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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의 노력

by 고고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도서관에서 두 번이나 빌려왔던 책이었다. 프롤로그만 열심히 읽고, 1부의 1장도 읽지 못한 채 반납했다. 그런데 지난번 방문한 국제도서전에서 이 책이 눈에 또 들어왔다. 자꾸 눈에 띄는 걸 보니 읽어야 할 운명처럼 느껴졌다. 소장해서라도 끝까지 읽어보겠다는 의지를 갖고 구매했는데 오래 걸렸지만 결국 완독에 성공했다.

이 책은 부지불식간에 차별을 하는 우리의 모습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결정장애'라는 단어가 장애인을 비하하는 의미라는 사실은 나 역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가 이 책을 통해 비로소 깨달았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내내 마음에 걸린 게 있었다. 평소 내가 자주 사용했던 ‘주린이(주식초보), 요린이(요리초보), 등린이(등산초보)’등의 표현이 떠올라서다. ‘~린이’라는 말은 해당 분야의 초보자를 부르는 용어로 “어린이”의 “린이”에서 따온 표현이다. 이 책에는 ‘~린이‘라는 예시가 등장하진 않는다. 아마도 2019년에 초판 된 책이라 이 표현이 유행하기 전이었을 것이다.

아이를 낳고 나서 보니 아이들은 저절로 크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말도 못 하는 갓난아이가 ‘엄마’라는 말을 뱉기까지 얼마나 많은 옹알이를 하며 연습하고 노력한 결과인지 모르지 않는다. 몸을 뒤집고, 일어서고, 첫걸음마를 떼기 위해 숱하게 연습한다. 옆에서 보는 내가 안쓰러울 정도로 끊임없이 시도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성장한다. 단지 처음이라 서툴 뿐 언젠간 꼭 해내고 마는 집념의 결정체였던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서툴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린이’라는 말을 재미있다는 이유로 자주 썼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언제나 어린이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노력했던 게 무색했다. 무심코 경솔한 단어를 선택했던 것이다. 어제도 둘째 아이가 마술을 배운다고 ’ 엄마 이것 좀 봐봐 ‘ 라며 나를 불렀을 때, 속으로 ‘또? 이미 똑같은 마술을 수십번은 본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지만 마치 처음 본 것처럼 박수를 쳐줬다. 이렇게 반복하고 노력하는 어린이를 미숙하다는 이유로 폄하했다니,어린이가 들인 노력만큼도 들이지 않고 ‘주린이,요린이’라고 칭했던 것이 부끄럽다. 어’린이‘에게 배운다. 초보임을 부끄러워 하지 말고 끊임없이 시도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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