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태어나고 성경처럼 신봉하며 책에 밑줄 쳐가며 읽던 육아서가 있었다. 책 육아의 대모 격인 ' 하은맘'의 책이었다. 한창 책으로 육아를 한다는 뜻의 ’ 책 육아‘가 유행하던 시기였다. 그녀를 따라 집안 곳곳에 책을 들였다. 책이 발에 차일 정도로 넘치게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인형놀이를 하다가도 잠을 자기 전에도 늘 책을 읽어 주었다. 이렇게 읽어 주다간 성대결절이 생기면 어쩌나 걱정할 정도로 목을 쉬지 않았다. 아이도 책 듣기를 즐거워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입학 하도록 아이가 혼자서 책을 읽지 않았다. 엄마가 읽어주는 책만 보았던 것이다. 슬슬 걱정이 될 무렵, 때맞춰 하은맘의 신간이 출간되었다. 그곳엔 ‘초등학교에 입학 했는데, 아이가 아직도 책을 혼자 못 읽으면 접시물에 코 박아야 할 상태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원래 문체가 과격한 스타일이다. 당장 접시물에 코 박아야 할 나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기분이었다. 내 아이가 천재인 줄 오해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초등학생이 될 때까지 키워 보니 평균만 가도 행복한 거였다. 그런데 책에 드린 공에 비해 진도가 너무 늦었다. 평균은 돼야 할 텐데. 조급한 마음이 앞서갔다. 그때 도서관에서 ‘마법천자문’이라는 학습 만화책을 보게 되었다. 만화책은 처음이었다. 만화라 단숨에 아이의 관심을 끌었다. '마법 천자문'을 구매해 집에 쌓아 놓았다. 대신 만화책은 엄마가 읽어 주지 않겠다는 전제 조건을 걸었다. 모르는 단어가 많아 수없이 엄마를 부르며 뜻을 물어보았다. 혼자 읽는 건지 같이 읽는 건지 알 수 없는 시간이 흘러갔다. 그렇게 혼자 책을 읽기 시작했다.
40권이 넘는 마법 천자문을 다 읽고 나니 드디어 혼자 책 읽기를 즐겨하는 아이가 되었다. 이 고마운 책을 동생에게도 물려주기 위해 둘째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될 때까지 처분하지 않고 기다렸다. 그런데 문제는 둘째가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큰 애와 달리 책 보다 다른 것에 관심이 많았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되어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자리만 차지하던 책을 빼내 지인에게 보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둘째와 도서관에 갔는데 이 책이 보였다. 본 건 있어서 둘째가 아는 척 했다.
“엄마! 이 마법천자문 우리 집에 있던 거잖아.”
“그랬지. 네가 안 읽어서 얼마전에 다른 동생 줬잖아.”
책장에서 책을 정리할 때만 해도 본체만체하더니 내심 신경은 쓰고 있었나? 그렇게 책등만 보던 책에 뒤늦게 관심을 갖고 펼쳐서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혹시 둘째에게도 마법천자문의 마법이 일어날까? 하지만 책을 또 구매할 수는 없어 도서관에서 대출해 보기로 했다. 그 사이 책은 신간이 계속 출시되어 50권이 넘었다. 오늘도 도서관에서 마법천자문을 대출해 간다. 비록 어깨는 무겁지만 발걸음은 가볍다. 너에게 일어날 마법을 기대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