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선을 탄 것도 아니고 대통령이 된 것도 아닌데 뭐가 대단해?”
둘째가 말했다. 전교회장에 당선돼 흥분한 누나가 할머니와 통화하고 있을 때였다. 귀가 잘 안 들리는 할머니는 목청이 컸다. 스피커폰도 아닌데 ‘우리 손녀 장하다.’ 고 칭찬하는 말이 거실에 앉아있는 나와 둘째의 귀에 쟁쟁하게 들렸다. 게다가 할머니는 누나에게 당선 축하금까지 주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냥 평소처럼 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누나가 들떠서 이야기하는 걸 듣다 보니 기분이 나빠진 거다. 그저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말이다.
엄마아빠의 응원을 받으며 요란하게 전교회장 출마를 준비하던 누나를 며칠 동안 옆에서 지켜봤다. 그러다 누나만 칭찬받는 이 상황이 속상해 내뱉은 말일 것이다.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그러나 이땐 몰랐다. 곧 나 역시 같은 말을 속으로 삼키게 될 줄은. 아무튼 둘째 눈치가 보여 큰애를 마음껏 축하해 주지 못했다. 할머니에게 용돈도 받기로 했으니. 따로 축하 파티를 하지 않고 조용히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 하교한 큰애는 다른 친구와 자신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엄마! 선생님이 집에서 축하파티 했냐고 물어봤는데 난 할 말이 없어서 대답도 못했어. 전교 부회장에 당선된 친구는 엄마가 케이크 사줬대. ”
”넌 대신 용돈 받잖아. “
”나도 케이크 먹고 싶단 말이야. 난 부회장도 아니고 회장인데, 걔는 케이크 먹었다고. 나도 먹고 싶다고. “
”엄마. 나도 케이크 먹고 싶어. “ 하루가 지나 기분이 풀린 둘째도 한마디 거들었다.
결국 케이크를 사 먹었다.
며칠이 지났다.
”엄마! 소희가 애플워치를 샀대. 걔는 에어팟도 있는데 애플워치를 왜 또 사? 난 에어팟도 없는데. “
아.. 이번 건은 좀 세다. 소희는 지난번 케이크를 먹으며 축하파티를 한 전교부회장이 된 친구다.
”걔네 엄마가 전교부회장 당선됐다고 축하선물로 사줬대. 난 전교 회장 됐는데에에에에 그게 더 대단한 거 아냐? 왜 소희만 선물 받냐고오오오.“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어어?
난 아주 진부한 이야기를 풀어내며 아이를 달랬다.
“그 친구가 하는 걸 어떻게 다 따라 해. 그 친구도 너의 다른 모습을 부러워할 거야 ”
그래도 아이는 듣지 않았다. 갖고 싶었던 에어팟을 목 놓아 부르며 울기 시작했다.
”나도 에어팟 갖고 싶은데. 걔는 왜 나한테 자랑하는 거야. 난 에어팟도 없는데, 난 전교회장 됐는데에에에에“
‘ 아니. 대통령이 된 것도 아니고 우주선에 탄 것도 아닌데, 내가 에어팟까지 사줘야 되는 거야?’
그렇다. 이렇게 내가 둘째의 말을 차용하고 말았다. 물론 이 말은 속으로 삼켰지만.
친구가 하는 걸 어디까지 따라 해야 하는 걸까? 성인이 된 나 역시 친구들의 면면이 부럽다. 그러나 모든 걸 다 따라 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에 빨리 내 자리를 받아들였다. 아이들은 아직 어려 내 것보다 남의 것이 더 크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모두 대통령이 될 수도 없고, 우주선에 타는 경험을 할 수도 없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 하며 자기 자리를 찾아가겠지. 그리고 부모인 나는 아이와 적절히 타협하며. 케이크도 사주고.
언젠간…
에어팟도 사주게 될 것이다.