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한 아이를 차에 태워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다. 아파트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동네 친구 두 명이 주차장에 서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평소 같으면 내 차를 보고 반갑게 손인사를 나눌 텐데 오늘은 날 보고 흠칫 놀란 듯하다. 그냥 기분이겠지. 나는 차를 멈추고 그녀들을 향해 창문을 내린다.
“집에 안 들어가고 뭐 해?”
“으응,, 그냥 학원 얘기 하고 있었어.”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라 나도 인사를 끝내고 주차를 하기 위해 이동했다. 백미러로 그녀들을 쳐다보았다. 그들도 내 차를 바라보면서 속닥거린다. 찜찜한 기분이 가득한 채 엘리베이터를 타고 먼저 집으로 올라왔다.
무슨 이야기 중 이었을까?
그들 중 한 명인 민희는 아이들끼리 친구라 친해졌다. 가족모임으로 여행도 함께 간 사이다. 또 한 명은 같은 라인에 사는 예정이 언니로 우리 동 엄마들 모임의 멤버다. 그 둘은 내가 소개해줘서 알게 된 사이다. 둘이 따로 연락을 하는 사이인지는 모르겠다. 민희가 예정이 언니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둘의 대화가 끝나면 민희가 내게 전화하지 않을까?’ 기다려 보기로 했다. 밀린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돌렸는데도 아직 연락이 없다. ‘민희에게 같이 점심이나 먹자고 전화해 볼까? ‘ 아니다. 점심 약속을 잡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오늘따라 동 모임 단톡 방도 조용하다. 매일 카톡 알림이 울려 가족들에게 눈초리를 받았는데 오늘은 적막의 화살이 모두 나를 향하고 있는 듯하다.
‘내가 모 실수한 게 있나? ‘
지난 카톡 내용을 훑어보았다. 단톡방의 특성상 가끔 예민해질 때도 있고 상대방의 말을 자르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렇게 툭툭 생각 없이 던진 말들이 구설수에 오른 걸까? 예정이 언니는 이 단톡방 멤버 중 나와 가장 많이 부딪히는 사람이다.
민희에게는 조금 마음 가는 일이 있다. 남매를 키우는 나와 자매를 키우는 민희는 아이들 놀이를 바라보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 어느 날 놀이터에서 어떤 남자아이가 민희 아이를 밀어서 넘어지는 일이 있었다. 민희는 그 친구 엄마한테 가서 사과를 받고 싶어 했는데, 내가 동조해주지 못했다. 그게 좀 서운한 눈치였다. 이런 비슷한 일이 몇 번 반복되었다. 우리 사이에 미세한 틈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본 것이다. 그것도 나를 견제하는 듯한 눈빛으로. 내가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진짜 애들 학원 정보를 얻고 있던 중일 수도 있다. 그러나 느낌이 좋지 않다. 불편하다. 아주 많이 불편하다. 여중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다. 나이를 먹어도 마음까지 성장하는 건 아니었다. 어른이 되면 달라질 줄 알았다. 학교가 아파트로 장소만 바뀌었을 뿐 나이를 스무 살 이상 더 먹었건만 똑같다. 중학생 시절 나를 신경 쓰게 한 친구들이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을 뿐 똑같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마음을 쓰고 있다.
다시 의미 없는 대화를 이어갈 단톡방에서, 혹은 민희와의 만남에서 내가 예전과 같아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렇게 벌어지는 틈으로 곤두박질치지 않게 그들에게 예의를 다하며 나를 보호해야겠다.
<이 이야기는 픽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