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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cemaker Oct 30. 2021

고양이의 당뇨병

해외에서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고양이를 두 마리 키운다. 입양된 길고양이 테리와, 필리핀에서 브리더로부터 돈 주고 데려온 샴고양이 허쉬는, 나와 9년째 함께 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내 선택은 아니다.


  나는 동물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니다. 무서워하는 사람도 아니다. 딱히 엄청 좋아하지도 않지만, 동물과 함께 사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동물로부터 큰 위로를 받지도 않는다. 솔직히 출산 후에는 동물에 대한 관심이 더 떨어졌다.


  테리 허쉬는 남편이 입양한 고양이들이다. 결혼해서 남편과 함께 살기 시작했을 때, 남편은 이미 그들과 동거 중이었다. 특히 기 센 테리는 내가 지보다 나중에 왔기 때문에,

낮은 서열이라 판단하여, 엄청난 갑질을 했다. 필리핀으로 시집와서, 시어머니 시집살이는 면했지만, 고양이 시집살이를 경험한 사람이 바로 나다.



  그럭저럭 공생관계를 유지하던 나와 고양이들은, 팬더믹으로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IRRI에서는 팬더믹이 선포된 이후, 모든 외국인 스태프들에게 자국으로 돌아가 재택근무를

할 것을 권했다. 그 이유는, 대응을 잘하지 못한 필리핀의 의료시스템에 있다. 전염병으로 인해 병원이 포화상태라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를 위험요소로 판단한 연구소 측에서, 어차피 현재 IRRI를 열 수가 없어 재택근무를 할 수밖에 없으니, 비교적 안전한 자국에서 일하길 권한 것이다.


   실제로 많은 외국인들이(인도와 중국 제외) 본국으로 돌아갔다. 우리만 갈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고양이들 때문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던 IRRI 스탭 하우징의 출입이 매우 엄격하게 제한되어서, 아무도 고양이를 돌보러 집에 들어올 수가 없었다. 데리고 한국에 가려했지만 절차가 매우 복잡했다. 수도 마닐라에서 연구소가 두 시간가량 떨어져 있기 때문에, 모든 서류 작업에서 열등한 소도시 주민인 우리는, 오랜 시간에 걸쳐 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 기간이 몇 개월에서 일 년 가까이 길어졌다.


  고양이를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데려가기 위해 필수적으로 광견병 예방 접종과, 접종에 따른 항체 형성을 서류로서 증명해야 한다. 문제는, 항체의 유무를 검사할 기술이 필리핀의 수의학계에 존재하지 않았다. 고양이들의 혈액 샘플을 호주로 보내 확인해야 했다. 그 시간만 한 달이 넘었고, 비용만 백만 원 이상이 들었다.


  모든 절차와 서류를 준비한 후에, 고양이들을 데리고 한국 입국을   있었다. 국을 하면서, 고양이들도 비행기 값을 치러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캐리어당 미화 225달러를 지불해야 했다.  고양이를  핸드 케리로 데리고 타길 바랐던 남편 때문에,  고양이의 티켓팅 비용이 450달러가 들어갔다.



  수많은 짐과, 고양이 두 마리를 데리고 한국에 오는 여정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말해 무엇하랴. 그나마 그동안 모아두었던 마일리지를 털어 프레스티지로 좌석을 업그레이드하여, 덜 힘들었다. 비즈니스석에는 반려동물 한 마리만 들어갈 수 있다고 하여, 남편은 테리를 데리고 이코노미석으로 나랑 은찬은 허쉬와 함께 프레스티지 클래스로 갔다. (이것으로 남편에 대한 화가 조금 누그러졌다.)

 

   고양이를 데리고 한국에 간다는 말에, 필리핀의 지인들은 격려와 칭찬을 해줬다. 어떤 사람들은 반려동물을 버리고 간다고 하면서. 들어가는 비용과 절차를 생각하면, 그 어떤 사람들의 결정을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사람도 지키기 힘든 위기상황에서는 말이다. 몇 달에 걸쳐 절차를 밟아 데리고 오기만 하면 될 줄 알았건만, 한국으로 들어오니 또 다른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집 길고양이 출신 테리는, 노묘다. 이제 열두 살이 넘었다. 테리는 일평생 식탐이 강했다. 언제나 많이 먹었기 때문에 원체 작은 필리핀 고양이의 평균 사이즈를 넘어선 지 오래다. 매일 좋은 음식으로 양껏 먹여주건만, 여전히 하루에도 몇 번씩 밥 달라고 조른다. 다른 말은 못 알아들어도, “배고파?”와 “참치캔”이라는 말은 철석같이 알아듣고 심지어 대답까지 한다.


  한국에 온 직후, 테리의 음수량이 평소보다 늘었고 식탐은 몇 배나 더 늘었다. 원래 수의사가 꿈이었다는 남편의 세심한 관찰 덕에 테리의 증상을 더 빨리 파악할 수 있었고, 동네 병원에서 당뇨 진단을 받은 후에 고양이 당뇨 전문 병원으로 옮길 수 있었다. 테리의 체질에 맞는 당뇨약을 찾기 위해 약을 바꿔가며 당수치를 측정해야 했고, 일주일 넘는 입원을 해야 했다. 병원비만 150만 원 이상이 들었다. ( 당뇨 주사기와 약 등의 가격은 제외한 금액이다.)




  이 금액이 달갑지만은 않다. 동물병원비가 필리핀보다 한국에서 훨씬 비싸다. 그러나, 처음부터 데려오지 않고 필리핀의 누군가에게 맡기고 왔다면, 한국보다 훨씬 높은 강도의 락다운을 하고 있는 중인 필리핀에서 발병을 했다면, 우리 테리는 목숨을 보전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가족의 생명을 살릴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감사한 마음이 든다.


  팬더믹 이후, 말도 안 되게 고양이 때문에, 상황이 더 위험한 타국에 발이 묶였던 상황에서는, 원망을 많이 했다. 가족들과 친구들이 모두 너무 보고 싶었고 예측할 수 없는 필리핀에 있다는 사실이 두렵기도 했다. 이제 다 지나고 보니, 그래도 테리와 허쉬 둘을 데려올 수 있어서 다행이다.


  생명의 무게는 참으로 무겁고, 그래서 그에 대한 책임도 무겁다. 그 사실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반려동물을 통해 미리 깨닫게 되었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필리핀의 고양이들이 평생 경험해보지 못한, 대한민국의 겨울도 건강하게 잘 지낼 수 있기를 바라본다. 우리 모든 가족이, 함께라는 따뜻함으로 나머지 한국 생활을 잘 지낼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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