 않는다>를 생태폭력의 관점에서 조명함으로써, 생태폭력이 인간의 신체 감각에서 공동체와 생태계 파괴라는 구조적 폭력으로 확산됨을 밝히고, 생태폭력이 인물의 '생태적 자기(ecological self)'의 손상을 통해 인간과 인간, 인간과 비인간, 인간과 생태 간의 관계적 조건까지 파괴하는 비가시적인 폭력임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1980년대 발표된 소설은 다양한 폭력의 관점에서 연구되었으나, 생태폭력의 관점에서 조명된 연구가 미진하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따라서 나는 선행연구의 도움을 받되 조금, 아주 조금 확장하여 생태폭력의 관점으로 1980년대 소설을 읽고자 하였다.


선배는 이미 최성각 선생님의 <약사여래는 오지 않는다>로 한 편의 논문을 발표하였고, 최성각 선생님의 등단작이자 첫 번째 소설집 제목인 <잠자는 불>을 연구한 바 있었다.

나는 그 논문을 굉장히 인상적으로 읽었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기회가 된다면 추후에 계속..)


처음 석사학위 논문을 구성할 때에는 최성각 선생님의 <잠자는 불>과 <밤의 소리>를 대상 텍스트로 하고 싶었다.

그러나 논문을 통해 생태폭력에, 더불어 생태문제와 관련한 과거-현재-미래의 서사적 대응을 이야기하고 싶었고, 생태폭력으로 인한 미래의 위험에 관해 이야기 하기 좋은 작품으로 <약사여래는 오지 않는다>가 가장 적합한 텍스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자는 불>과 <밤의 소리>는 기회가 된다면 꼭 환경위기와 집단 히스테리의 연관성을 주제로 소논문으로 발표하고 싶다.


아무튼.. 이야기가 길었다.

선배의 수업을 수강한 결과 필드워크로 춘천의 툇골에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최성각 선생님이 서울을 방문하셔서, 우리 전공생들 뿐만 아니라 내가 속해있는 신촌 환경 연구 네트워크 선생님들에게도 최성각 선생님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분들께 최성각 선생님을 소개하고 문학이 생태문제/환경문제를 이야기함에 있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다른 전공 선생님들께) 알리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상황이 따라주지 않았고 결국은 우리가 직접 춘천을 방문하게 되었다.


용산에서 8시 30분 경 기차를 타고 춘천으로 향했다.

기차에서 최성각 선생님께 드릴 편지를 썼고 심하게 멀미를 했다.

춘천에 도착하자 서울보다 춥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선배의 전화를 받고 따뜻한 옷으로 갈아입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춘천은 서울보다 춥다는 선배의 다정한 전화가 너무나도 감사했다.)


택시를 타고 툇골로 향했다.

'불편한 오두막'을 찾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고, 그동안 많이 긴장되었다.

최성각 선생님을 직접 뵌다는 게 많이 떨렸고 긴장됐고 어딘가 모르게 내 진심을 시험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너무 좋은 경험이었다.

최성각 선생님은 내가 가지고 간 당신의 첫 책을 너무 좋아하셨고, 사인해 주셨고, 공부를 계속하라고 말씀해 주셨다.

믿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또 하나.

공부를 하는 삶은 정말 힘든 삶이라고 말씀하셨다.

공부를 하며 경험하는 고난은 쉽지 않겠지만, 나는 공부를 계속했으면 좋겠다고도 말씀하셨다.


당신 덕분에 알게 된 레베카 솔닛의 책을 읽었음에 놀라신 것 같았고,

내가 당신의 글을, 심지어는 신문에 실린 단평 같은 것까지도 모두 찾아 읽은 것에 감동하신 것 같았다.

그리고 선생님께서는 "죽기 전에 데미안 같은 글을 쓰고 싶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너무나도 놀랐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창작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으심에 놀랐고, 또 감사했다.

소설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선생님은 언젠가 지면을 통해 "동료들이 투쟁하였으나 나는 가만히 앉아 글 밖에 쓰지 않았음에 부끄러움을 느꼈다"라고 고백하신 적이 있다.

하지만 선생님은 여전히 소설을 생각하고 계셨다.

"단 한 순간도 소설을 생각하지 않고 보낸 날이 없다"라고 고백하신 것은 아직 유효했다.


최성각 선생님을 뵐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신 선배님께 감사하고, 또 지도교수님께도 감사할 수 있었던 하루였다.

내가 그분의 지도제자가 아니었다면 이러한 귀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을까?

지도교수님께 배운 것은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결국은 내가 문학을 사랑하는 것을 넘어 문학의 사회적이고 윤리적인 기능을 깊이 고민할 수 있도록 가르쳐주셨다는 것에 가장 감사하다.


어디에서든 문학의 기능을 생각한다.

내가 어린 나이였을 때에는 문학의 기능이 필요치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개인의 생각은 계속 변화한다.

특히 어떠한 주제에 집요히 천착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나는 20대 내내 문학에 깊이 천착하였다.

누군가는 짧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문학은 단순한 유희이고 재미만을 위한 문학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과거와 지금의 생각이 달라지게 된 데에는 지도교수님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최성각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툇골에서 나오자마자 꿈에서 깨어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