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이라고 굳게 믿었다. 어리석게도!
아이들은 재량휴업일이라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었다. 마침 남편도 연차를 냈다. 5월 1일 근로자의 날과 5월 3일 토요일 사이에 낀, 소위 '샌드위치 평일'이었다. 달력에 빨간색이 아닌 검은색으로 표시된 날이라 당연히 평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확신으로 롯데월드에 간 것이다. 그 주가 어린이날 연휴라는 사실은 롯데월드에 입장한 후에야 깨달았다. 처음엔 사람이 많다고 느꼈지만 크게 와닿지 않았다. 이 숫자를 보기 전까지!
처음 타려고 한 놀이기구는 후룸라이드였다. 그런데 후룸라이드 주변을 사람들이 포위하듯 둘러싸고 있었다. 대기줄이었다. '대체 어디까지 걸어가야 이 줄의 끝에 닿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구불구불 줄을 따라 걷고 있는데 눈앞에 이 숫자가 나타났다.
200분!
대기시간을 나타내는 표시였다. 처음엔 20분으로 보았다. '설마 줄이 이렇게 긴데 20분 만에 탈리가.' 정신을 가다듬고 숫자를 다시 보았다. 0이 하나 더 있었다. 200분? 마치 시계를 처음 배우는 초등학생 어린아이처럼 당황했다. 시간으로 환산을 마친 나는 말까지 더듬었다.
"얘들아. 이거 타려면 세…. 세 시간 이십 분 기다려야 한대."
"3시간 20분!?"
"지금이 12시인데 그럼 몇 시에 탈 수 있는 거야?"
절망이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 집에 가고 싶었다. 이런 대기시간은 난생처음이었다. 매표할 때 누가 한마디만 해줬어도 아예 표를 끊지 않았을 텐데, 네 식구 도합 15만 원을 결제하고 들어온 곳이었다. 집에 갈 수는 없었다. 어차피 언젠가 한 번은 겪어야 할 롯데월드! 한 번 들어온 이상 반드시 오늘부로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사실 나는 두 달 전부터'롯데월드'라는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올해 6학년인 큰애 때문이다. 이 아이는 그동안 소풍운이 유난히 없었다. 초등학교 입학 하는 해. 코로나가 터졌다. 입학식도 없이 5월이 되어서야 겨우 학교에 갈 수 있었다. 당연히 그해 소풍도 가지 못했다. 다음 해에도 상황은 같았다. 입학 전 사놓은 새 도시락통 위로 먼지만 쌓였다.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3학년이 되었다. 드디어 체험학습을 갈 수 있겠다고 기대했다. 그런데 이번엔 13세 미만은 어린이용 버스를 타야 한다는 ‘노란 버스 법’이 의무화되었다. 체험학습이 또 중단되었다. 노란 버스가 있는 사립학교만 갈 수 있는 체험학습. 탁상행정이라는 비판하에 다행히 그다음 해부터 체험학습이 재개되었다. 그런데 올해, 또 6학년 졸업 여행이 취소된 것이다. 그동안 매년 졸업여행으로 에버랜드에 갔었다. 아이는 친구들과 함께 놀이공원에 간다는 기대에 6학년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최근 사건이 하나 터졌다. 2022년, 현장 체험학습 도중 숨진 초등학생 사건의 판결이 나온 것이다. 신발 끈이 풀린 한 학생이 무리에서 떨어져 운동화 끈을 묶던 중, 후진하는 버스에 치여 사망한 안타까운 사고였다. 당시 담임교사에게 유죄가 판결되었고 이로 인해 많은 학교에서 체험학습과 졸업여행을 전면 중단시켰다. 그 이유를 알리 없는 큰 애에게 졸업여행 취소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컸다. 급기야 '1년만 먼저 태어났으면 언니들처럼 졸업여행을 갈 수 있었을 텐데.'라며 이 모든 불운의 원인을 2013년도에 태어난 자신에게 돌렸다. 어린이다웠다. 실망한 아이를 달래는데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은 나는 깊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대신 평소 가고 싶어 한 롯데월드에 데리고 가겠다고 덜컥 약속해 버렸다. 그렇게 롯데월드 늪에 빠지게 된 것이다.
그 후로 큰애는 하루가 멀다 하고 물었다.
“엄마! 우리 롯데월드는 언제가?”
“응 가… 야지. “
사람 많은 롯데월드에 너무 가기 싫었던 나는 차일피일 미뤘다. 그렇게 3월부터 4월까지 두 달 동안 들들 볶였다. 5월을 넘기기 전에 이 괴로움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었다. 그동안 정신이 너덜너덜해진 나는 온전한 사고를 할 수 없었고 달력에 나온 대로 오늘을 평일이라고 단단히 오해한 것이다. 롯데월드 늪에서 헤어 나오기 위해 스스로 '대기지옥'이라는 불 구덩이로 걸어 들어간 셈이다.
그렇다고 3시간 넘게 기다려 후룸라이드를 탈 순 없었다. 다른 놀이기구를 탐색해 보기로 했다. 옆의 바이킹을 보니 줄이 별로 길지 않았다. ’ 그래. 한 번에 여러 명이 타는 놀이기구는 금방 탈 수 있겠다.‘기쁜 마음에 줄을 섰는데 줄이 줄어드는 속도가 이상하게 빨랐다. 예약 번호를 받는 줄이었다. 언제부터 예약 시스템이 생긴 건지… 10년 만에 롯데월드에 온 아줌마는 적응이 쉽지 않았다. 직원이 주는 예약번호표에 시간이 적혀 있었다. [탑승 가능시간: 18시 30분 ]
’아. 이게 무슨 일이지?‘ 이 상황이 혼란스러운 나는 더 이상 밀폐된 실내에 있기 힘들었다. 밖으로 나가 보기로 했다. 매직아일랜드로 향하는 길에도 사람들이 많았다. 길 중간중간에 서 있는 직원들은 절대 걸음을 멈추면 안 된다고 외치기 바빴다. 인파에 떠밀린 우리 가족은 서로를 놓치게 되었다. 둘째 손을 꼭 잡고 걸으면서 남편이 뒤에서 큰애를 잘 데리고 따라오기를 바랐다. 이산가족이 따로 없었다.
밖의 상황도 만만치 않았다. 긴 대기 시간은 유행처럼 번져있었다.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모두 180분이었다. 그러나 앞서 200 분을 본 내게 180 분은 견딜 수 있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심지어 대기 줄 조차 마감인 곳도 있었기 때문에 줄을 설 수 있는 상황에 감사해야 했다. 이쯤 하니 무엇을 타도 상관없었다. 탈 수만 있다면 … 놀이기구를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줄을 설 수 있는 놀이기구에게 '선택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아이들과 남편을 줄 세워놓고. 나는 바삐 기념샵으로 가서 휴대용 의자를 사 왔다. 아까 대기하던 사람들이 앉아 있는 걸 눈여겨보았다. 앉아서 기다릴 수 있다면 긴 대기시간을 조금 견딜 수 있겠다.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빛깔의 화려한 의자였다. 평소라면 절대 사지 않았을 색깔이지만 오색찬란한 의자 위에 멍하니 앉아 있으니 비로소 놀이공원에 온 것이 실감 났다. 놀이기구를 타는 사람들의 즐거운 비명소리가 내 마음속에서 다른 방식으로 메아리쳤다. 그러나 3시간에 대한 물리적 저항이 없는 아이들은 즐겁게 기다렸다. 시간 개념이 부족한 건 때론 유리하다. 기다리다 지칠 때쯤 치킨 팝콘이나 아이스크림을 사 와 입에 넣어줬더니 대기 시간은 간식시간으로 바뀌었고, 기쁘게 3시간을 버텼다. 그렇게 180분과 맞바꿔 탄 놀이기구는 아찔했다. 겁이 없는 아이들은 어지럽다고 힘들어하는 엄마 아빠를 놀리느라 더욱 신이 났다. 그 뒤로도 사람과 대기시간에 차이고 치였다. 체력과 혼을 쏙 빼놓고서야 비로소 롯데월드를 탈출할 수 있었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숙제는 끝냈다. 내게는 돈을 지불하고 인내심 테스트를 당한 곳으로 , 아이들에게는 다음에 또 오고 싶은 곳으로 남았다. 같은 곳을 다녀왔지만 느낀 점이 극과 극인 곳이었다.. ‘다음엔 더 커서 부디 너희들끼리 가줘. 휴대용 의자 잘 보관하고 있을게. 무지개의자에 의지하며 잘 다녀와.’ 어차피 몇 년 후엔 엄마대신 친구들과 놀러 가길 바라느라 엄마는 안중에도 없겠지만 빌어본다. 롯데월드는 이제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