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진아! 우리 야자 째고 몰래 ‘승태네’ 갔다 올까?”
“후훗. 그럴까? 지금 갔다 오면 선생님께 안 들킬지도 몰라.”
그렇게 고등학교 담장 아래 동그랗게 뚫린 개구멍을 통해 학교를 빠져나오면 저녁 바람이 시원하게 우리를 반겨줬었다. 승태네는 학교 앞 시장 안에 있는 분식집이다. 이곳 떡볶이는 간이 세지 않아 자극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먹고 난 후에도 속이 부대끼지 않았다. 굳이 뭘 먹지 않아도 대입이라는 긴장감에 속이 부글거리던 때였다. 밤늦게까지 학교에서 야간 자율학습을 하던 시절이라 점심, 저녁 도시락을 두 개씩 싸 들고 다녔다. 매일 먹는 도시락이 지겹거나 혹은 저녁시간이 되기 전에 이미 도시락을 다 까먹은 후면 종종 분식집으로 뛰어갔다. 하루 종일 학교에 갇혀 있던 우리에게 승태네는 일탈이자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선생님들도 그런 우리에게 숨구멍을 뚫어놓듯, 말로는 개구멍으로 다니지 말라고 하면서도 구멍을 막지 않았다.
그렇게 개구멍을 넘나들던 고등학생은 졸업 후 대학을 갔고, 취직을 했고, 결혼을 했고, 애를 낳고 키웠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여러 번 이사했다. 다녔던 고등학교는 더 이상 나의 생활 터전이 아니다. 그런데 정말 오랜만에 학교 근처에 갈 일이 생겼다. 학교와 함께 ‘승태네’가 아련하게 떠올랐다. ‘아직도 떡볶이 집이 남아 있을까? 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나 되었더라.’ 셈을 하다가 내 나이에 흠칫 놀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마음은 이미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이 동네를 다시 찾은 건 대학생 이후로 처음이었다.
기사를 통해 이 일대가 재건축이 한창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원래 있던 주공아파트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고개를 한껏 젖혀야 꼭대기가 보이는 높은 회색 건물의 아파트들이 숲처럼 빼곡했다. 어지러웠다. 완전히 새로운 모습의 도시에서 옛 풍경을 찾아내기 위해 애쓰며 먼저 학교가 있던 방향을 향해 걸었다. 저 멀리 공사 중인 건물이 있는 학교 운동장이 보였다. 원래 학교 옆에 초등학교가 하나 있었는데 그게 여긴가? 가물가물했다. 가까이 가보았더니 울타리에 학교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였다. 알고 보니 본관 건물 옆으로 새로운 건물이 하나 더 증축되어 있었다. 그래서 영 낯설었던 것이다. 밖에서 학교 안을 기웃거리고 있는데 학생들이 공사 중인 건물에서 우르르 나왔다. 점심시간에 줄지어 본관으로 들어가는 걸로 보아 이 건물은 급식실인 모양이다. ‘라떼는’ 급식을 먹지 않아서 필요 없었던 곳. ‘급식실은 어떤 모습일까? 이 아이들은 급식이 질릴 때면 어디로 탈출할까? ‘라는 생각을 하며 학교를 크게 한 바퀴 돌아보았다. 그런데 본관 건물 전체에도 공사용 가림막이 쳐 있었다. 회색 가림막 위에는 현수막이 하나 걸려있었는데
그곳엔 ‘노후화로 인한 외벽 공사 중’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아! 이 새로운 건물은 나에게만 새로웠구나.
열일곱, 열여덟 살의 고등학생들보다 더 나이가 많은 건물이겠다. ‘
햇빛도 들어올 수 없게 꽉 막힌 가림막 안에서 학생들이 어떻게 공부를 하고 있는 건지 안타까웠다. 이 가림막이 안타까웠던 또 다른 이유도 있었는데 바로 건물을 빈틈없이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흐릿한 학교 모습에 대한 기억을 또렷하게 만들고 싶었는데 전혀 떠올릴 수 없었다. 그래도 주변 아파트들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보다 낫다고 위로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기억을 더듬으며 분식집이 있던 시장을 찾아갔다. 시장 왼편에도 재건축한 아파트가 들어서 있었고 오른편도 역시 한창 아파트 공사 중이었다. 이 시장은 높은 아파트 사이에 애처롭게 낀 형국으로 남아 있었는데 설상가상 문을 닫은 점포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분식집도 사라졌을까? 반쯤 포기하며 시장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갔다. 멀리 ‘승태네’ 상호가 적힌 간판이 보였다. 그런데 다른 가게들과 달리 문이 닫혀 있어 장사를 하고 있는 건지 도통 알 수 없었다. 가게 앞으로 가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문을 열어 보았다. 미닫이 문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열렸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때 철판 위에 조리된 떡볶이가 눈에 들어왔다. 반가웠다. 어딘가에 계실 사장님을 찾느라 문 앞에 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내 앞치마를 멘 할머니가 바삐 걸어왔다.
”어서 들어가요. “
자리에 앉아 메뉴를 살펴보았다. ‘떡볶이, 어묵, 튀김, 순대, 순대 볶음’ 창문에 붙어 있는 메뉴는 이것보다 더 많았지만 막상 판매하고 있는 메뉴는 단출했다. 조리대를 쓱 둘러보니 준비된 어묵과 튀김의 양도 고등학생 대여섯 명이 방문하면 한 번에 다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적었다. 기껏 해야 7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좁은 실내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포장 손님이 있을 텐데 의아했다. 먼저 떡볶이와 어묵을 주문했다. 떡볶이가 그릇에 담겨 나오자마자 떡볶이를 하나 찍어 얼른 입에 넣었다.
‘그래! 이 맛이었지. ‘
간이 세지 않고 심심한 맛 그대로였다. 먹는 내내 분식집에는 내 쪽을 바라보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장님 한 분과 ,그런 사장님이 부담스러워 차라리 말을 걸어볼까 고민하는 나뿐이었다. ‘점심시간인데 왜 이렇게 손님이 없지.’ 떡볶이를 하나 더 찍어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창문엔 들어올 때 미처 보지 못했던 글귀가 붙어 있었다.
‘추억의 맛집‘
추억을 찾아온 나에게 건네는 말 같아 입가에 슬며시 웃음이 번졌다.
식사를 마친 후 사장님께 떡볶이 1인분을 포장해 달라고 말했다.
“사무실에서 드실 건가요?”
“아니요. 집에 가서 애들에게 맛 보게 해주려고요. 실은 제가 여기 고등학교를 나왔어요. 학교 다닐 때 자주 오던 곳이라 계속 생각이 났거든요.. 정말 오랜만에 와 봤는데 진짜 ’ 추억의 맛 ‘그대로네요. 여기 찾아오면서 사라졌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이렇게 계속 장사하고 계시니 감사해요.”
나는 기다렸다는 듯 지난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았다. 그러자 사장님도 반가워하시며 옛날 학생들이 종종 찾아온다고 하셨다. 곧이어 재건축이 완료되면 이 시장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셨다.
“요새 학생들은 떡볶이도 안 먹어요. 달지 않으니… 더 자극적인 음식을 찾지. 이렇게 옛날 생각하며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어서 버틸 때까지 버텨보려고요. “
목소리에 고단함이 묻어났다. 사장님께 어떤 응원의 말을 해드려야 할지 몰랐다. 그저 추억을 맛볼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오늘 느꼈던 감정을 전달하는데 그쳤다. 그리곤 가게를 나왔다. 그 시절 고등학생들로 북적였던 가게를 회상하며 밖으로 나오니 눈앞에 보이는 신축 아파트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전부 사라지고 새롭게 탈바꿈하는 이곳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가게는 마치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타임머신 같았다. 그렇게 과거 여행을 마친 후 기념품으로 산 3천 원짜리 추억 한 봉지를 내려다보았다. 아이들에게 나눠줄 생각에 설렜다. 검정 비닐봉지 안에 담긴 추억을 고등학생인양 발랄하게 대롱대롱 흔들며 걸었다.
*등장한 이름과 상호는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